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청년 Aug 08. 2018

나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위장 내시경을 했는데 의사가 위가 깨끗하단다.  

의학적 지식 없는 일반인인 내가 내  위 사진을 쳐다봐도 그렇더라. 

깨.끗.하.다. 


하지만, 요즘 내 위는 

아무 일 없는 척하려는 내가 웃긴다는 듯

입술 아래 턱에 매일 같이 뾰루지를 올려 보내고, 

커피 두 잔 이상을 마시면 복싱 펀치 하듯 나를 두들긴다.  

'마시지마. 마시지 말라고, 더 맞을래?' 

저녁을 챙겨 먹으면 어김없이 다음 날 아침에 입 속으로 시큼한 물을 올려보내서

'나 상태 안 좋은데 너 저녁 챙겨 먹었더라.' 하고 경고장을 날린다. 


그래, 나 아무렇지 않지 않다. 돌아버릴 지경이긴 하다.  

지금의 나를 도무지 받아 들이고 싶지 않는데 

결국, 이것 또한 나여서 받아들여야 해. 억울하게도. 

이게 골치 아프게도 최적의 답을 찾아가는 질문이 아니라 결과가 정해진 질문이잖아. 


노력 하며 살아도 이 나이까지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할꺼면 대충살껄. 

노력하고, 성실하고, 매 순간 충실하면 뭐라도 되는건 줄 알고, 

그 힘든 과정들마다 있었을 기쁨, 의미, 가치들은 붙잡지 않고 흘려 보냈는는데 이게 뭐야? 다 놓쳤잖아. 

삶의 과정마다 기쁨이 성실과 노력에 해가 될까봐서 
과정마다 늘 만족하지 않았고, 기뻐하지 않았고, 부족해했는데 


이제와 나에게 시계만 봤다고 나무라는거야?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나침반을 안 봤다고 탓해? 

알려주긴 했어? 왜 이제 와서 속도만 있고 방향이 없는 내가 한심한 거래. 참 웃기다. 

잘하는 게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아서 노력하고 성실했을 뿐이야. 

'성실한 거 필요 없어, 잘해야지.'라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요구하지. 


당신들은 시계와 나침반 함께 보면서 뚜벅뚜벅 걸었더니 거기 서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거야? 지금?

미쳤니? 당신 앞에 주어진 기회가 누군가는 쳐다만 봐야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해. 왜 모르지?  

발전적인 기회보다 누구나 해도 결과가 똑같았을 일을 할 기회가 나에게 자주 주어졌고, 

그럼에도 제기랄 그건 분명 필요한 일이였고, 누군가는 열심히 해야했어.  

화려하진 않아도, 성장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을 누군가가 성실히 했기 때문에 

여기가 무사하고 안일한 일상을 얻게 됐다는 것을 당신들은 왜 모르는거야? 


한참을 오고야, 여기까지 오고야

필요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인생을 허비했다는 걸 알았고, 

방향은 없고, 성실만 있었더라. 내가. 한심하게도. 

 

이런 나라는 걸 이제야 알아서

이런 나를 용납하고 다독여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 싫어.  

내가 능력지상주의자거든.

내 자신이지만 잘하는 거 없이 성실한 거 한심하고 불편해. 

남이였음 꼴도 보기 싫어서 아는척 안하고 살았을텐데......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어쩌자고 나를 알아버려선.

나.참. 나. 원. 참


늦지 않았다는 헛소리 하지마. 늦었어.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도 의미 있다고 고상 떨지마. 

고작,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려고 열심히 살지 않았어. 난


이런 비밀스런 나를 지켜보고 있는 동생의 격려 한마디

'언니, 밑바닥까지 가보고 천천히 올라오세요. 변한 모습 기대돼요.'


이런 증상을 먼저 겪은 친구의 조언

'야, 밑바닥에 갔다와봐.천천히 내려가고 싶은데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올라오는 건 엄청 더디더라.  

사람들이 그래서 추락하는데 날개가 없다고 했나봐. 

너가 그 말 하니깐 생각해 보니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시간이였던 것 같다.  

크게 뭔가 달라지진 않는데 그 이전처럼 살지 않게 돼. 겉 말고 속 말이야. 다녀와'

 

어제처럼 미련한 나를, 결국 받아 들이고 사랑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떠오르길래 적어두는 말: 2023년에도 맞는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