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외의 백인 부자 혹은 그들의 자녀들의 스타일
아이비리그나 프레피룩과 관련된 내용을 찾다가 2015년도 일본의 뽀빠이 매거진에서 찾아낸 이 두 스타일을 정의하는 5가지 문장 중 첫 문장이다. 시작부터 뜬금없는 이야기를 던졌지만, 이런 서두를 던진 이유는 현재 남성복에서 정말 잘 보이는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이런 느낌
미국식 엘리트주의의 중심이었던 아이비리그의 학생들, 통칭 Ancient Eight의 인원들이 30~50년대에 입었던 스타일, 아이비리그 스타일이 지금 다시금 남성복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폴로의 빈티지는 어느 빈티지샵을 가든 한켠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고, 10년, 20년이 지난 브룩스 브라더스, 제이프레스, 반 재킷 등의 아이비리그 스타일 옷을 만들어내던 브랜드의 옷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왜일까? 단순히 그들의 고고함을 흉내내기 위함이 아니라, 편하지만 기본은 갖춰진 옷에 가장 걸맞은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아한 캐주얼, 단정함 속에 내재된 편안함.
지금 이 스타일이 고개를 드는 이유는 30~50년대의 아이비리그 캠퍼스에서 활동하던 학생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이 대학의 학생들은 모든 행사에 참여할 때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출 것을 요구받았다. 그 행사엔 물론 매일 같이 가는 '강의'도 포함되어 있었고.
단정한 스타일, 물론 왼쪽 위의 분처럼 어느 시대에든 강의는 졸리기 마련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의 교복처럼, 대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들에게 허락된 옷가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셔츠와 타이, 단정한 슈트와 구두는 언제나 필수였고 여기에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코트가 전부였으니까. 때문에 당시의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자신들의 편안함을 얻기 위해 해당 규정들과 타협을 했어야 했다. 캐주얼하지만 클래식하게 입기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들은 그래서 재킷, 셔츠, 타이, 팬츠 그리고 구두라는 구성에서 그대로 있지만 조금씩 변화를 추구했다. 탄탄하게 어깨를 잡아주던 패드를 뺀 여유로운 색 재킷(Sack jacket 유럽의 그것과는 다른 힘을 뺀 루즈한 느낌의 재킷)을 입었고, 단단한 셔츠의 칼라와 커프스를 흐느적거리게 만들었으며, 관리가 어려운 울 슬랙스 대신 면바지를 입었고, 열심히 끈을 묶어야 하는 드레스 슈즈가 아닌 손쉽게 발을 넣을 수 있는 로퍼(예전 글에 있던 그 로퍼)를 신었다. 여기에 이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학교의 이니셜이 거대하게 들어간 카디건 혹은 바시티 재킷, 스웻셔츠를 입기도 했고, 또 이후 1차 대전, 2차 대전을 지나면서 군인 복지의 형식으로 입학하게 된 인원들이 과거에 입었던 군복, '카키'를 곁들어 입으면서 과거의 정장과는 다른 그들만의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된다.
정석적인 정장과 아이비리그 스타일의 차이, 편안한 바지와 편안한 구두 그리고 대충 맨듯한 타이까지, 차이가 꽤나 있다.
마치 요즘 중/고등학생들이 교복은 입지만 롱 패딩을 걸치거나, 그 안에 후드티를 입는 것처럼 이들 역시 틀에 박힌 자신들의 복장이 지닌 단정함은 유지하되 최대한의 편암함을 추구했다. 물론 이 패션이 단순 대학가의 유행이었다면 여기에서 멈췄겠지만 이들은 미국을 이끌었던 인물을 다수 배출해낸 상위 대학들, 아이비리그의 대학들이었다. 결국 여기서 졸업한 이들이 미국의 주류 고위급 유명 인사들(이를테면 대통령이라던가, 국무총리 같은 사람들)이 되어 해당 스타일의 모습으로 매스컴을 타게 되면서 되면서, 아이비리그 스타일은 단순히 대학생들의 교복이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된다.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이들을 일컫는 말로 '아이비 마피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아이비 마피아라의 가장 친숙한 유명인, 존 F 캐네디 대통령.
계급과 권력의 표상이 되다.
