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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verden 르버덴 Apr 28. 2024

내면으로의 떠남: 페루로 떠난 마음 여정

*이 글은 leverden 공동창립자 헬린리 대표가 직접 작성한 글, 한국어 번역본입니다. 


삶의 무게와 절박함은 때로 커다란 용기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극도로 우울하고 지친 마음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만이 옳다고 여긴 마음의 시선을 이전에는 닿지 않던 부분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뉴욕에서 시작된 뷰티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르버덴의 공동창립자인 제가 전 세계 각 지역의 힐링 원료를 찾아 나서게 된 이유와 르버덴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 여정에 대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뜬구름 잡는 미신 같기도 하고, 넷플릭스 다큐에서나 볼 법한 경험담이기도 하지만, 대체의학이 널리 퍼져 있는 뉴욕에서는 어렵지 않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어떤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15년 여름, 제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사회에 나가기 전 그토록 꿈에 그리던 저의 직장, 마이클 코어스와 작별을 고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창립 멤버로 팀에 합류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경험을 쌓은 저의 일터와 말입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10년 동안 저는 촛불의 양쪽 끝을 모두 태우며 제 일에 열정을 쏟아부었고, 동시에 개인적 삶의 격랑을 헤쳐나가는 아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습니다. 저의 20대는 미지의 영역 같기만 한 사랑과 불행한 사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저에게 사랑은 늘 얽힌 느낌이었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던 엄마와는 관계에는 늘 독이 서려 있었습니다. 제 삶의 고점과 저점을 오르내리며 제 폐는 치명적으로 기능이 저하됐고, 일터에서 겪은 신체적 언어적 학대와 같은 상처가 저를 뚫고 지나갔습니다. 당시 저는 그 상처에 대해 어떤 대처를 했을까요? 해 질 녘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밤, 제 손에는 레드불이 들려 있었고 가끔은 겨우 씻은 얼굴로 사무실에 비틀거리며 들어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당시에는 잠시의 흥분감으로 견뎠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지 당시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었습니다.

다시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 2015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지칠 대로 지친 저는 저는 제가 꿈꾸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동시에 탈출을 모색했습니다. 지금의 남편이 된 한 남자의 영향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삶의 풍랑을 견딜 수 없다는 (완강히 부인했지만)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변화에 대한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우울증과 싸우던 중 저는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제가 살던 주 밖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찾은 것은 고대 의식까지 체험해 보는 용기였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집에서도 평온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되었죠. 이것이 바로 르버덴의 이야기입니다.
_헬렌 리

저에게 치유는 결코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어쩌면 진단받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는 우울증의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알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어 닥치는 슬픔과 무관심, 가끔씩 찾아오는 사회적 위축,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무기력 등 우울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겪으며 '쉬는' 날에는 침대에 기어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감정적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 종종 거부감을 느끼게 하거나 나약함의 신호로 여겨집니다. 초보 엄마이자 사업가인 저는 보통의 엄마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제 우울증을 감추는 것이 최선이었죠. 하지만 이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울증조차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는 기회로 만드는 것이 다른 어떤 치료보다 효과적인 치유법이었죠.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자극의 홍수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끝없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뉴노멀'을 살고 있고, 모든 것을 잘 해내야 하는 ‘만능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 당연하게도 우리는 휴식과 위로, 사람들과의 깊은 교감을 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울증에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결단한 전 이전의 일상과 다른 단순한 것을 원했고, 여전히 어느 문화에서는 여유롭고 느린 것이 지극히 ‘노멀’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커리어를 놓고 여권을 갱신했습니다.

CHAPTER 1 - 페루
전 좋은 날들은 모두 흐리게 만들고, 나쁜 날에는 저를 집어삼키는 우울증에 지쳐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뉴욕처럼 대체의학을 꽤 친숙하게 받아들인 곳에서는 드물지 않던) 무엇을 해도 우울증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던 저는 주술적인 방법까지 들여다보게 될 정도였습니다. 치료사와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며 평생 영적 구도자로 살아온 저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한 식물을 탐험한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경험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페루에서 자생하는 이 식물은 탕약과 같이 푹 끓여 주술의식과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데, 과거부터 샤먼들은 이를 통해 몸 안의 나쁜 것들을 제거한다고 믿어왔다고 합니다. 어떤 나라에서 금지된 성분이기에 결코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식물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를 통해 마음을 짓누르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여겨 남미로 탐험을 떠나기도 합니다. 처음에 저는 세이지나 팔로 산토로 마음을 정화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식물을 활용한 의식은 상당히 강력하기 때문에 묵혀 있던 트라우마와 불편한 감정을 터뜨릴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반대편에서 지금까지 본인을 짓누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피어나는 것일까요. 절박함 속에 제가 남미를 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페루로 가는 길,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평원

