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HEE Jun 12. 2019

연애와 결혼 사이

언제부터인가 연애 기간에 무던해졌다. 그와 나는 항상 그래왔듯이 종종 투닥거렸고, 가끔 서로의 애교에 당황스러워 했으며, 이따금씩 마음이 아팠다. 3년 쯤에도, 4년, 5년 쯤에도 나의 연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묵묵히 흘러간 시간 속에 그가 함께했고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기에 6주년을 맞이한 올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이 연애가 그 선을 넘어버렸다. 연애와 결혼의 사이로 은글슬쩍 발을 담그더니 어느새 새살림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겁도 없이.


감히 누가 알았을까. 2019년 새해가 밝자마자 내 연애가 이렇게 흘러갈 줄은.



 평생 함께해도 좋은 사람

그러니까, 시작은 이랬다. 작년 12월 쯤, 두어달 후면 내 자취방의 계약이 종료가 될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집을 구하려 여기저기 알아보고 고민하던 중 갑자기 '같이 살까?'하는 생각이 치고 올라왔다. 신혼집을 먼저 구한 뒤 시간을 두고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부부들이 많아졌고, 실제 이런 사례가 주변에 몇 있어 전혀 낯선 선택지는 아니었다. 솔직하게, 꽤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진지하게 결혼을 논의해 보는 것도 고민해 보았지만, 이 남자는 조금 더 사업에 집중하고 싶어했고 나도 그랬다. 게다가 결혼 준비에 들일 시간과 비용이 아직은 버거웠다. 그러나 선뜻 이 남자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같이 살까?'와 동시에 떠오른 '같이 살아도 될까?' 때문에.


지난 6년간 이 남자는 내게 더할나위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쌓이 신뢰가 두터웠고, 그와 함께할 때 모든 긴장을 내려 놓고 가장 자신다워 질 수 있다. 그는 나의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는 내게 가장 큰 안정과 휴식,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고 이기적이다. 내게 꼭 맞는 남자가 되도록 지난 6년을 단련시켜(?)왔고, 또 실제로 그런 남자라는 것을 6년간 철저히 깨달아왔음에도 '같이 살아도 될 만한(=결혼해도 될) 남자인가?'라는 물음에 쉽게 답이 내려지지 않았다. 마치 '이 남자와 연애해도 될까?'하는 것 처럼. 


아니. 아니다. 같이 살자는 말이 혀 끝에서 맴돌기만 한 것은 무서워서다. 같이 살자고 했을 때, '생각 좀 해볼게'라던가 '나는 아직 그럴 마음이 없어' 혹은 '미안한데, 내가 그 정도 까지는 아닌 것 같아'하는 대답이 돌아올까봐.


이 남자가 나와 함께 살고 싶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은 내 오만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남자인가하는 고민은, 반대로 이 남자에게도 똑같이 고민 될거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이 남자에게, 평생 함께해도 좋을 여자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종종 장난처럼 “나랑 결혼할거야?”했을 때 “그럼 누구랑 해?”했지만, 그저 내 장단에 맞춰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은 진짜 마음은 다른 대답을 하고 있진 않았을까.




고민의 장벽 

서로가 함께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연애' 혹은'결혼'이라는 구체적인 관계를 시작할 때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 같은거다. 그것은 서로의 다름을, 서로가 함께하며 발생할 변화를, 그리고 함께 그려나가는 미래에 대한 확신에 대한 질문들로 촘촘히 이뤄져 있다. 그 질문들에 답을 내다 보면 어느새 장벽을 넘어서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장벽을 넘어가고자 하는 각오는 다진건지, 불쑥 '같이 사는 것도 좋겠다'며 스친 생각에 대뜸 장벽부터 넘고자 했던건 아닌가 싶었다.


