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마트, 이토록 다른 삶
"비싸서 못 갔던 곳"
여행을 떠나기 전, 나에게 스위스는 이 한 문장으로 정리되던 나라였다. '가고는 싶은데, 비싸서 못 갔던 곳.' 물론 이번에 그곳을 여행했다고 해서, 풍족한 스위스 여행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천문학적으로 비싼(진짜임) 체르마트 역 근처의 숙소에 입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타쉬역은 차선책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4일간 약 60만 원의 방을 구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타쉬에서 체르마트로 향하는 기차는 15분 정도 타는 주제에 1인당 왕복 2만 원 정도라, 이틀간 두 번 밖에 타지 못했다. 때문에 가기 전부터 스위스 패스를 끊어야 하는지, 플렉시 패스를 살지말지, 구간권 계산 등 정말 진절머리 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가성비를 찾기위해.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 우리는 교통비에서 많은 지출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는 그런 곳이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스위스 기차를 끊으며, '스위스 벌써 지겹다.'라는 소리를 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위스는 도착하자마자 '와'라는 탄성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하늘과 땅이 지금껏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어디에 있든 해가 떠있는 동안엔 햇볕으로 휴대폰 화면이 안보였고, 파란 하늘에 눈이 시린 기분이었다. 지금까지도 미세먼지 경고를 받는 한국인인 덕분에 그 자연환경에 얼마나 감격스러워했는지, 정말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더불어 우리가 방문한 4일 내내 날씨가 정말 좋았던 탓에, 스위스가 추운 나라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심지어 덥기까지 했으니 바리바리 챙겨간 내복이 무색했다. (오죽했으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추운 곳은 파리였다고 말할 정도다.) 특히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올라갔을 때, 너무 더워서 깜짝 놀랐었다. 해라는 것과 그렇게 가까이 서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해의 직경이 그렇게 크게 보이는 경험도 처음이었고, 내리쬐는 해를 온몸으로 받아내던 것도 무척 생경했다. 그렇게 해가 내리쬐는데 눈이 쌓여있다는 사실도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비현실적. 비현실적인 풍경.
이제 스위스에 가장 어울리는 한 문장은 '비현실적인 풍경의 나라'로 정리하고 싶다.
어딜 가든 비현실적이었다. 해는 미친 듯이 내리쬐는데 무릎까지 쌓여있는 눈이 동네에 가득하고, 그에 반해 개울물은 얼지도 않은 채 폭포처럼 쏟아져내린다. 이 모든 것이 공존한다. 미물인 인간으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장면들이었고, 지금도 그 풍경을 생각하면 얼떨떨하다.
그리고 곧 생각했다. 여기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이 풍경을 얼마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을, 이곳 주민들은 어딜 가서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유럽 어딜 가던 드는 생각이었지만, 스위스만큼 나라가 가진 메리트를 압도적으로 느낀 곳은 없었다. 발을 디뎌본 나라들 중 스위스는 단연코 이 부분에서 1등이다. 반박 불가.
푸른 초원과 눈이 공존하는 풍경은 또 얼마나 충격적일까. 마터호른을 바라보는 전망대에서 나는 또다시 여름에 방문할 스위스를 꿈꿨다. 그리고 말했다. "돈 열심히 벌어서 또 와야지."
여행을 왜 다시 가느냐 묻는다면, '이런 경험들이 삶을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 돼서'라고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가진 돈을 자꾸 축내는 일이니 여행 갈 돈을 아껴 집사는데 보태야 한다는 말. 맞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풍경과 그곳에서의 경험이 삶의 원천이 되고, 직업적인 영감으로 다가오기에 이 가치를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 가치를 놓치지 않되, 이 삶을 충분히 멋지게 영위할 수 있을 만큼 더 많은 돈을 벌 것.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
▼ 발행 콘텐츠 [디폴트립 5화] 스위스 여행 영상 하말넘많이 끝내드립니다 | 드론 맛집 하말넘많 개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