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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Jun 27. 2023

완벽하게 낭만적인 바다

다시 찾게 되는 윌리엄 터너의 풍경 작품

미술 작품들은 개인의 나이, 경험의 정도에 따라 때를 맞춰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십 대, 이십 대 때 잘 보이지 않던 작품이 서른 중반이 넘어 다시 그 위대함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윌리엄 터너의 작품이 그러합니다. 잘 보이지 않던 것이 다시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은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통해 윌리엄 터너의 작품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인위적 이어서인지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것들을 찾게 되는데요. 그래서인지 기계문명과 거리가 먼 자연에 대한 경이감과 향수를 가지게 됩니다. 올봄에 찾은 지중해의 넓고 푸르른 바다가 머리를 가득 채우니 요즘 색채가 흐린 서울의 삶은 살만 해집니다. 햇살에 일렁이는 에메랄드 색의 잔상이 보이니 조만간 또 찾을 생각으로 설렙니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줄여서 'JMW 터너'라 불리는 이 화가는 영국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이발사이며 가발을 만드는 일을 했고, 어머니는 터너가 어릴 때부터 정신병을 앓고 있던 이유로 정신병동에 보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터너는 브랜트포드에 있는 삼촌들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이 후 마르게이트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 그림에 대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고, 터너의 아버지는 아들의 드로잉 작업들을 이발소에 붙여 사람들에게 자랑도 했다고 합니다. 1789년 터너는 본격적으로 로열 아카데미를 입학하며 작업 스킬을 향상해갔습니다. 터너가 특히 좋아했던 재료는 수채화였습니다. 수채화 기법은 그의 후기 작품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주요 밑작업이 됩니다.


<난파선>


윌리엄 터너의 낭만주의적 대표작들을 보고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평안하고 고요한 자연이 있다면 그 어떤 존재도 통제 불가능한 자연의 모습이 있지요. 터너가 만들어 낸 바다에서는 배가 난파되는 사고와 거대한 파도에 속수무책인 인간들이 보입니다. 1805년 <난파선>은 실제의 사건을 다룬 것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터너의 감정이 이입이 되는 것이 엿보입니다. 


터너는 인물의 크기를 자연과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하며 빛과 그림자의 명암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개미만 한 크기의 사람들은 최대한 이 바다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스며 노를 젓고 배에 찰싹 달라붙어 있습니다. 가운데 배에 타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고, 오른쪽에 있는 배는 이미 파도를 타서 왼쪽으로 많이 기운 모습입니다. 아마도 다음 스텝에서 왼쪽으로 좌초될지 다음 파도를 탈지는 예측이 불가해 보입니다. 왼쪽 뒤편에 있는 배 역시 돛의 상태를 보면 더 이상 배의 방향 전환이 어려워 보입니다. 어디로도 피신이 불가한 이 상황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터너는 세차게 부딪히는 파괴적인 파도를 보여주기 위해 검은 바닷물과 흰색의 파도가의 대비감을 매우 잘 보여줍니다. 하늘은 검은색 바다와 비슷하게 누런 잿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쉽사리 몇 분 안에 먹구름과 폭풍이 거치지 않을 듯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이는 온전하게 펼쳐진 하얀 돛은 이들의 마지막 희망처럼 보입니다.  

윌리엄 터너의 작품은 흐르는 자연의 성질을 빛과 흐릿한 붓터치를 사용해 우리의 시선을 끊임없게 움직이게 만듭니다. 인간을 삼켜버릴 듯한 자연은 고정되는 존재가 아니지요. 프랑스 작가 앙리 루쏘가 그린 뻣뻣한 자연과 매우 대비되기도 합니다. 리듬을 타며 움직이는 자연풍경은 이후 인상주의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요즘 다시 터너의 작품을 보게 되는 이유도 자연풍경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키 높은 가로수길 나무들, 화단에 심어 있는 색 바랜 꽃들은 그냥 땅에 꽂혀 있는 액세서리 역할일 뿐 자연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도 잠시 그 ‘액세서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좋아집니다. 그러나 마음의 동요까지 일으키는 정도는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서울에 살며 이러한 감성과 낭만의 부족함은 터너의 작품으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터너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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