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국민음식, 파에야(Paella)에 대하여...
발렌시아(Valencia)의 전통음식이자 스페인의 국민 음식이 된 파에야(Paella), 유럽에서도 쌀이 생산되는 곳 중의 하나인 발렌시아에서 우리는 이 특별한 밥 요리를 접할 수 있다. 파에야는 접하면 접할수록 참 재미있는 서민 콘텐츠가 있는 음식이다. 그 유래와 배경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곳만의 문화와 역사를 그려내는 데에 큰 영감을 준다.
일단 파에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파에야(Paella)는 넓적한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각종 채소, 해물, 혹은 육류를 볶은 다음, 육수를 부어 끓이다가 마지막에 쌀을 넣어 짓는 철판에 지은 밥이다. 우리가 흔히 볶음밥이라 오해하는데 사실은 밥 짓는 것과 같은 과정으로 지어지는 일종의 밥이다. 다른 점은 끓는 육수 물에 쌀을 넣어 짓기 때문에 쌀의 양을 잘 조절해야만 한다. 손을 넣어 물을 맞출 수 없는 게 함정! 한국에서는 밥을 지을 때 물의 양을 조절하지만, 스페인에서는 끓는 육수에 쌀을 넣어 쌀의 양을 맞추기 때문에 고수가 아니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들 한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한때 법으로 쌀 생산을 금지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짐작하듯이 이 쌀은 아랍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면서 가져온 작물 중 하나이다. 아랍의 이슬람 문화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유럽 세계에 전파한 큰 공이 있다. 하지만 가톨릭 왕가의 스페인 (재)정복은 모든 이교도를 몰아내는 데에 현안이 되어 훌륭한 과학 및 의학, 농업 등의 분야에서도 배척하게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쌀이다.
1334년 발렌시아 수장(consell)은 벼 재배를 강력히 금지하는 법령을 내렸다. 그 당시 이들의 주장은 벼 재배가 이뤄지는 습지가 흑사병 및 말라리아 등의 병균이 발생하는 곳이라 단정하여 금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17,18세기 이후까지도 벼는 미미하게나마 재배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발렌시아는 지중해 연안에 큰 호수와 평야가 물에 잠겨 있는 전형적인 벼 재배지 특성을 띠므로, 밀의 재배는 어려웠고, 그 당시 밀의 가격이 쌀의 가격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에 근근이 벼는 재배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15세기 페르난도(Fernando II (1479-1516))왕의 통치 기간에는 도시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시정잡배(市井雜輩)나 정치인의 시야에서 벗어나 간간히 벼를 재배하도록 허가증까지 발행해 주었다고 한다. 결국, 쌀은 생산되었고, 이탈리아,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지로 수출까지 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이교도가 남긴 논에 관한 관개용수 구획 정리와 벼 재배 기록은 근근이 이어져 오며 18세기에는 벼 재배지가 더 확장되면서, 논으로 복원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 발렌시아 전통의 이 파에야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파에야 제대로 먹는 법
요즘 한국에서도 스페인 식당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고들 한다. 한국에서 맛보는 스페인 요리가 심심찮게 인스타그램 맛집 인증 성지로 떠오르는가 하면, 관련 테마가 한국 방송 예능에 자주 송출되면서 많은 사람이 스페인 여행을 꿈꾸며 나날이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한때는 멀게만 느껴진 스페인이 요즘 정말 가까워진 것 같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 중의 하나가 스페인이 되면서 이 파에야를 접해본 인구도 나날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파에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남의 나라 음식 먹는데 뭘 더 알아야 하나 의문이 가기도 하겠지만, 외국인이 우리 김치를 먹으며 김치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는 것처럼 흐뭇한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음식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특유의 문화는 덤으로 알면 기대 이상의 지적 호기심을 충전시키기에 딱 재미있다.
이 글에서는 현지인이 특별히 가르쳐주는 “파에야를 제대로 먹는 법”을 다루면서 이 배경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구수한 된장의 소소한 뒷이야기를 알면 한국인의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다양한 색깔의 파에야로 발렌시아의 깊은 모습도 볼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가 흔히 아는 파에야는 어떤 모습일까?
알록달록한 각종 재료에 푸짐한 새우와 홍합 등의 해물이 화려하게 올라온 철판 요리가 우리에게는 대표적 이미지이다.
