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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Nov 29. 2017

2017 연(애)말 정산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쁜 요즘이다. 출근하기 무섭게 벌써 점심이고, 이제 하나 마무리했다 싶었더니 퇴근하란다. 말그대로 '연말'이 되면서, 바빠졌다. 회사 업무든, 개인의 생활이든 한 해를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또 마무리 짓는 연말정산 때문에. 


연애도 연말 정산이 필요하다. 올해 내 연애를 가장 힘들게 했던 이슈는 무엇이었는지, 내 연애를 빛낸 것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것. 나의 미성숙했던 것을 돌아보고, 앞으로를 위해 나는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올 해의 연애는 참 어려웠다. 상사와 남친의 경계가 애매했고, 그에 맞른 빠른 상황대처 혹은 행동 변화가 되지 않았다. 어느 해 처럼 유난히 심하게 싸우기도 했고, 또 유난히 즐겁게 데이트하기도 했다. 일상적 데이트를 그토록 갈망했던 것이 올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여행을 간 것도 올해였다. 


그런 올 해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슈들이 있다. 분명 울며불며 싸웠던 적도 있는데 그 이유는 없었던 일처럼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2017년, 내 연애를 기억해주는 연(애)말 정산을 시작해 본다. 




주변의 결혼 소식에 휘청이지 않는, 곧은 소나무 같은 여자친구가 되겠습니다. 






2017 이슈 01. 적절한 결혼 시점에 대하여 

20대 중반의 여자와 30대에 접어든 남자가 연애를 꽤나 길게 하다보면 반드시, 틀림없이 직면하는 질문이 있다. "너희는 언제 결혼하니?" 정작 당사자들은 생각도 못했던 단어에 당황하다가, 평화로웠던 연애가 출렁인다. 그러게, 나는 언제 결혼할까. 


학생신분에서 시작한 오랜 연인이라면 아마 남여 모두가 직장을 갖고, 어느 정도 저축도 했을 시점에서 '결혼'이 언급되기 시작한다(감정이 변함없다는 전제 하에). 나의 경우가 그렇다. 남친이 먼저 사업을 시작하고, 내가 그 사업에 합류하면서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를 흔들었다. 게다가 남친의 주변 지인들이 결혼하기 시작하니 '결혼'이라는 단어가 심히 거슬렸다. 


싫은건 아니다. 그냥 '어, 결혼?'하면서 괜히 묘해질 뿐이다. '너는 결혼 언제해?'하는 질문에 더이상 '내 나이가 몇이라고 결혼이야'하고 넘기는 타이밍이 늦어졌고, '이제 결혼할 때 되지 않았나?'하는 질문에 자랑스럽던 4.8년의 연애가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양가 어른들께 남친과 같이 일하는 모양새가 자연스럽게 결혼을 향한 수순으로 비춰졌다.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다. 30대에 접어든 남친, 대학을 졸업한 여친. 기껏해야 26인 내게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연애 기간을 고려하면 전혀 생각도 못 해 볼 일은 아니다. 


4.8년의 연애는 과연 결혼하기에 적절한 시점인걸까. 남친과 같이 일하는 이 상황이, 결혼하기 좋은 상황인걸까. 나도, 남친도 어느 것에 대해 명확한 답을 갖지 못했다. 그와 내가 서 있는 지금이 참 애매했다. 4.8년의 무게와 미래에 대한 불안함 사이가. 


"오빠, 우린 언제 결혼해?"


"음, 조금 더 있다가. 지금은 너나 나나 준비가 안됐잖아."


'결혼'이란 단어 자체에 홀리면서,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남친에게 "우린 언제 결혼해?"하고 물었던 것 같다. 그게 남친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않은 사업에 결혼은 욕심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 또한 지금 당장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면 엄청난 부담이 됐을거다. 그냥 나는 "결혼 언제해?"라는 질문으로 '이 연애의 끝은 없어. 결혼으로 사랑은 계속 이어질거야.'라고 확인 받고 싶었던 것 일지도. 그러니까, '너는 내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거다. 


"제희야, 빨리 결혼하고 싶어?"


"모르겠어.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많이 들리니까, 나도 들떴나봐."


"아직 오빠는 준비가 안됐어."


"어떤 준비?"


"아직 일이 안정적이지 않잖아."


"그렇긴 하지."


"서운해? 우리 둘 다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해서?"


"맞는 말인걸."


"제희야. 나는 너, 네 부모님한테서 당당하게 데려오고 싶어. 귀하게 데려올거야. 아무것도 없이 널 덥석 데려오고 싶지 않아. 그래도 좋아?"


"아니. 나도 좀 더 준비하고 나서 결혼하고 싶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렇게 연애하자. 나도 더 멋진 사람이 되고, 너도 더 멋진 여자가 되고."


"맞아. 우리 오빠 먹여 살리려면, 내가 더 커야지."


