일상 속 에피소드 2. 드디어 내 손으로 트러플을 찾다
서양 송로버섯은 알칼리성의 토양에서 나는 참나무, 떡갈나무, 개암나무 등의 뿌리에서 자라나는 균류다. 나무와는 공생관계를 이루어 땅에서 흡수한 무기질 등의 영양분을 나무에 공급하고,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없어 나무의 도움으로 자라나는 땅 속의 버섯이다. 한 가지 큰 특징은 버섯 특유의 강한 화학작용(향이 강한 이유)이 일어 주위에는 풀이 자라지 못한다. 오늘날에는 많은 농가에서 뿌리에 균류를 접합하여 묘목을 심고, 관개 시설을 이용하여 나무가 마르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조절하여 생산해낸다. 그러나 유럽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인공적인 방법으로 성공해내는 사례가 적고, 심지어 재배에 성공하더라도 그 질감이 물러 유럽 생산의 버섯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아직 유럽산 서양 송로버섯이 다른 지방에서 인공적으로 재배되는 예는 무척 드물다고 한다.
향이 진하고 맛 좋기로 소문난 투버 멜라니스포룸(Tuber melanisporum)의 계절은 겨울이다. 추운 겨울 이른 아침 나는 현지인 후아니또(Juanito) 씨가 관리하는 참나무 밭에서 그를 만났다. 땅은 얼어 있었고, 북풍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날이었다. 트러플 채취꾼은 중무장한 듯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옆에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부르기만 하면 하늘로 오를 기세의 두 마리의 개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트러플 채취할 준비가 되었나요?”
이미 트러플(truffle)에 관한 이론을 예습해온 터라 직접 앞으로 볼 상황이 은근히 그려지기도 했다.
“네~ 준비됐어요. 이제 보여주시기만 하면 돼요.”
서양 송로버섯은 땅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눈으로 쉽게 찾을 수 없다. 게다가 아무리 진한 향을 뿜어낸다고 해도 인간의 후각으로 찾아내기에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후각이 무척이나 발달한 개를 요즘은 훈련해 찾아내는 일이 일반적이다. 예전에는 암퇘지를 이용해 서양 송로버섯을 찾아냈다고 하지만 요즘은 다루기 쉬운 훈련된 개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돼지만큼이나 개들도 한눈을 팔다 보면 이 트러플을 꿀꺽 삼켜버릴 수도 있다는 게다. 그램(g) 당 가격을 매기는 만큼 조금이라도 떼먹고 상처가 나게 된다면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트러플 농민들은 초집중력으로 개를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에 만난 개도 빨리 트러플을 찾고 싶어 안달이 난 듯 주인과 나 사이를 오가며 안절부절못했다.
‘주인! 빨리 찾으러 가자고!’
트러플 채취꾼은 신나게 배회하며 ‘이곳에 보물이 있다’는 듯 신호를 주는 두 마리의 개에게 지시를 내렸다. 개는 꼬리를 흔들면서 이곳저곳 땅에 코를 대고 냄새를 킁킁 맡으면서 나아간다. 한 녀석이 땅 아래에 있는 서양 송로버섯을 탐지했는지 재빠르게 두 앞발로 그곳을 힘차게 파헤쳤다. 후아니또 씨는 어느 정도 개가 땅을 파도록 허락했지만, 깊이가 깊어지자 멈추게 했다. 파다가 트러플에 상처가 나거나 개가 삼켜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주인은 트러플 채취용의 작은 삽을 꺼내어 조심히 개가 판 그 주변의 흙을 팠다. 추운 날이라 땅이 꽁꽁 얼어있어 쉽지 않았다. 서양 송로버섯은 쉽게 그 까만 몸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정말 있는 것일까?
후아니또 씨는 흙을 한 줌 손으로 떠서 냄새를 맡아본다.
“이 아래 트러플이 있다면 진한 향이 날 겁니다. 한 번 맡아보세요.”
나에게도 흙의 냄새를 맡아보라며 건넨다. 내 손에 들어온 흙에서 정말 트러플 특유의 강한 향내가 진동했다. 깜짝 놀랄 정도로 흙에서는 묘사할 수 없는 묘한 향이 흘러나왔다.
“정말 흙에서 트러플 냄새가 나는군요.”
서양 송로버섯이 땅속에 있다는 확신이 들자, 그는 삽으로 그 주변을 더 파헤쳤다. 드디어 모래 알갱이 같은 땅이 나왔다. 파기가 훨씬 수월했다.