그런데 사실, 진짜 파에야는 해물이 아니었다. 농부가 들에서 농사짓다가 후다닥 해 먹는 거친 요리로 토끼고기, 달팽이 등이 들어간 파에야가 원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파에야도 다양하게 발전되어 해물, 해물과 육류 혼합형, 채소만으로 한 파에야 등 다양하게 변해 왔다고 한다.
스페인 현지인이 가르쳐 준 파에야 먹는 법은 다음과 같다.
1. 파에야는 장작불로 요리해야 제일 맛있다!
요즘은 다양한 방법으로 파에야를 하는데 전통적으로는 장작불에 파에야를 했다. 장작이 주는 그 그을림 냄새랄까? 장작 특유의 강한 불과 약한 불을 조절하는 방법은 쌀이 익어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찰지게, 혹은 기름기 있게 밥이 완성되는지 가늠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현재에도 파에야 전문 레스토랑에서는 여전히 장작에 불을 피워 파에야를 만들어낸다.
발렌시아는 성으로 둘러싸인 성곽 도시였다. 유럽의 많은 도시의 특성답게 성안에 주민들은 몰려 살았고, 낮에는 성 밖으로 나가 농사를 짓거나 다른 도시로 왕래하면서 교역을 했다. 특히, 발렌시아 농민은 성을 떠나 논으로 가서 농사를 지었는데, 성 밖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요리가 바로 파에야였다. 큰 철판을 짊어지고, 점심때가 되면 어디선가 주워온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후다닥 철판 위에 무엇인가를 볶아 만들어내야만 했던 요리, 그래서 그럴까? 요즘에도 남자들이 더 자주 하는 요리가 되었다.
2. 파에야를 먹을 때는 꼭 숟가락으로 먹어라!
어? 이게 뭐 어때서? 하고 물을 수도 있는데, 사실 서양에서는 밥을 숟가락으로 먹질 않는다. 수프가 아닌 이상, 포크로 먹는 게 서양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스페인 식당에서도 파에야 요리를 시켰을 때 접시로 내오는 파에야에는 포크를 준다. "숟가락 주세요~!"하고 요청을 해야만 주는 곳도 있으니 숟가락이 얼마나 생소한 물건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발렌시아 현지의 파에야 덕후들은 꼭 숟가락으로 이 밥 요리를 먹는다. 전통적인 발렌시아 파에야 레스토랑에서는 재미있게도 전통 그대로 파에야와 함께 나무 숟가락을 내온다.
한국 사람만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발렌시아도 쌀 생산지답게 밥을 숟가락으로 먹었다는 게 증명되는 셈이다. 어쩌면 멀고도 먼 나라가 이렇게 한국과도 비슷하다니 정겹기까지 하다.
3. 파에야를 먹을 때는 철판 채로 먹어라!
전통적으로 파에야를 먹을 때에는 철판을 중간에 두고 다 함께 나눠 먹는다. 접시에 덜지 않고,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먹어야 제대로 먹는다고들 한다. 이것은 발렌시아 농부가 논에서 일하면서 먹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논에서 즉석에서 불을 피우고, 철판을 올려 요리를 하니, 따로 그릇에 담아 먹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논의 일꾼이 전부 몰려와 두루두루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으며, 머리를 맞댔으니 말이다. 마치 한국의 양푼이 비빔밥을 먹는 것처럼.
이런 모습을 보면, 굉장히 한국인 정서와 비슷하지 않은가? 다 함께 협력하고 나누는 농경사회의 한 면모라고도 할 수 있고, 서민의 삶이 물질적으로 풍요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4. 자기 앞의 파에야만 먹는다!
요즘 한국에서는 온 가족이 찌개에 숟가락을 같이 넣어 먹는 문화를 지양하고 있다.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으며, 세계인의 보편적인 위생관념과도 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런 문화를 피하고자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한국의 정을 내세워 나쁘지 않은 우리만의 문화라며 옹호하기도 한다. 문화는 다 상대적이기 때문에 꼭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며, 요즘은 많이 변하여 매일매일 찌개를 먹는 밥상 문화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과 거리를 두고 생각할 수 있다.
스페인에서는 위생 때문에 자기 앞의 파에야만 먹는다는 개념보다도, 남의 음식을 자신이 더 차지하지 않는다는 개념으로 자기 앞의 파에야만 먹는다. 그게 예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 모여 파에야를 먹을 때는 한국과 비슷하게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된다는 정서가 있어 아주 친근하다.