장벽을 깨고 넘어서고 나면, 다시 되돌아가기란 쉽지 않을거다. 장벽을 깨고 난 잔재들이 산을 이뤄 그것을 치워내는 것도, 치워내면서 다칠 내 마음을 추스르는것도, 그리고 주변 상황을 정리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겠다. 그래서 함부로, 가볍에 넘어가선 안되는 것이었다.


연애와 결혼이 다르다는 흔한 말. 나는 그 흔한 말을 믿는다. 당장 결혼식을 올리지 않더라도, 함께 산다는 사실만으로 내 인생은 아주 크게 달라질 거다. 그 변화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고, 회의적이었다. 행복할 것들보다 불편할 것들이 먼저 와닿았다. 과연 나는 지금의 삶에 생길 변화를 받아들일 자신은 있는걸까. 나는 준비가 되어서 함께 살자는 말을 하려는 것이 스스로도 의심이 됐다. 


결국 이 남자에게 모든 고민을 털어 놓았다.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데 쉽게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는 것.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달라질 우리의 상황이, 나에게 닥칠 불편하고 힘들 것들에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꺼내 놓았다.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남자가 답했다. 


"왜 너는 힘들고 어려울 것만 생각해? 우리가 함께해서 더 좋을 것은 생각이 들지 않아? 그냥 더 힘들어질 것만 같아? 그럴거면 왜 함께 살자는 생각을 했어." 




미안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들이 이 남자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준 것 같았다. 분명 더 좋을 것들, 더 행복할 것들이 있는데 불편하고 힘들 것들을 우선하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남자가 내게 이런 말을 한 것은, 이 남자는 우리가 함께할 미래에 대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다. 나와 함께 사는 것, 연애보다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관계로 발전되는 것이 좋았던거다. 


내가 종종 이 남자의 집에 놀러갔을 때, 산더미 처럼 쌓인 빨래를 보며 잔소리를 하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방 청소를 도와주고, 빨래를 도와주는 것에 자신이 챙김 받는 것 같아 행복했다고. 함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을 때, 편한 차림으로 함께 야식을 먹고 맥주 한 잔 마시는 상상도 좋았다. 이 남자가 정말로 나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더욱 가슴이 벅차 올랐다고 말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지켜주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같이 고민하자."



이 남자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행복한 기대를 하고 있는지 말했음에도 나의 불안과 걱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함께 고민하자고 말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나에게, 이 남자에게 닥칠 많은 어려운 것들을 함께 고민하자고. 


아마 나는 이 말을 듣기를 바랬던 것 같다. 내가 생각이 미치지 못하면, 본인이 생각을 더해주면 더 나을 거라고 말해주는 모습에 많은 고민이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나는, 이 남자와 함께 살아도 좋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엄마가 몰랐던 길 

결정이 내려지고 난 뒤 양가 부모님을 찾아 뵀다. 함께 살 것에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오랜 연애에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우리가 서로의 배우자가 되는 것을 마치 기정사실처럼 인지하고 계셨다. 처음 뵙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그 길이 왜 그렇게 떨리고 긴장이 되던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연애라 괜찮았지만, 결혼은 안된다고 하실까봐. 차라리 결혼식을 먼저 빨리 올리라고 하실까봐서. 


나의 세대야 그렇다 치지만, 부모님의 세대에서는 <선살림, 후결혼>이 매우 낯설었으리라. 아니, 낯선 것을 넘어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셔도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부모님의 사고방식에서는, 부모님이 살아왔던 사회에서는 그랬으니까. 그래서 부모님들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주시고 지지해 주셨다. "너희들이 계획이 있으니까, 생각한 바가 있으니까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겠지."하셨다. 오히려 내심 기다리셨던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27세 남자와 22세 여자'에서 '33세 남자와 28세 여자'가 되었으니 결혼해도 아무렇지 않은 시기가 온 것이다. 은퇴를 앞두고 계신 부모님들이시기에, 자식들이 얼른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을 보시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마치 자식이 결혼을 했을때라야 비로소 '다 키웠다'라고 느끼는 것처럼.


