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사와 더 좋은 반박은 돌아선 뒤에 떠오른다.
이럴 때가 있다. 지나간 상황이 갑자기 문득 생각나면서,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될 때가. 그 때 내뱉었던 말 보다 더 좋은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연인이든, 친구든, 동료든 대화가 존재한 모든 순간에 대해서.
나중이 되서 후폭풍을 맞는 상황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감정적이었다는 거다. 어떤 감정이었든 나는 어떤 감정에 압도돼 이성적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지에 대한 모든 판단은 오로지 그때의 감정, 하나 뿐이었다. 그게 분노든, 억울함이든, 서운함이든, 민망함이든 뭐든 간에.
자존심말고 부끄러운 것
연애와 사랑에 자존심이 어딨냐고들 한다. 자존심을 버릴 수 있어야 진짜 사랑이라는 말도 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까지도 '자존심'이라는게 뭔지 잘 모르겠다. 자존감과 자존심을 자주 혼동하고 있고, '자존심 부리는 것'과 고집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지 못한다.
그저 궁금한건, 자존심이 뭐든지 간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상대의 자존심을 꺾어 내고 싶을까하는 거다. 그렇게 상대가 망가지고 굽혀야만 서로의 사랑이 확인됐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여기서 다시 한 번 ‘새디스트’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어쨌거나 그 순간에 했어야 할 말들을 못 한 것, 예를들어 '미안해' 혹은 '고마워'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치고야 말았던 것은 자존심을 내려 놓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순간의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서가 아닐까. 예를들어 마땅히 '미안해'라고 말해야 할 순간에, 내 잘못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도 안다. 그런데, 딱 그 순간에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내 입을 막아버린거다. 그래서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미안해' 한 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질 못한거다.
명대사와 더 좋은 반박은 돌아선 뒤에 나타난다.
오랜 연애에서 좋은 것은, 이런 상황들이 말하지 않아도 조금씩 ‘캐치’ 된다는 거다. 꼭 상대방이 '미안해' 혹은 '고마워' 혹은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못해도, '아, 이 사람이 지금 나한테 미안해/고마워 하고 있구나'하고 느껴지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입 밖으로 말 한마디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오랜 연애에서 쌓아 올려진 관심법으로 동공의 떨림과 시선의 방향을 보며 마음의 소리를 듣는거다.(ㅋㅋ)
나는 어떤 후회가 생기기 시작하면 뒤늦게라도 그것을 풀어내야만 한다. 늦게라도 "오빠, 저번에 내가 이렇게 말해서 미안해. 사실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라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과거를 다시 끄집어 내도 괜찮은 것이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때에는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다. 마음과 머리에 찝찝하게 남은 후회를 털고 싶은데, 제법 ‘나이스’하게 과거를 끄집어 내서 ‘그뤠잇’하게 대화를 마무리 할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질 않는거다. 예를들면, 지난 싸움에서 남친의 말에 대해 더 좋은 반박이 생각났을 때(젠장).
이걸 다시 끄집어 내자니, 뒤끝 작렬하는 사람이 될 것 같고(어차피 내 마음 속에서는 아직도 그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그냥 묻어두자니 내 속이 답답해 터질 것 같다. 이럴 때는 다시 생각한다.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가, 아닌가"하고. 대체로 ‘아니다’라는 판단에 화병마일리지가 VIP 급으로 쌓이긴 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이슈라면 매우 단호히 말한다. 해결되지 않은 일은 언젠가 다시 터져나와 꼭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1000번 째 쯤 대화에서 깨달았다. 이때, 대화를 하기 전 꼭 거쳐야 할 몇 가지 절차가 있다. 첫째, 미리 써둔 대사를 몇 번쯤 수정하고 한 백번 쯤 거울을 보면서 리딩연습을 한 뒤에 말할 것. 둘째, 적절한 속도와 톤으로 화 내거나 울지 않고, 또박또박 잘 말할 것. 나는 ‘엉엉’ 혹은 ‘훌쩍’하고 우는게 내 언어인가 할 정도로 잘 울어서, 기껏 다시 꺼낸 대화에서 본전도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정리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면, 열심히 속으로 잠재운다. 연애 평화를 위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하고. 그래봤자 일기장(=브런치)에 무지막지하게 뒷담 쓰는 정도다. "오빠는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어!!!!!!!!"하고. 중요한 것은 5주년을 앞둔 지금도 다시 꺼낼 이야기인가 아닌가 하는 적합성 판단에 오답률이 꽤다 높다는거다.
당신과 나의 화병 조절을 위한 과거 청산
어떤 말이든 속에 묻어두는 말들이 많을 수록 탈이 많다. 그것이 '미안해' 혹은 '고마워' 같이 긍정적인 말들이었다면 후에 미련이 폭풍처럼 몰려오고, 그것이 '이건 사과해 줬음 좋겠어'라거나 '이런 것은 고쳐줬음 좋겠어'라는 종류라면 나중에 '화병' 난다.
어떤 대화 중에, “남자친구를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는 결국 그 연인이 나눈 대화의 양과 내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에 따라오는 행동도. 그러니까 각자가 가진 언행일치율 기준에 따라 신뢰도가 결정되는거다.
뭐, 난 꽤 높은 편이다. 내 남친도 본인이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명확히 따지고 가는 성격이고, 나도 그렇다. ‘뚜렷한 인과’를 선호하는 공대생과 ‘결과에 대한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원인 규명’을 추구하는 경제학도 조합의 장점이랄까.(아마)
최고의 연애 상담가인 아빠는 "연애는 현재와 미래를 보고 하는 것"이라 하셨다. 그 때 꼭 했어야 할 말들, 그리고 그 때 꼭 들어야 했던 말들을 그저 지난 '과거'로 치부할 수가 없다. 쿨하게 과거는 덮고 가자는 것은 화산을 콘크리트로 막아 놓자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용암은 터져 나올 거고, 그 과거들이 지금을 발목 잡고, 미래를 발목잡을 거다. 그래서 행복하고 건강한 관계를 원한다면 과거 정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할 말과 했어야 할 말은 하고. 넣어 둘 말은 적당히 넣어 두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편지를 써야겠다.
그때도 부끄러웠고, 지금도 부끄러운 말을 쓰겠다.
이제 이 부끄러움은 오로지 그의 몫이 됐다.
기대하시게, 행운의 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