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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Sol Mar 30. 2019

디폴트립 2편 | 여행이 끝나면 미화되는 것들

프랑스 파리의 인상


개인적으로 폭풍 같았던 한 주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넘을 능선이 아직 남았지만 어쨌든 토요일이다.

이번 주는 정말 복잡했다. 그리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현생 속에서 치이다 보니, 자연스레 '다 때려치우고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여행이 끝나면 미화되는 추억'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며칠간 겪은 풍랑이 그 주제를 더욱 공고히 만들어 주었다. 내가 만든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여행 영상을 보면서 나는 또다시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이 끝나면 미화되는 것들

지금까지 여행했던 나라, 도시들이 무조건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구역질을 참으면서 버텼던 순간들도 있고(러시아 이르쿠츠크), 해산물을 잘못 먹어 장염에 걸린 기억으로 뒤엎어진 여행지(필리핀 세부)도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멀어진 그 옛 기억들은 하나같이 '타국'이라는 이점 하나로 썩 나쁘지 않았던 순간으로 모두 둔갑했다. 당시에는 속이 뒤집어지고 눈물을 흘려도, 일터로 돌아와 상기하면 모두 겪었던 순간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건 모두, 적어도 지금 내가 헤매고 있는 이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미화다.



파리라는 도시

여행자들의 첫인상이 극단적으로 나뉘는 도시 중 하나가 파리다. 누구는 그 도시를 역한 냄새로 기억하고, 누구는 자유로움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파리는 무색무취의 도시였다. 별로 감흥이 없었다. 물론 임팩트 있는 순간이 있었지만 파리에서 느꼈던 감동이 별로 크지 않았다. 에펠탑도, 몽마르뜨, 오르세, 루브르 등 그 어느 유명한 어트랙션도 지나고 나서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왜 그랬을까. 지금 떠올려보면 심적으로 굉장히 지친 상태에서 파리를 마주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 유럽여행이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파리에 도착했고,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파리가 제대로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올랭피아를 보기 위해 방문했던 오르세 미술관도 그 돈값을 했는지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숱한 작품들 중에, 정말 올랭피아 하나 빼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에펠탑을 어떻게 봤는지, 몽마르뜨에서 어땠는지, 아무기억이 없다. 위험지구 속에 있던 숙소에 대한 스트레스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불어닥친 추위에 떠느라 긴 옷을 사 입었던 기억이 더 크다.


그러니까 파리는, 뭐랄까. 딱히 다시 가보고 싶지도,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싫었던 도시도 아니고, 그냥 내 기억에서 별 것 아닌 이미지로 묻혀버렸던 도시 중에 하나였다. 여행지의 미화가 일어날 임팩트 조차 없었던 것. (이건 많은 여행지를 한 번에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파리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을 때도 큰 기대가 없었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미화

그리고 다시, 에펠탑의 야경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내가 파리를 와봤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정말 여기를 와봤던가? 직접 경험했던 순간들에 현실 감각이 없어지면서 처음으로 에펠탑을 보는 듯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오래돼서 그렇다고 하는 것은 비약이었다. 나는 그냥, 예전에 여행을 하던 그즈음엔 글자 그대로 '대충' 여행을 다니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기억이 없지.

처음 겪는, 재밌는 현상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파리를 처음 보던 그 즈음은, 관광지 앞에서 인생샷 하나 건졌으면 그만인 여행을 다닌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때 찍었던 사진들은 외장하드의 사망과 함께 거의 모두 허공으로 날아갔다. 부질없는 행위의 말로다.


그러니, 다시 돌아와 파리의 첫인상은 이제 '아름다운 에펠탑'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침에 숙소를 나설 때마다 마주했던 에펠탑은 전봇대와 다름없는 철골 그 자체로 느껴졌지만, 적어도 어둠이 깔린 도시와 키가 낮은 건물들 사이에 우뚝 서있는 노란색의 에펠탑은 아름답다는 단어가 매우 어울리는 구조물이었다. 이것 하나가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을 파리에 불러 모으고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이번에 파리를 방문했던 이유도 죽기 전에 에펠탑은 봐야 하지 않겠냐는 민지의 말 때문이었으니까.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이번 파리는 어떻게 기억될까. 삶의 어떤 지점과 맞닿아 파리라는 도시가 갑자기 극단적으로 미화되어 그곳을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아니면 이제 그 도시는 이렇게 마무리가 될지 궁금해진다.




https://youtu.be/XSVXrq_4kaM

발행 콘텐츠, 디폴트립 2편

https://youtu.be/PFgSN4WxGPo

발행 콘텐츠, 디폴트립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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