1960년 발렌시아 투우 경기장 앞의 사진을 보면, 여러 명이 숟가락 하나만 들고 나눠 먹는 친근한 모습을 (사진: wikipaella.org) 볼 수 있는데, 낯설지가 않다.
5. 레몬을 활용하라!
파에야를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파에야에 레몬즙을 뿌려 먹으며 참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레몬은 상큼한 맛을 주어 식욕을 돋게 하는 기능도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쓰임이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파에야는 논에서 즉석에서 해 먹던 음식이기 때문에 꼭 레몬이 중요하게 쓰였다고 한다. 레몬은 음식을 먹을 때에는 손의 청결제로 사용했고, 음식을 다 먹고 난 다음에는 기름기 있는 철판을 닦아내는 세제로도 쓰였다 한다. 논에서 일하면서 후다닥 밥해 먹고, 후다닥 설거지까지 처리해야 했기에 레몬은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엑스트라였다.
6. 파에야의 가장 맛있는 부분, 소카라엣 혹은 소카랏(Socarraet)을 먹자!
소카라엣은 발렌시아어로 '검게 타다' 혹은 '검은 재로 되다'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파에야 하면서 바닥에 눌어붙은 무른 누룽지를 뜻하는 말이다. 양념 다된 무른 누룽지, 상상하지 않아도 그 맛을 짐작할 수 있는데, 마치 춘천 닭갈비 먹고 난 후, 비벼 먹는 그 양념 밥이랄까? 고들고들 익어가는 양념 누룽지의 맛은 누구나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밥을 태우는 곳도 있으니 반드시 유의하기를 바란다. 적당히 태운 소카랏은 발렌시아인들이 노리는 가장 맛있는 부분이라고들 한다.
7. 다음 날 먹는 차가운 파에야도 맛있다!
이건 많은 스페인 현지인들이 습관처럼 하는 말이다. 남은 파에야를 처리할 수 없을 때 누군가는 반드시 하는 말!
"이거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 날 먹으면 정말 더 맛있어~!" 하고 말이다. 고기도 들어갔겠다, 해물도 들어갔겠다 시간이 흐르면, 마냥 없던 비린내도 날 것 같은데 발렌시아 현지인들은 다음 날 먹는 파에야가 훨씬 맛있다고들 한다.
파에야 초대에 일부러 음식 통을 가져오는 부류는 다 이 남은 파에야를 겨냥하여 가져오는 경우다.
"내일 먹게 남은 거 다 싸줘~!"
어쩌면, 남는 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이곳만의 지혜로움일 수도 있고, 정말로 다음 날의 파에야가 맛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파에야는 풍부한 채소와 해산물, 육류 등 푸짐한 양의 밥 요리로 여러 명이 다 함께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 스페인 특유의 음식 문화를 보여준다. 지금은 스페인 전역에서 애정 하며 먹는 국민 요리이며, 이제는 세계인이 특식으로 즐기는 요리가 되었다. 벼를 재배하던 농경사회인 발렌시아 특유의 문화가 녹아들어가 참 재미있다. 한국인 정서에도 딱 맞아서, 숟가락 하나만 더 얹어도 괜찮을, 다 함께 나누어 먹는 그 모습은 정겹기까지 하다. 현지에서는 여전히 장작불로 요리하고, 이방인이라도 숟가락 하나만 더 올리면 그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함께 맛볼 수도 있다. 이 음식은 여전히 타인에게 한 술 퍼 줄 수 있는 음식이다.
어느, 날 좋은 주말 점심에 다 함께 모여 먹는 파에야는 여전히 스페인을 대표하는 하나의 주요 풍경이다. 분명 파에야는 스페인 국민이 사랑하는 요리이며, 여전히 공감대를 형성하며 연대하기에 좋은 음식이다. 그래서 왜 이들은 그토록 주말에 다 함께 모여 파에야를 먹어야만 하는지, 왜 먹는 데에 시간을 다 할애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결국, 사람은 태어나 사람과 관계하며 같이 먹고사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이 아닐까? 여전히 이런 공감대가 통하는 나라, 스페인이 그래서 더 여유로운지도 모른다.
참고: 글쓴이 산들무지개의 블로그 하늘 산책길, 그곳에서 꿈을 꾸다에서는 더 쉽고 재미있는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페인 현지의 일상과 문화를 글과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의 타이틀을 클릭하시면 바로 블로그와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