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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편소설 쓰는 남자 Sep 13. 2021

욕이나게 쓴 범생이전(傳)

간편소설 스물여덟

장안에서 그럭저럭 이름을 얻은 중천공의 외동딸은 어려서부터 총기가 남달랐던 데다가 해가 갈수록 미모가 일치얼짱하여 뭇 도령들이 ‘내 인생의 발여자’로 삼고 싶어 하였다. 장례 희망이 중천공의 사위인 도령들 가운데 상사병에 밟혀 죽은 이가 있어, 젊은 조문객들은 삶과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안습을 금치 못하였다.


이런 와중에 또다시 안습한 사태를 맞이하였으니, 그건 바로 중천공의 딸에게 혼담이 들어왔다는 소문이었다. 상대는 갓 벼슬길에 오른 위인으로, 남이 일해라 절해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도 하고 절도 하는 범생이였는데, 동문수학한 이들은 범생이의 바른생활을 두고 골이 따분하다며 하품을 남발하였다.


허나 힘들면 시험시험하라는 스승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은 범생이가 소과 초시와 복시, 대과 초시와 복시에 전시까지 연달아 통과하자, 공부에 관한 한 멘토로 삶기 좋은 인재라 여긴 동문들이 육질 보드라운 수육에 향기 좋은 술을 마련하여 대접하고 어울리기를 즐겼다.


이렇듯 잘나가는 범생이가 중천공의 딸을 취하리라는 소문이 뭇 도령들을 싫음 빠트릴 즈음,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세자빈 간택 문제로 금혼령이 내려진 것이었다. 당연히 중천공의 딸과 범생이의 혼담도 중단되었는데, 지금이야 어의없는 사생활 치매이겠으나 왕명에 죽고 사는 당시로서는 허준이 나서도 못 고칠 이었다.

 

그나저나 여차저차해서 왕실의 눈에 든 중천공의 딸이 세자빈으로 간택되자, 뭇 도령들은 싫음에서 벗어났다. 상대가 범생이인 것은 질투나지만 세자라면 체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자의 장인이 된 중천공은 어깨에 날개가 돋쳤다.


반면에 범생이는 닭 쫓던 개가 되어 대궐 지붕만 쳐다보다가 중2병에 걸렸다. 살짝만 건드려도 마구 눈을 불알이고 임신공격을 해댔다. 당하는 처지에서는 거시기가 쪼그라들고 없던 애도 떨어질 지경이었다. 더구나 수틀리면 김을파손까지 일삼은 탓에 결국 파직당하고 멘토로 삶겠다며 법석을 떨던 동문들도 김새듯 사라졌다.


범생이의 진상 짓이 거듭되는 동안, 왕이 병을 앓다 죽고 세자가 즉위하면서 세자빈은 일약 중전마마가 되었다. 그만큼 높아진 중천공의 위세는 중전이 회임하면서 하늘에 닿았다. 그 위세를 믿고 까부는 하인들을 두드려 팬 범생이가 오랄을 받고 하옥당하자, 중천공에게 무리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입술이 부르트도록 사죄한 아비 덕분에 사건은 범생이를 훈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장가를 보내면 광증이 잦아들까 싶어진 아비가 나물할  없는 맛며느릿감을 찾았으나, 곱셈추위에 얼어 죽은 풀때기마냥 혼처가 나지 않아 입맛만 곱으로 다셨다. 그 사이, 산달을 넘긴 중전이 난산으로 죽고 아이도 죽자 마마 잃은 중천공의 위세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범생이의 중2병이 홀연히 사라졌다. 이듬해 말을 타고 지나다가 본 중천공의 집은 을씨년스러웠다. 무덤 같은 곳에 지난날의 기억을 묻기라도 하듯 잠자코 있던 범생이는 이내 말을 몰아 신부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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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에서 요긴하게 쓴 맞춤법 파괴어들

   

욕이나게 → 요긴하게

일치얼짱 → 일취월장

발여자 → 반려자

장례 → 장래

삶과 → 삼가

일해라 절해라 → 이래라저래라

골이 따분 → 고리타분

시험시험하라 → 쉬엄쉬엄하라

삶기 → 삼기

싫음 → 시름

어의없는 → 어이없는

치매 → 침해

불알이고 → 부라리고

임신공격 → 인신공격

김을파손 → 기물파손

오랄 → 오라(오랏줄)

무리 → 물의

나물할 때 없는 맛며느릿감 → 나무랄 데 없는 맏며느릿감

곱셈추위 → 꽃샘추위

마마 잃은 중천공 → 남아일언중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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