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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경 Oct 24. 2020

두려움에 우리 눈을 빼앗기지 말라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은 우리 눈과 우리 머리, 우리 심장을 파먹는다

Photo by I.am_nah on Unsplash


우린 미지에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불확실한 미지의 사건, 혹은 예측 할 수 없는 일로 인하여 우리가 다칠까, 우리가 피해를 입지 않을까? 라는 걱정 때문이다. 이건 우리가 행동하는 원리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게 하지 말라



인간은 '틀린 것'만 싫어하는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것' 역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 끼리도 다른 점 때문에 많은 갈등이 일어난다. 형제자매는 물론 부부 끼리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연인 간에도 말이다.


사실은 미국이나 서방 세계에서 현재 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는 아프리칸-아메리칸이나 흑인, 황인등에 대한 차별은 이런 두려움이 그들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적' 혹은 '악'으로 간주하기 쉬워 지게 되어 있고, 그게 어느시점에는 유태인, 어딘가에서는 흑인, 누군가에게는 황인이었다.


인종 차별역시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사람들의 눈과 이성, 정신을 파고들어 장악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류는 결국 스스로 강해지려 노력 하는 수밖에 없다.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싸워야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이며, 저항이고, 수련의 역사다.


Photo by Matheus Farias on Unsplash


우리는 다른것도 싫어하지만,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대상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위에서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피곤하게 하는 대상을 배제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조직내 내부고발자가 입는 피해에 신경을 '끄고' 조직 생활을 영위한 다던지, 교실에서 왕따 당하는걸 보고 있거나 주도자에 이끌려 참가 한다던지 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어둠에게 당신을 허락하지 말라, 저항은 삶이다


위와 같은 맥락에서 오늘은 이 사안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흔히들 업청 쉽게 생각하고 판단짓는 사안 중에 "싸이코패스는 나쁜놈이니, 멀리해야 한다", "소시오패스는  멀리해야 한다" 라는 누군가(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판단을 편하게 하는걸 볼 수 있다.


먼저 우리 중에 누구던지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나쁜 행동을 할 것 같아서 그 사람을 '처벌' 하고 '감옥'에 넣는게 옳다고 찬성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영화나 소설등에서 다루었었던 내용들이다. 그리고 처벌 받고 나서, 같은 사유로 다시 처벌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임에 동의하지 않을리도 없다.


소시오패스 혹은 싸이코패스를 내 삶이나 사회에서 배제/격리하자고 하는 것은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나쁜 행동을 할 것 같아서 그 사람을 감옥에 넣자"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판단이다.


소시오패스나 싸이코패스가 아니더라도,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거나 활동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피로한 일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다 싶이 이것 역시 나쁜 감정에게 휘둘린 결과에 가깝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피하는 이유는 "내가 그 사람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 사람이 나쁘거나 잘못된 사람"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소시오패스나 싸이코패스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지, '틀린' 사람이 아니다.

만약 저들에 대한 차별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면, 부자집 아이들이 가난한 집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고, 조울증이나 우울증 걸린 사람은 회사에 다니지 못하게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백인 우월주의자들, 나치 잔당이 유태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역시 동일한 원리로 부정할 수 없는 선택이 된다.


우리는 태아 때부터, 강해지는 과정이 된다. 어떤 사람은 '강해짐'을 강요 받는다 말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요구는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는 바꿀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은 옵션은 지혜롭게 강해지는 길을 찾아 가는 길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배제'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어둠이 우리를 조종하지 못하게 저항해야 하며, 인간의 역사는 저항이며 전쟁이고 수련하는 역사이다. 그 역사가 온당하게 어떤 특정 개인이 아닌 인간 전체의 역사라면 우리가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 되는건 암흑기라고 할 수 있다.


두려움에 눈을 빼앗기지 말라
부정적 감정이 우리 눈과 머리, 심장을 파먹지 못하게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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