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생 이후로 ‘일기’를 써본 적이 없다. 물론 공부를 할 때는 스터디 플래너라는 이름표가 달린 수첩을 내내 끼고 살았지만, 일기장의 개념은 아니었다. 그러니 일기는 초등학생 때 절필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일기 예찬’을 할 때도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크게 공감이 가질 않았고, 무엇보다 귀차니즘 만렙인 내가 매일매일 무언가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 귀찮았다.
그랬던 내가 덜컥 일기장을 샀다. 충동구매였다. 첫 페이지는 5월 13일에 작성되었으니 어느덧 이 여정도 3달을 향해 가고 있다. 한두 번 뛰어넘은 적도 있으나 밀려서 쓸지라도 그날의 기록을 놓치지 않고 싶은 마음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99% 정도는 채워져 있다. 물론 기록의 질이 높지 않은 날도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했다. 피곤했다. 작업실 가서 편집을 했고 가게에 출근했다. 피곤하다.’와 같이 그야말로 7살 일기처럼 쓰인 장도 있지만 그날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록’이 남아있다는 게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일기를 써 가던 중, 여느 때처럼 출근길의 덜컹거리는 버스에 앉아 있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음악에 대한 기록도 하나의 일기가 되지 않을까?’
나는 내 마음에 드는 노래나 앨범이 있으면 그 트랙의 골수가 빠질 때까지 질리도록 듣다가 이내 다른 음악을 찾아 떠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어떤 음악들은 듣기만 해도 그 음악을 들었을 때의 시간과 정서가 그대로 남아있다. 때문에 이 음악들을 기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한 달 넘게 하다가… 이제야 글을 끄적여 본다.) 매일 쓰는 일기라기 보다는 어떤 시기를 통째로 기록하는 느낌에 더 가까울 것 같다.
그러니 이 챕터는 내가 듣는 음악을 간단하게 기록하는 궤적이 될 예정이다. 음악을 분석하거나 거창하게 뜯어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음악에 왜 빠졌는지. 내가 이 음과 가사에 환희를 느끼는(혹은 느꼈던 대과거) 이유가 무엇인지 기록해 보려고 한다.
첫 글을 바로 쓰러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