“이 흙은 이 땅의 보통 색깔과 느낌이 좀 다른데요?”
“잘 보았습니다. 이곳은 자연적으로 생산하는 트러플이 아닌,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밭이기 때문에 땅 색깔이 달라요. 보통 모래 알갱이와 비슷하게 뭉치지 않는 부식토에 말린 트러플을 갈아서 균을 투입해 다시 이 땅에 묻어줍니다. 그러면 대부분 다음 해에 트러플이 생산됩니다.”
그러고 보니 이 트러플은 인간의 손을 거쳐 나온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의 도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균을 갈아 씨를 뿌려주고, 물을 대어 자라게 해주는 최소한의 역할을 우리 인간이 해준 것뿐이다. 화학비료나 거름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다른 말로 하면 자연의 상태에서 이 트러플은 자라나기 때문에 100% 유기농이기도 하다.
드디어 까만색의 트러플이 모습을 드러냈다.
“트러플 둥지가 있군요.”
“둥지요?”
“큰 트러플이 나면 좋겠지만, 어떤 것은 작은 트러플 무리가 한 곳에서 자라나는 경우가 있지요.”
자세히 보니, 하나의 트러플만 나오는 게 아니라 3~4개가 짝을 지어 한 곳에서 났다. 이것을 후아니또 씨는 트러플 둥지라고 불렀다. 그런데 크기도 제각각이다.
“크기가 클수록, 표면이 매끈할수록 좋은 가격에 팔려요. 작은 트러플은 병조림이나 다른 재료에 넣어 2차 가공을 하지요. 트러플 넣은 푸아그라(Foie gras), 트러플 갈아 넣은 소시지, 트러플 갈아 넣은 소금, 트러플 갈아 넣은 올리브유 등으로 유명하지요.”
하긴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이 트러플을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흠집이 있는 녀석까지도 단단히 잘 이용해야만 경제적 이득이 최대로 돌아온다.
이렇게 우리는 개와의 합동 작전으로 향이 진한 트러플 몇 개를 채취할 수 있었다. 후아니또 씨는 트러플을 자신의 가방에 넣자마자 개에게 보상할 물건을 꺼냈다. 잘 찾아낸 트러플 견에게 주는 보상금은 트러플과 맞먹을 하몬(Jamón, 스페인식 염장 생햄)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몇 번 더 반복하여 버섯 채취에 나섰다.
처음에는 매우 큰 트러플이 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 몸체의 트러플이 땅속에서 나왔다. 개도 가장 강한 냄새를 뿜어내는 큰 트러플을 먼저 찾아내고, 나중에는 작은 것을 찾아냈다.
후아니또 씨의 설명과 체험 덕분에 나는 이 트러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어디서 나고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세상에 나오는지. 잘 훈련된 개가 아니면 절대로 찾아낼 수 없는 이 트러플이 흙 속에서 빛을 발하면서 나올 때는 큰 환희에 젖기도 했다. 그런데 땅속에서 찾아낸 이 버섯은 어떻게 먹는 것일까?
트러플 향을 가장 잘 잡아내는 재료는 단연 ‘기름’이다. 동물성 기름이든, 식물성 기름이든 이 기름의 특징은 향을 잘 잡아낸다는 거다. 그래서 보통의 미식가들은 크림소스와 트러플을 이용하거나 달걀과의 잘 맞는 궁합을 이용해 각종 요리에 달걀과 트러플을 넣어 신메뉴를 창조하기도 한다.
단순한 사실 하나는 꼭 생으로 이용한다는 게다.
조리하게 되면 트러플 특성상 향이 사라질 염려도 있다. 그래서 음식이 완성된 최후에 생으로 갈아서 올려 먹는 게 최고의 가치를 발한다. 그렇다고 보관법이 없는 게 아니다. 유통 기간이 상당히 짧으므로 (보통은 7일 최대 기간) 냉동 보관하거나 병조림, 건조해 보관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통이 짧고 보관하는 과정이 어려워 이 트러플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유럽에서 나는 미식가의 트러플은 큰 경매시장에서 억대를 오가며 팔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맛보고 싶은 음식 재료로 우리의 밥상에는 여전히 멀다. 그러나 미래의 유통 구조가 더 확고해지고 빨라진다면? 게다가 인공 재배가 가능해진 이 시점에서 트러플 생산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게다. 단지, 여러 곳에서 환경적으로 제약받지 않도록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 그래서 아마 미래의 식탁에 자주 등장할 향신료가 아닐까, 조용히 점쳐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