가장 서두에 말한 스타일의 정의를 기억하는가? '교외 백인 부자'라는 단어 말이다. 아이비 마피아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아이비리그 스타일 혹은 시티 보이 스타일을 입는 이들은 부유하고 또 이 부를 기반으로 사회적 권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은 유럽의 귀족이나 부르주아처럼 겉으로 대놓고 내뿜을 수 있는 권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명목상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땅이었으니, 여기서 유럽처럼 계급이 생겨버리면 건국의 아버지의 이념을 정면으로 반박해버리는 꼴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부를 겉으로 뽐냄으로써 이를 해결했다.
광란의 시대이자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였던 1920년대부터 미국 내에서 또 다른 권력의 표현방식이 되어버린 재력은 그들이 대학생 때 입었던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조금 고급스럽게 해석하며 하나의 미국적인 하이패션으로 만들어 냈다. 때문에 아이비리그 스타일이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옷이 되었고, 실용을 위해서 시작한 스타일이 고급스러움을 장착하며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들의 명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1920년대의 물질만능주의와 아이비리그가 겹쳐진 모습은 위대한 개츠비에서 볼 수 있다.
1926년의 피츠제럴드가 직접 관람한 흑백 무성영화부터 2021년의 드라마까지, 닉 캐러웨이 눈으로 바라본 개츠비나 톰 뷰캐넌이 입은 옷(사실 닉 캐러웨이 본인도)은 당시 아이비리그 출신의 남성복과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의 욕망 모두를 적나라하게 들어내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2013년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위대한 개츠비 버전을 본다면, 백인 우월주의적 성격이 가득한 기득권 층 톰 뷰캐넌이 매번 기름진 머리스타일과 함께 입고 나오는 옷, 혹은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며 욕망 가득한 개츠비가 매번 갈아입고 나오는 실용적이지만 고급진 아이비리그 스타일의 옷들을 본다면 위의 이야기를 단숨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아이비리그 스타일의 아이덴티티를 브랜드로 녹여낸 것이 백화점에 가면 익숙한 그 브랜드, '폴로 랄프 로렌'이다.
가난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집안 출신이었지만 브랜드를 일궈내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랄프로렌은 자신이 갈망했던 이 '아메리칸드림'을 폴로에서 그 누구보다 잘 표현했다. 옷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디자인한다는 그의 말처럼, 사람들이 꿈꾸는 아메리칸드림을 폴로의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느끼거나 혹은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폴로를 입음으로써 사람들이 꿈꾸는 여유가 넘치는 미국적인 삶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다.
옷이 아닌 꿈을 디자인한다는 랄프로렌, 정말 그는 사람들에게 '꿈'을 디자인해서 주었다.
이러한 폴로는 결국 1992년 CFDA(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에서 공로상까지 받으며 이제 '미국'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었다. 미국의 여유로운 상류층의 삶(혹은 그것을 열망하는 이들의 마음)을 담고 패션이 미국을 대표하는 패션이 된 것이다. 물론 이제는 그런 '계급'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지만 말이다.
원마일 웨어가 스며든 세상, 계급이 아닌 편안함을 취하기 위해.
비록 아이비리그 스타일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세대부터 시작해서 '권력'과 '부'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곤 하지만, 깔끔함과 단정함 그리고 편안함이 공존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역병의 시간이 도래한 뒤로 스웻 팬츠 혹은 와이드 슬랙스 등의 편안한 옷을 입었던 사람들에게 이런 달콤한 편안함은 버릴 수 없는 스타일이 되었다. 단적으로 슬랙스의 허리에는 고무줄이 들어가 있고, 코트에도 스웻 팬츠를 입는 게 유행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운동복만 입을 순 없기 때문에 단정함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아이비리그 스타일이 유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이비리그 스타일은 미국 상류층의 삶을 대변하지만, 현재의 아이비리그 스타일은 어찌 보면 그 '계급'보다는 편안하지만 실용적인 단정함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옷이 아닐까 싶다. (물론 상류층의 그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신이 계급을 추구하던 편안함을 추구하던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시도하겠다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은 4가지다.