'널 귀하게 데려올거야'라고 말하지만, 그 속에 그는 내게 더 당당하고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그의 자존심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에게 결혼이라는 이슈는 살림을 합치고,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것에 앞서 그의 능력과 비전에 대한 자존심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결혼한다고 해서 내가 더이상 일을 안 할 것도 아니고 가정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지도 않을거다. 그래도 그에게는 한 가정을 책임지고 부양할 수 있는 능력과 비전이 스스로 충만한가에 대한 문제였을거다. 그에게 지금도 충분히 멋있고 좋다는 말을, 지금 이대로의 당신은 충분히 함께 미래를 그리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을 했어야 했다. 






당신은 습관처럼 '우리 제희 언제 키우나' 하고 말한다. 내가 아직도 애 같나, 싶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당신이 나의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2017 이슈 02. 남자친구의 제희 성장 정책 


연애를 잠시 떨어뜨려 놓고 본 2017년은, 내게 '공부의 해'였다. 얼마 전 부터 재무 공부를 하고 있고,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배우고 공부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였다. 여러모로 내게는 많은 것을 새로 배우고, 익혀야 했던 해였다. 매번 난생 처음 보는 업무에 허덕이면서도 재무공부를 시작하기 전, 이 공부를 해야하나 했던 고민이 많았다. 지금도 모르는게 천지인데 공부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섣불리 시작할 수가 없었다. 고민의 끝이 나지 않자 결국 남자친구에게 운을 뗐다. 


"공부가 하고 싶은데, 뭔가 자꾸 망설여져."


"왜?"


"공부하고 싶은데 너무 막연해서 자신이 없달까. 내가 못 할 일에 욕심내는건가 싶기도 하고."


"아직 해보지도 않았으니 막연하지."


"괜한 공부를 하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그냥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하기엔 비용도 너무 크고. 걱정이 많아. 불안해."


"제희야, 너 자신에게 욕심을 내. 너는 좀 더 욕심 내도 돼.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지만 너는 더 성장할 수 있고 더 클 수 있어. 그리고 더 커야 하고."


"그런가? 좀 더 고민해 볼게."


그는 오히려 공부를 시작하라는 무언의 재촉과 은근한 유혹을 했다. 업무가 일찍 끝나거나, 홀로 사무실을 지켜야 할 때, 퇴근 후와 주말에도 언제든지 사무실에서 공부를 해도 된다고 허락하거나(공부 시작한다는 말도 안했는데),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업무가 끝나면 눈치보지 말고 공부하라고 했다. 공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보다 먼저 꼼꼼히 챙겼다. 그 덕일까. 결국 남자친구의 등에 떠밀리듯 시작했던 공부가 재밌었다. 감당할 수 있을지,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오랜만의 공부가 즐거웠다.  


'너는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그저 연인에게 당연하게, 형식적으로 하는 어떤 의례적인 응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해도 그에 따른 경제적/비경제적 책임은 오로지 내게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공부하는 나를 배려하는 그의 행동에서 '너는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응원이, 실천으로 옮기는 그의 태도에서 진심을 발견했다. 그에게는 정말로 내가 더 공부하고 배우며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마음과 믿음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했다. 진정으로 내가 더 성장하고 발전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귀했다. 


오래 연애를 하다보면, 상대의 말과 행동에 담긴 진심의 정도가 점점 더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노골적인 단어보다는 말 한마디에 은근히 깔린 그의 마음이, 뒤따라오는 그의 행동에서 상대의 진심을 알게 된다. 

나는 어땠을까. 그가 사소하게라도 '이거 해 보고 싶어'하는 말에,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안돼'라고 하진 않았을까. 그의 생각과 계획을 조금 더 들여다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여자친구 보다 더 한 여자가 되고 싶다.

이 남자와 연애를 시작한 2013년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화두는 언제나 '사랑'이었다. 더 나아가기 위해 서로를 정말 사랑하고 신뢰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확인받는 기간이었다. 좋아하고 사랑해서, 더 서로를 알아가고자 했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그러다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다양한 이슈와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사랑이 먼저였고, 감정이 먼저였다. 


그 무게 중심이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 올해였다. 서로를 충분히 잘 알고, 사랑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생기니 이제는 '오로지 사랑'에서 '동반자'로 무게가 옮겨지고 있었다. 함께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나의 커리어와 발전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졌고,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으며, 그 실천을 응원하고 서포트했다. 그가 그랬다. 내게서 이 남자가 갖는 타이틀이 점점 늘어났다. 남친, 상사, 서포터, 친구, 오빠 등등.


나도 이 남자에게 그런 여자이고 싶다. '그냥 여친'을 넘어,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종종 술 한 잔 하며 찡찡거림 받아주는 친구로, 언젠가는 부인으로, 더 훗날에는 아이의 엄마로. 여자친구보다 더 한 여자가 되고 싶다. 


2018년, 다음 해에는 좀 더 말품이 예쁘고 마음도 깊고 당신을 더 배려하고 챙길 수 있는 여자가 되기를. 












추신. 

2018년, 당신은 조금 더 애교가 많아지길 바란다. 

사실 나, 혀짧은 소리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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