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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Sol Sep 05. 2021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2  J.clef - 지구 멸망 한 시간 전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100문 100답에서나 들어볼 법한 허황된 질문이지만,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을 들을 때는 꽤나 진지한 물음이 된다. 내가 이 노래 속의 풍경에 들어가 있다면, 난 어떤 모습일까?

머리 위로 운석이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어떤 모습이고 내 눈앞에는 무엇이 보일까. 이러한 질문은 끝내 디스토피아 적이며 자조적인 상상으로 끝나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하다.

‘태어나는데 순서 있어도 가는 데 순서 없다.’는 말을 뛰어넘어 모두가 평등하게 한날한시에 생을 마감하는 순간. 지구마저 생명을 끝내는 순간. 나는 어디에 있을까?



J.clef가 그린 지구 멸망 한 시간 전 풍경 안에는 우리가 지리멸렬하게 지켜본 삶의 단상들이 가득하다.


신앙이 지켜주는 이들은 모여 다음 생 모습까지 소망하며 이방인인 나의 미래까지도 기도해 주지만 나의 훗날은 아무렴 좋지
대가를 치르고 살았지 나의 죄여 내 믿지 않는 창조주여
담엔 태어나겠느냐 물어 주소서


오늘도 거리에서 ‘천국에 미리 다녀온 자가 썼다말도  되는 책을 들고 열심히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사람, 각자의 종교를 설파하는 사람들을  자리에서 보았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거라는 스피커가 달린 차와  옆에서 경쟁하듯 천국에 다녀온 사람의 경험을 파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을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는 수많은 인파까지.

이런 순간엔 ‘아수라장’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인간의 안녕을 비는 종교를 생각해보면 애석함을 감출 수가 없다.

익명의 누구에게도 환영도 받지 못하는, 거리에 울려 퍼지는 종교는 사람들의 눈살을 몰고 다닌다.

‘이방인인 나의 미래까지도 기도해 주지만’이라는 대목에서는 숱하게 만났던 이러한 광경들이 눈앞에 재생됐다. 운석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반복될 것 같은 느낌.

모두가 서로의 종교를 믿어야 다시 태어날  있음을, 천국에   있음을 경쟁하고 있을 만 같다.


여기저기서 도난 알람이 울고 누구도 달래 줄 수가 없지
덩치를 가진 이들은 약한 자의 소란 앞에 웃음이 터지지


지금 이 시대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하는 두 줄의 가사라고 생각한다. 힘이 센 자들이 마지막까지 소유하는 세상의 모든 것.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도 변하지 않는 약육강식의 법칙.

그 어느 데도 쓸 일이 없지만, 죽기 전에 마음 깊은 곳에 가득한 물욕을 해소하려는 움직임.

슬프게도 성악설을 믿는 편이기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욕망을 드러내는 시간 가장 허무한 우리는 추하지 않을 거야’
‘서로 미워하는 맘은 녹아 본래 모습이 사랑인 양 그제야 알게 된 엄마 아빠도 서로 끌어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일말의 믿음은 져버리지 않는다.

나 역시도 성악설을 믿으며, 디스토피아적인 가사들에 끄덕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가사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시니컬한 시선 속에서도 ‘아직 세상은 살만할 이라는 역설적인 믿음에 안도하는 것이다.


노래의 마지막엔 필름이 감기고, 누구도 확인하지 못할 사진을 찍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며 다 함께 멸망의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10,9,8,7,6,5,4,3,2,1,

그리고 환호.


다음 트랙은 다시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 듯한 ‘프리-퀄’로의 진행. 다음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지구 다음의 행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오늘이 아니어도 매 순간은 어차피 운석 드리우는 삶이야’



덧)

예전에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실 지구의 종말엔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되어 새로운 문명이 등장해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그러니까 0 1 이루어진 데이터가 모조리 파괴되면 우리는 이 행성에서 어떤 것도 발견할  없는 것이다.


이미 종이가 사라진 시대에 지구가 멸망한 뒤, 다시 파피루스가 발명되고 활자가 발명되고…

우리가 쓰는 언어, 종이, 모든 것이 리셋된 다음 세대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며.

그런 망상을 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덧붙인다.


최근엔 블랙홀 내부에 있는 ‘사건의 지평선’에 단단히 빠진 적이 있었는데… 오죽하면 물리학에 관심이 갔을 정도.

아무래도 나란 인간은 우주에 관련된 사실들에 크게 매료되곤 하나보다.

이 노래도 못 해도 1000번은 들었을 것이다. 우주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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