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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Sol Oct 16. 2019

디폴트립을 떠나보내며


디폴트립을 떠나보내며




3월부터 만들기 시작했던 디폴트립 시리즈가 상영회를 끝으로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약 6개월간의 제작기간 동안 참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찌 되었든 모든 에피소드가 업로드되었다. 여기에 디폴트립을 아껴주신 많은 분들과 한 자리에 모인 상영회까지 열었으니, ‘유종의 미를 거뒀다’고 기꺼이 평하고 싶다.

처음엔 무척 호기롭게 편집을 시작했다. 입국하자마자 음원 결제를 했고, 티저를 만들고, 작업실을 구했다. 3월 첫 한 달은 온전히 디폴트립 편집에만 모든 힘을 싣었던 것 같다. 수년간 관련 직종에서 일했던우리지만,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편집이었으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존재하는 몇 예능들을 참고하며 레퍼런스를 짜고, 화면 틀을 만드는데도 한 세월이 걸렸다. 누군가 편집은 ‘현대의 삯바느질’이라고 했다는데, 그 말을 증명하듯 첫 번째 에피소드는 내 손에서만 4-5일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디폴트립 편집 특성상 내 손에서보다 민지 손에서 더 오래 걸리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3월에 올라간 업로드 본들은 편당 10분 남짓을 위해 일주일 정도가 소요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우리 뜻대로 영상이 터져주지 않았다. 아마 실적을 중시하는 회사였다면 퇴사 권유를 받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유입이 생각처럼 흘러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너무 난감했다.


영상을 기획할 11월 말 무렵, 우리 채널은 하루에 구독자 증가가 거의 천 명씩을 찍던 때였다.(딱 한 달간만 이어진 현상이었지만 그 때는 몰랐음) 때문에, 여행 영상이 이 기세를 이어 채널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레거시 미디어는 물론이고 온 매체에 ‘여행 영상’이 흘러넘치는 때니, 자유로운 여성의 모습을 담은 여행 영상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채널의 구독자 뿐만 아니라 유튜브 내에도 숱하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흘러들어올 유입이라고 생각했던 영상들에서 디폴트립으로 넘어오는 인원이 적은 데다가 그 적은 인원의 시청 지속률이 10초대였다. 영상을 누르자마자 나갔다는 뜻이다. 영상의 재미를 판별하기도 전에 화면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영상을 튼 시청자가 화면에 기대하는 것이 없었다는 말인데, 결국 그것은 디폴트인 우리 모습이 ‘기대하는 바’가 아니었다로 해석됐다.

심지어 구독자들 사이에서도 디폴트립이 지속적으로 업로드되자 ‘본 콘텐츠 언제 올라오냐’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는 뭘 위해서 이걸 만들고 있는 거지?’

낮은 실적을 이끌며, 에피소드의 중반쯤에 도달하자 우리는 한계점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구독자들에게도 외면받는 시리즈의 당위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

숱한 고민들이 이어졌지만, 우리는 그래도 했다. 이걸 반드시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래도 했다.

나는 결국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영상 콘텐츠가 도달할 종착역은 여성 혐오를 지적하며 우리가 밤낮으로 화를 내는 영상이 아니라, 디폴트(사회적 여성상을 입지 않은 상태)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지적할 것이 남아있는 세상은 내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다. (비판의 끈을 놓은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온 세상에 넘치는 여성 혐오적 콘텐츠들은 대단한 사고를 거쳐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어색할 것이 없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매일 백만뷰를 찍으며 트렌딩 탭에 등재되는 영상을 보면, 대놓고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한 썸네일과 여성 혐오적 발언들이 판을 친다. 트렌딩에서 매일 그것들을 발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을 제작하는 사람들과 소비자들에겐 그 모든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대단한 신념이나 사고가 동반되지 않는다.

때문에, ‘여자 혼자 OO여행’, ‘낯선 남자와 OO한 일’, 혹은 ‘여자가 OO에 가면 벌어지는 일’과 같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구가 동반되지 않은 디폴트 여성들의 여행 영상은 주류 시청자들에겐 낯설었을 것이다. 어디서 재미를 찾아야 하는지 몰랐을 가능성도 높다. 분명 여성인데, ‘여성을’ 보는 재미가 없으니, 이 사회에선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는 결국 디폴트 여성들이 제작하는 일상적인 영상들-유튜브에 흔하게 올라오는 주제-의 파이가 반드시 커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튜브도 결국 시각을 다투는 파이 싸움인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시청자가 유튜브에 부여하는 자신들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그러는 한편,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디폴트 여성이 제작한 영상의 시작으로서 이 시리즈는 분명히 성공한 콘텐츠다. 오프라인 상영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침으로써, 여성이 만든 여성 서사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경쟁력이 있음을 가시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날 촬영된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되고 나면, 우리를 지켜보는 혹은 주시하는 이들이 또 하나의 예시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총 18개의 영상을 만드느라 고생한 민지에게, 우리에게 박수를 보낸다. 또한 시리즈를 애청해주신 분들과 상영회까지 찾아주신 약 180여명의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올린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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