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에서 열린 <라스킨 탄생 200주년 라파엘 전파의 궤적> 전시를 보러 갔을 때 로제티의 작품을 오래도록 보게 되었다. 보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CF속 아름다운 여성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느꼈던 신비로움은 아직도 잔상에 남아있다. 특히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비너스 Venus Verticordia>작품은 여성인 내가 봐도 반할 것 같았다. 인어 공주 처럼 붉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여성이 세미 누드를 한 채 뚫어지게 정면을 쳐다보고 있다. 왼쪽 가슴이 봉긋 나와있고 주변 배경에 장미와 붉은 꽃들이 무성하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는 영국 라파엘전파 창단 그룹 멤버였다.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혹은 영감을 주는 여인들을 주로 많이 그렸다. 그의 작품들을 쭉 보다 보면 단시간에 공통점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대부분 그의 작품들은 여성 초상화라는 점이다. 그림 속 여성들이 달라도 이들의 공통점은 길쭉하고 강한 골격을 가지고 있으며 캔버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녀린 여인이기보다 신비로운 느낌과 강한 여신의 느낌을 준다. 그 공간을 자신이 주도하는 느낌이다. 특히 <페르세포네> 작품에서는 신비로운 느낌과 여성을 향한 로제티의 애틋함이 깊이 베어 있다.
로제티의 작품 <페르세포네> 속 여성은 <비너스 Venus Verticordia> 의 여인과 매우 흡사하지만 이 여인은 정면이 아닌 우리의 시선을 갈구하는 느낌이다. 시선을 아래쪽으로 보며 마치 ‘절 봐주세요’ 라며 붉은 입술과 붉은 석류로 유혹하는 듯하다. 이 여성은 제인 모리스이며 로제티가 사랑하던 여인이었다. 제인 모리스는 로제티의 친한 친구이자 예술공예 운동의 대표 디자이너인 윌리엄 모리스의 부인이었기에 금기 된 사랑의 관계였다. 금지된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인 모리스는 로제티의 작품 모델을 위해 꾸준히 포즈를 취했으며 둘의 관계를 지속했다.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이유는 제인과 로제티가 사랑이 싹 틀 무렵 이미 로제티는 혼인을 한 상태였다. 로제티의 부인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달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제인 모리스는 1865년부터 로제티의 그림 모델을 다시 하기 시작하며 이 둘의 관계는 불타올랐다. 누가 볼까 부끄러운 이 삼각관계를 베일로 가리기 위해 모리스와 로제티는 함께 켐스콧 메노 작업실을 공동 임대를 했다. 로제티는 그곳에서 2년 정도 거주하며 제인 모리스와의 사랑을 지속했다. 제인 모리스는 두 남자 사이에서 이중 적인 생활을 했다. 여름이 찾아오면 윌리엄 모리스가 아이슬랜드로 오랜 기간 탐험을 하러 나가는데 그 시기에는 로제티와 제인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겨울이 될 무렵 윌리엄이 돌아오면 남편 윌리엄과 두 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동시에 두 남자를 계절 별로 사랑을 했던 제인 모리스의 운명은 마치 페르세포네와 닮아 있다.
페르세포네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어느 날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의 미모를 보고 한 눈에 반해 그녀를 지하세계로 납치해버린다. 하루 아침에 딸을 잃게 된 데메테르는 너무 속상하여 자신이 돌봐야 하는 대지를 나 몰라라 하게 된다. 땅은 가뭄이 들고 곡식이 자라날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어버렸다. 한편 지하세계로 끌려 간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의 권유로 석류 한 알을 먹게 된다. 지하세계의 음식을 한입이라도 먹게 되면 지하와 지상을 오가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해진다. 황폐해져 가는 대지를 본 제우스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방관할 수 없어 페르세포네를 찾아 결론을 내렸다. 페르세포네는 일년 중 6개월은 지상에서 어머니와, 나머지 6개월은 남편 하데스가 있는 지하세계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로제티는 제인 모리스의 모습을 페르세포네와 닮아 있다 느끼며 그녀를 여신의 모습으로 미화시켰다. 폐쇄적이고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한 페르세포네의 뒤편에는 네모난 창문 처럼 빛이 들어온다. 이 빛은 따듯한 계절이 오면 올라갈 지상세계를 의미한다. 또한 빛을 따라 벽을 타고 올라 가는 식물 아이비는 매달려 있는 추억들을 의미한다. 벽에 달라붙어 타고 자라나는 아이비의 특성 처럼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로 끌려 오기 전의 기억들과 후회들을 암시한다. 이처럼 로제티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들을 중세 시대의 제단화 같은 느낌으로 그려 넣으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였다. 아직도 로제티가 남긴 여인들의 강렬한 아름다움은 우리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며, 이는 자신의 뮤즈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제인 모리스의 모습
<그림 속 제인 모리스>
▲Dante Gabriel Rossetti, Persepone, 1874
▲Dante Gabriel Rossetti, The Day-Dream, 1880
Dante Gabriel Rossetti, Blue Silk Dress (Jane Morris)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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