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에도 불이 붙는게, 연애다.
연애는 정말 예민하다. 단어와 억양, 표정, 한숨까지 대화의 모든 사소한 요소들이 싸움의 근원이 될 수 있다. 한숨 하나에도 불이 붙는게, 연애다.
연애에도 적절한 언어가 있다. 적절한 연애의 언어라는 것은 아마 적절한 '레토릭'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어쨌든 다양한 관계에서, 특히 연애에서 만큼은 '대화'가 원초적이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연애의 대화란 교묘하다. 상대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얻어내기도 하고, 상대의 말투나 비언어적 요소들로 기분을 예측할 수도 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사랑이 뿜뿜 더 샘솟게도 한다. 그리고 잘못 꺼낸 말 한마디와 순간의 표정에 비극을 불러오는 것도, 대화다.
나와 그(녀)가 통하는 대화방식
우리는 나름대로 꽤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기준으로 연인을 결정한다. 자신과 취향이 잘 맞는 사람인지도 중요하고, 라이프스타일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관용, 성격은 어떠한지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물론 외적인 것과 능력도. 나 또한 현 남친과 연애를 결심하기까지 들이댄 나름의 기준들이 있었다.
여러 기준들은 중요성이나 우위를 따질 수 없다. 그럼에도 모든 기준들을 초월하는 것은 바로 '대화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타협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대화가 없다면 그 연애의 생명도 그리 길진 못할 거다. 말이 안 통하는데, 아니 대화가 안 통하는데 어떤 진전이 있을 수 있을까.
많은 것들이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대화의 방식이 잘 통한다면 다름을 이겨나가기 수월해진다. 사실 '다름'은 그 자체로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름을 설명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싸움을 일으킨다. 그러니 대화의 방식이 잘 통한다면, 서로의 감정을 존중해주는 대화를 한다면 연애는 훨씬 더 건강해 진다.
오랜 연인의 매너리즘
"오래 연애해보니, 편하고 좋은것도 많겠죠?"라는 질문을 많이 만난다. 4년 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기간이 아닌데, 그 기간 동안 변함없이 날 사랑해 준 남친에게 고맙다. 이렇게나 지랄맞은 나인데. 그러나 최근들어 부쩍 느끼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생각이다. 아니, 매너리즘 보다 더 최악이다.
그러니까 이 또한 나의 잘못에서 시작했다. 대화가 거칠어지고, 서로의 감정이 분출되면 나는 그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항상 이런식이지!"하고 더이상 대화하기를 거부했다. (지극히 내 시각이지만) 항상 젠틀할 것만 같았던 남친 또한 점점 짜증이 늘었다. "왜 한 번 말하면, 말을 안들어?"라고 하거나 "제발 좀 그렇게 하지마. 그건 날 망치는거야."라는 말이 많아졌다. 그래, 한 번 말할 때 말을 들어달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날 망치는거야'라는 식, '제발 좀 그러지마'하는 표현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내가 그렇게까지 심하게 했나 싶기도 하고, 저 말 한마디로 나 자신을 참 답 없는 여자처럼 느끼게 했다. 그런 말 있지 않은가,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진짜 기분 나쁘고 자존심 긁는 그런 말. 딱 그랬다. 저 말들이.
서로 오가는 대화에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것을 보며 '우리가 매너리즘에 빠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4년 반 동아 내 곁에 있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관성에 착각했다. 그동안 많이 싸우면서도 내 곁에 있었으니, 앞으로도 싸우더라도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종교처럼 잠식해 있던거였다.
안정과 안일은 천지차이다. 안일은 그 뒤에 부정적인 것들이 뒤따라온다. 그래서였을까. 4년 반의 연애에 안일해져 서로의 감정이 예의없이, 배려없이 드러났던 까닭이.
이기적인 감정 정리법
연애에 있어 '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했는지'는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 '먼저 감정을 터뜨린 사람' 쪽이 된다. 미안하게도 나는 좋은 대화의 방식을 가지지 못했다. 항상 차분하고 젠틀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남친에 반해 나는 감정적이었고, 공격적이었다. 아직까지도 이 습관을 완벽히 고치지 못했지만, 조금씩 고쳐나가면서 상대에게 할 말을 고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그동안 감정적이고, 공격적인 대화를 해왔던 것은 그만큼 내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기준이 옳고, 나의 감정이 중요하고, 이 감정을 알아주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그가 미웠다. 그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그의 잘못, 나의 감정을 상하게한 그의 말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예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나의 이기적인 감정을 먼저 정리해야 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야만 차분하고, 침착한 대화를 해 나갈 수 있었다. 이를 느낄 무렵,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이기적인 감정 정리법>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이 말하길, 감정의 혼란은 삶의 혼란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감정이 명료하게 정리되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매우 좋은 말이다. 감정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면 계속 감정에 휘둘리게 되고, 이 상태에서 이뤄진 대화는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감정이란 것은 참 위험하다.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순간 상대에 대한 평가가 뒤바뀐다. 최초에 상대를 좋아했던 그 본질적인 이유가 가려지고, 상대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인식만 늘어난다.
그래도 화가나고, 짜증나는 상황에서 감정을 정리하기란 항상 어렵다. 나 또한 여전히 감정을 잘 추스르지 못했고, 여전히 감정적인 대화를 해 나갈 때가 많다. 이 쯤에서 남친이 거의 보살이라고 느꼈다. 나는 요즘 대화를 잠시 중단하고, 숨을 고르고, "잠시 감정 좀 정리하고 이야기하자"고 운을 떼는 것을 연습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완벽하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지라도 화가 나서 말이 막나가려는 순간에 '감정을 조절하자!'는 메세지가 스쳐 지나가기라도 한다. 그것을 놓치지 않는게 힘들지만.
어쨌거나 매너리즘을 느낀 순간, 우리의 대화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 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도, 남친도. 큰 이유는 없다. 그래도 더 함께 하고 싶으니까. 여기서 끝낼 것이 아니니까.
연애의 언어
언젠가 함께 일했었던 동료가 회의 중 내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돼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보통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고 묻거나,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나. 질문을 질문한다는 것이 참 의아하고 신기했다.
이 동료가 질문을 질문했을 때의 내 기분은 어땠나. 참 묘했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보통 '왜' 라는 의문사가 문장 앞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공격적이거나 불편한 느낌을 주게 된다. 그런데 질문으로 '왜'의 느낌을 순화시킨거다. 만약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물었다면, 나는 직관적으로 '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는구나.'하고 생각하겠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돼요?'라는 질문엔 '대답 못 할 것 없죠. 당연하죠.'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상대방이 질문에서 느끼는 가장 첫번째의 감정이 '불편함'이 아니라 호기심이 되도록 하는 거다.
최근 친구의 언니 말투가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 따라하다가, 입에 붙었다. 그 중에 하나가 권유하는 것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남친에게 써먹었다가 너무 당황했다.
"오빠 이거 먹을래? 오빠 이거 먹고싶어?"
"으으 이게 뭐야!!"
본인이 아기인 것 처럼 상냥하고 예쁘게 물어봐서,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좋았단다.(허.) 말이 너무 사랑스럽고 이뻐서, 몸이 막 간질여졌다고.
그래. 이런 말 한마디에도 이 남자는 이렇게나 좋아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 상책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연애에서는 싸우지 않는 법을 아는자가 승리자다. 연애의 언어란, 결국 남친의 귀여움을 볼 수 있는 나를 위한 언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