양가 부모님을 각각 찾아 뵙고 난 후, 상견례 아닌 상견례를 치렀다. 결혼을 전제하고 함께 살기로 결정 되었으니 서로의 가족을 소개하고, 인사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부모님들의 조언을 따랐다. 상견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엄마에게 물었다. 결혼을 더 바라지는 않느냐고. 



“네가 아직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엄마는 엄마였다. 먼저 함께 살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운 고민이 무엇인지 엄마는 알고 있었다. 함께 사는 것, 그리고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 가장 두려웠던 것은 '기혼자'가 되는 것이었다. 단순히 '저 임자 있습니다'가 아니라, 미혼에서 기혼이 되는 순간 나를 옭아맬 어떠한 제약들이. 앞으로 내게 주어질 기회와 성장들이 기혼이라는 이유로 제한되었을 때, 결혼을 탓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엄마는 그런 내 성정을 알고 있었을거다.



“내가 결혼한 것은 아빠의 프로포즈보다도, 네 외할머니의 재촉 때문이었어. 당시에 내가 독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결혼을 하고 내 가정을 꾸리는 것 밖에는 생각할 수 없던 시대이기도 했지. 후회가 많았다. 결혼을 하고 너희를 낳아 기르는 것을 후회한게 아냐. 다만 내가 결혼에 대해 보다 더 확고한 가치관이 있었더라면, 한 남자를 내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더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되고 더 나은 내 모습을 만들 수 있었을거란 생각을 많이 했어.


결혼 앞에서는 누구든지 망설여지게 되어있어. 당연히 무섭고 겁나지. 아무리 이혼하면 된다지만, 그거 사람 마음에 못 할 짓이다. 결혼식 준비하면서 내 마음이 수도 없이 요동쳤는데, 네 마음을 내가 모르겠니? 무서우면 결혼 안해도 돼. 그런데, 이 남자랑 너 결혼 할 거잖아.


내가 몰랐던 방법이라고 생각해. 연애와 결혼 그 중간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네가 찾았다 치지 뭐. 적어도 너와 네 남자친구는 결혼이 겁났다고 피하지 않았잖아. 너도 네 인생이 소중하듯 네 남자도 그렇겠지. 당장 결혼으로 인해 무엇을 내려 놓아야하는지 떠오르지 않는데, 그래도 계속 곁에 두고 싶겠지. 그거 되게 소중한 기분 아니니? 누군가 삶에 계속 함께해 주길 사람이 된다는 거.


만약 너희가 단순히 일단 동거하겠다고 찾아왔다면, 쉽게 허락 못했을거야. 그런데 잔뜩 겁 먹은 얼굴을 하고 와서는 어쩔 줄을 몰라하는 너나 네 남자 얼굴 보니 알겠더라.”



2019년 2월 25일, 나와 이 남자는 새로운 집에서 연애와 결혼 중간 단계에 돌입했다. 3개월이 조금 더 지난 지금, 힘들고 불편할 것이라 걱정했던 것들이 아직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 남자의 말대로 앞으로 힘들고 어려워질 것들에 대해 앞서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갑자기 차오르는 불안에도, 항상 이 남자가 함께 고민해 줄 것이라 생각하며 혼자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종종 이 남자에게 묻는다. 나랑 같이 사는 것이 어떠냐고. 황당하게도 '재밌다'고 이야기한다. 뭘 그리 꼬물거리는지 온종일 쫑쫑대며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이 재밌단다. 그러고는 내게 물었다. 본인이랑 사는 것이 어떠냐고. 



나는, 마치 배신을 당한 느낌이다. 

내가 함께 사는 남자는 지난 6년간 봐온 서른 세살의 남자가 아니다. 






이 남자는 본인을 '키우는 맛'에 익숙해지라 한다. 

키우는 '맛'인지, '고통'인지는 내가 선택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는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