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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연재 Aug 08. 2023

벗어나고 싶은, 벗어날 수 없는 도시

에드워드 호퍼 <호텔방>

미국 사실주의 작가인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보면 내심 놀라게 됩니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지는 도심이라는 환경이 조성하는 심리를 보여주기 때문이죠. 도심이 주는 익명성은 편리성과 자유를 줍니다. 동시에 수많은 인파로 인한 고립감도 경험하게 만듭니다. 


호퍼는 문화, 경제적으로 번창하고 화려했던 뉴욕의 20세기를 살았죠. 그래서인지 그 누구보다 번잡한 도심의 현실을 이해하는 듯 보입니다. 저 역시 도심에서 태어나 자라고 사통팔달 지역에서만 살았습니다. 도시를 떠나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직은 그럴 배짱은 없습니다. 이미 그리드 도시에 갇혀버렸으니까요. 그리드 속에서 안정감을 갖게 되면서도 동시에 고립감에 괴롭습니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충동성이 분기별로 찾아오면 이를 진정시키는 것도 하루 일과가 되어버립니다.

에드워드 호퍼도 이를 아는 듯합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도심 속 클로즈업 된 공간, 그 속에 한두 명의 등장인물 만으로도 묵직한 분위기와 스토리를 만들어냅니다. 단순한 공간과 특성 없는 인물이 만들어 내는 익명성 때문에 나 자신을 투영해서 바라보게끔 합니다. 사실주의적 그림이라기보다 거울 속 나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호퍼는 초창기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하면서 사실주의 적인 회화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차차 시간이 가면서 사실적인 구상에 추상성을 가미합니다. 추상성이라 하면 그 당시 만연했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호퍼가 창조하는 추상성은 딱 꼬집어 명쾌하게 정의 내리기 힘든 도심이라는 공간과 사람 사이의 긴장감입니다. 그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한 어떤 요소들을 사용했는지 관찰해 내는 것이 우리의 몫이기도 합니다.



<호텔 룸>에서는 호텔 방에 앉아 있는 익명의 여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안 든 이 여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죠. 산업 도시라는 환경 때문입니다. 고층 빌딩들이 가깝게 붙어 있기 때문에 창문을 통해 누가 무엇을 하는지 엿보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게 되죠. 


Hotel Room


그림 속 여성은 실제로는 호퍼의 아내 조 Jo입니다. 조가 다이어리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을 위해 호퍼의 워싱턴 스퀘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여인을 조라고 인식하지 않고 ‘나 자신’으로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내가 아는 어떤 이든 이 공간 속 여인이 될 수도 있어요. 왜냐면 이 공간은 호텔이지, 특정인의 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간 속 가구, 침대 시트, 벽 그 어떤 것에서도 개인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림 속 여인은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짐도 풀지 않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조의 메모에 따르면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짜 기차 시간표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합니다. 중요한 건, 옷도 다 갈아입지 않은 채, 짐도 다 풀지 않은 채,  우두커니 앉아있는 여성의 몸과 얼굴에 떨어진 짙은 그림자가 말해주죠. 그 종이 한 장이 그녀에게는 무엇인가 고민을 하게 만들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요. 



호퍼는 도심 건물들의 무미건조함을 구도와 그림자로 표현합니다. 세로 선들로 만들어지는 단면에 서로 대비되는 색들을 배합합니다.  <호텔 룸>에서는 가장 왼쪽 편에 있는 석조 건물 벽의 단면과 오른편 나무 케비넷의 옆모습이 공간의 깊이감을 더해서 폐쇄적인 시야를 만듭니다. 가리려 하면 더 들춰내고 싶은 심리를 자극합니다. 



호텔방은 개별성 특징을 결코 드러낼 수 없죠. 어떤 누가 와도 하룻밤을 불편함 없이 자고 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있을 수 없지요. 요즘 호텔은 마케팅 차원으로 각종 문화나 이벤트, 스토리텔링을 끌어드리는 컨셉을 시도합니다. 럭셔리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하고자 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죠. 그렇다 해도 인간적인 따스함이나 고유한 개별성은 존재하지 않지요. 그저 결국에는 일회성일 뿐입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 전에 사용했던 모든 흔적들을 지워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공간인 샘이죠. 호텔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도심 속 공간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도심의 절대고독을 느끼게 만드는 호퍼의 그림들


Edward Hopper, Office in a Small City
Nighthaw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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