너무 딱 맞지 않는, 낙낙한 네이비 블레이져 재킷(금장 단추라면 금상첨화)
버튼다운 옥스퍼드 셔츠
레귤러 핏의 면바지
검은색 페니 로퍼 혹은 더비
이 4가지는 당신이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시작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이다.
여기에 이너로 집업 후드나 맨투맨(스웻셔츠)을 바쳐 입어도, 혹은 겉에 야상이나 발마칸 코트를 걸쳐도, 혹은 네이비 재킷 대신 바시티 재킷을 입더라도 당신의 스타일은 오답일 수 없다. 그게 아이비리그 스타일이니까.
저걸 정리하면 이렇게, 깔끔함의 대명사 타카히로 키노시타 씨가 나온다.
이 스타일의 선두주자이자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하는 브랜드인 폴로나 브룩스 브라더스를 구매하면 더할 나위 없이 쉽고 편하게 이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겠지만, 구두를 제외하고 적어도 80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위의 두 브랜드에서 언급한 4가지를 모두 구매할 순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도 혹은 시간이 지난 친구들 중에도 제법 괜찮은 친구들이 많으니까.
브랜드 추천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도전하고 싶은데 브룩스브라더스나 폴로가 부담스럽다면, 아래의 2개 국내 브랜드를 추천한다.
20세기 초반의 유럽 패션에서 시작해서 아이비리그의 스타일까지 아우르는 패션 브랜드
2019년도에 시작한 신생 브랜드지만, 만듦새부터 디자인까지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아이비리그만 다루는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에 폴로 혹은 브룩스 브라더스의 그것을 기대할 순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옷은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 한 번쯤 맛보고 싶다면 부기 홀리데이를 먼저 찾아가 보자. 오프라인 매장도 홍대에 있으니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부기 홀리데이보다는 가격대가 조금 있지만, 어찌 보면 그 어디보다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잘 시도할 수 있는 브랜드다. 반츠에서 제작한 건 클럽 재킷은 두 시즌 동안 계속 품절이 될 정도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브랜드. 폴로보다는 브룩스 브라더스에 더 가까운 브랜드인데, 그래서 더 진득한 아이비리그 스타일의 맛이 느껴진다. 가격대가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랄프로렌이나 브룩스 브라더스보단 가격이 낮다.
만약 신제품이 아니라 빈티지 제품으로 조금 쉽게 시작해본다면, 아래의 브랜드를 기억해두면 좋다.
제이 프레스(J Press)
1902년도부터 이어져온 유서 깊은 아이비리그 브랜드. 대학가에서 아이비리그 스타일의 옷을 팔던 캠퍼스 샵의 하나로 유명하지만, 일본의 호황기 시절에 일본에 팔려서 지금은 일본에서 전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신제품에는 일본 느낌이 조금 많이 들어간(아메카지라던가) 제품들이 좀 있지만, 그래도 그 브랜드의 유서 깊은 디자인 철학은 어디 안 가기 때문에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벗어나는 스타일은 전혀 없다. 그러니 빈티지 매장에서 본다면 한번 깊게 살펴보자.
반 재킷(VAN JACKET)
좌측의 로고가 현재의 로고, 우측이 60년대 로고 소득이 증가한 중산층의 일본인들이 패션으로 눈을 돌리자, 그들의 입맛에 딱 맞게 일본 오사카에서 시작되어 60년대 일본 패션의 부흥기를 이끌어낸 브랜드다. Take IVY라는 아이비스 타일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의 책을 만들어내고, 우리들이 흔히 쓰는 TPO를 가장 먼저 고안해낸 브랜드로 제법 잘 나갔던 브랜드이다. 1978년도에 파산신청을 하면서 그 위상은 사라졌지만 현재 일본의 아이비리그 패션에 정말 큰 영향을 끼친 브랜드이다.
입는 데 당신의 재력은 중요하지 않다.
비록 아이비리그 스타일이 폴로나 브룩스 브라더스 류의 브랜드로 정의 될 수 있다곤 하지만, 결국엔 스타일. 인스타그램에서 ivystyle이라는 해시태그가 걸려있는 옷들을 시간 날때마다 한번씩 본다면 꼭 우리가 아는 그 브랜드로 정의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일단 먼저 입은 사람들의 옷을 보자. 그리고 두려워 말고, 아이비리그 스타일에 발을 담궈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