리마에서 쿠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이 식물을 활용한 의식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향했습니다. 쿠스코에서는 포터 비행기를 타고 아마존 정글 푸에르토 말도나도에 도착했죠. 38℃에 가까운 덥고 습한 날씨에 가이드와 저희 일행(8명)은 고무 소재의 웰링턴 부츠를 신고 3시간 동안 늪지대를 통과하는 하이킹을 해야 했습니다. 축축한 피부를 갉아먹는 낯선 벌레들을 헤치며 이것은 제가 이겨내야 할 신체적·정서적 시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페루 푸에르토 말도나도 여행

목적지에 도착하자 저희에겐 일련의 지침이 주어졌습니다. 육류, 섹스, 술, 카페인 금지, 다시 말해 ‘모든 즐거운 활동’을 금지하는 것이었죠. 현장의 진행자인 아마존 샤먼이 우리를 맞이하러 왔습니다. 참가자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곳까지 갔지만, 카우보이 모자를 쓴 그는 다소 어둡고 과묵하며 자칫 마약 딜러처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자꾸 여러 생각이 밀려오자 저는 스스로에게 ‘모든 판단은 뒤로 미루고 다 내려놓자’고 말했죠. 이곳에서의 체험이 있던 날 밤, 우리 일행은 정글 속 오두막으로 향했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그곳에는 헤드 기어 같은 장비 몇 가지만 놓여있었죠) 밖이 깜깜해지자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샤먼이 피우고 있던 시가에서 붉은 불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절박한 마음, 엄청난 용기를 내서 그곳까지 이르게 됐지만, 사실 제게는 매우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의식이 이루어지는 동안 마치 영화처럼 제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의식을 마친 후 저는 혼자 걸을 수 조자 없었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 속에 제 파트너가 여행에 동행한 것이 다행스러웠습니다. 그는 저를 업고 오두막으로 돌아왔고 저는 며칠 내내 구토를 했죠. 티티카카 호수에 도착한 후 저는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어 병원에 입원까지 했고요. 그 과정이 쉽지 않았던 저는 다시는 이 같은 방법을 찾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도해 본 낯선 경험 이후 저는 조금씩 우울증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의식의 효과 때문이라 여기진 않습니다. 단지 우울증을 탈피하기 위해 이 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어떤 시도를 한 용기 자체가 저를 이전보다 조금은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CHAPTER 2 – 통합
페루까지 용기 있는 여정을 다녀온 이후 일기에 적은 제가 겪은 행동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인식의 증가: 전에는 제 영역을 위협받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빼앗길 때 느끼는 감정적 긴장감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감정적 해방: 제 상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다시 경험하며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제 안의 상처를 ‘움직이는 덩어리’가 아닌 ‘얇은 흉터’로 남겨두기로 결단하면서 물리적 무게까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죠.
공감과 연민의 강화: 저는 주변 사람들을 더 잘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수련 장소를 다녀온 이후 지금까지도 저는 가족과 친구, 모든 존재들과 이전보다 큰 유대감을 느낍니다.
우선순위의 변화: 그동안 제 가치관을 점검하고 마음 챙김을 위한 시간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달았습니다. 3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까지 찾아간 용기가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듯 제 일상에서도 마음을 견고하게 만들어줄 작은 방법들을 찾았고, 집에서도 치유의 상태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잡하지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 집에서의 평온을 위한 초대장이었습니다. 이제는 기분 좋은 것들이 제 주변에 흐르게 되었죠.

CHAPTER 3 – 치유
영국 런던 – 딸 플로렌스와 함께 있는 집에서
저의 이야기는 이제 현재로 이어집니다. 2023년 9월, 제 딸은 지난 주말에 돌을 맞았고, 하루의 두 번째 낮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 딸 플로렌스는 아빠를 닮은 크고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있죠. 아이의 숨소리가 깊어지면 전 성냥과 캔들, 목욕 가운을 준비합니다. 남편이 딸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 목욕을 마친 저는 30분 동안 몸을 담글 채비를 합니다. 제 자신을 위해 깊고 편한 숨을 내쉬면서요.
페루 여행 이후 르버덴의 공동창업자이자 절친한 친구인 소영과 함께 여러 지역을 여행한 저는 제 자신을 돌보는 일에 훨씬 더 능숙해졌습니다. 하루의 육아를 마친 후 혹은 최근의 기억으로는 대학원 논문을 마친 순간 저는 제가 가장 평안함을 느꼈던 장소로 돌아가 30분의 시간을 정직한 휴가처럼 즐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르버덴 브랜드가 가진 ‘포털’ 심벌이 상징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저는 소영과 함께 수 세기 동안 사찰에서 사용한 죽염을 발견하고, 르버덴 첫 번째 컬렉션의 테마로 삼았습니다. 피부는 물론 우리 내면에까지 영양과 휴식을 전하는 죽염이 르버덴의 포털을 열게 된 것입니다. 르버덴이 만든 죽염 성분의 배스소크를 녹인 물에 몸을 담근 후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와 숲의 향기를 느껴봅니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으면 그곳은 저에게 곧 치유의 장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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