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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Feb 16. 2017

일과 남자와 위로

남자가 '더' 예민해 질 때, 난 아주 돌아버리겠다

일에 지친 남자를 보는건 힘들다. 이 힘듦은 꽤 오래 전(그래봤자 2년)부터 느껴왔는데, 그 동안 단 한 번도 이 남자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것이 쉬웠던 적이 없었다. 그를 괴롭히는 그 '망할' 일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고, 섣부른 위로나 어줍잖은 응원이 되려 이 남자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건들일까봐 조심스러운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더 나를 사리게 만든 것은 친구를 위로하는 방식이 남자친구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었다.


남자친구가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가 예민해 지는 빈도는가 잦아졌다. 그가 일에 집중할 수록 스트레스와 부담감, 그리고 책임감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여과없이 내게 전달됐다.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고 사업이 되니 그는 즐거워하면서도 힘들어했다. 그 때마다 나는 그것을 함께 나누고, 그가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야했다. 


사실 매번 어떻게 해야하나 당황스럽고 어려운 일이지만, 남자친구를 위로하는 것을 연애에서 제외시킬 수 없었다. 가족과 친구 사이 쯤에서, 가족과는 다른 의미의 사랑으로 힘듦을 기대로 응원받고, 위로받는 것이 연애관계의 핵심이기도 하니까. 결국엔 이 남자를 보다 더 이해하고, 남자의 성격과 특성을 파악해 '맞춤형 위로'를 해 줄 수 밖에 없다.


얼마전 남자친구를 '미운오빠새끼'라고 저장해놨다가 들켰다. 안 미안.



그가 원한 것이 방청객 리액션 서비스'는' 아니었다.

남자친구를 위한 '상황 맞춤형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꽤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이후였다. 당시 내가 시도했었던 몇 가지 위로 방법들이 있었다. 첫번째가 바로 여자친구 버전의 방청객 리액션이었다. 남자친구와 같은 감정선에서 매우 격하게 공감해주고 리액션 해 주는 것이었다. 가령 자신의 부하를 신(God)으로 알고 살인적인 업무 분량을 주는 직장상사나, 고등정신 작용이 불가능해 보이는 동료를 함께 비난해 주는 것이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데? 너무한 것 아니야?"

"미쳤네, 미쳤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 사람은 저번에도 그랬잖아. 사람이 별로네." 


나는 남자친구보다 더 격노해 그의 감정이나 불만이 매우 를 타당하다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이 방법이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되려 나를 깎아 내리는 것임을 알게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 


언젠가 그의 직장 동료이야기가 나오며 '그 사람, 또 그랬대?'하고 공감과 리액션 준비를 하는데, 그는 되려 동료를 감쌌다.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마. 그래도 일 열심히 하려고 하고, 착한 사람이야."


그 순간 내 머리 속을 채운 것은 수 천개의 물음표였다.


"나는 그 사람을 싫어한게 아니라, 좋은 사람하고의 관계가 자꾸 틀어지는 상황이 싫었던 건데 너한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었나보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이것은 마치 직장동료를 마땅한 근거 없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까대기만 하는' 철 없는 여자친구를 남자친구가 훈계하는 것 같았다. 그의 입장에서 나는 정확한 상황과 사정을 몰랐고, 그럼에도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아보이지 않았던 거다. 나 자신을 가벼운 사람으로 만들고, 뒷담을 일삼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너무나 가까이에서 깨달았다. 아, 내가 정말 뒤에서 호박씨 까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가 원한 것이 어설픈 조언'도' 아니었다. 

그 뒤로 나는 전략을 바꿨다. '뒷담 잘하는 여자친구' 이미지를 깨고, 이성적이고 현명한 여자친구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조언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방청객 리액션과 병행하던 방법이었는데, 이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셈이 되겠다. 


그러니까, 남자친구의 고충이나 힘든 이야기를 들을 때 "자기가 이렇게 고쳐 보는 것은 어떨까?"라거나 "내 생각엔 이 점이 잘못된 것 같은데. 나라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을 것 같아."라는 식이었다. 처음엔 남자친구가 '제법인데?'하고 생각하는 듯 싶었지만, 결국 이 방법도 마냥 옳은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차 안에서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현명한 여자친구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성가신 듯 말했다. 


"너는 왜 항상 내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만 하는 거니?"


이 이야길 들었을 땐,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본인의 힘든 것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면서 어떻게 내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서운해지다 못해 서러워졌다. 그러나 그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업을 하는 그의 비전과 사업 방향을 나는 100%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고, 고민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가 해결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가 바라보는 사업의 방향과 비전, 그리고 그가 이뤄내고자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내눈에 보이는 것에서, 그저 내 귀에 들리는 것들로만 판단하고 어줍잖게 조언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와 비상대책 대화를 열었다. 그에게 말했다. 내게 일의 고충과 힘듦, 많은 스트레스를 편히 표현하고 위로받고 싶겠지만, 나로써는 당신을 어떻게 위로하고 응원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대체 어떻게 해 주길 원하냐고. 결국 대화는 싸움으로 번졌고, 그 뒤로 내게 어떠한 일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내게 무조건 듬직한 남자친구의 모습과 완벽한 모습만들 보여 주길 바란 것이 아니었다. 비상대책 대화가 싸움으로 번졌던 그 날, 내가 내뱉었던 말들이 그를 몰아세운 것 같았다. 


"난 오빠랑 연애하는 거지, 오빠랑 같이 일 하는게 아니야. 우리가 요즘 일 이야기 말고 한게 뭐가 있어? 차라리 일 이야기를 하지 마."


지금까지도 후회되는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저 말 한 마디가 얼마나 그를 외롭게 만들었는지, 그를 몰아세웠는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 켠이 저릿하다. 너무 미안해서. 결국 일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은 내 쪽이었다. "요즘 일은 어때?"하고 묻거나 "저번에 이야기했던 일은 잘 진행됐어?"하면서. 미안해하는 내 마음을 잘 알았는지 그 뒤로는 다시 예전처럼 일의 힘듦과 스트레스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 응원해 주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도 다시 시작됐다. 



이미지 쇄신에 실패했을 땐, 절망했다. 이 남자가 날 어떻게 생각하려나. 




내 노력은 예능 한 편만도 못하다

그 후로 어색한 위로와 응원이 몇 번을 오갔다. 나는 특별한 리액션이나 조언따위는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남자의 비전이나 의중 같은 것들, 그러니까 그의 일을 대하는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것이든 그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겁을 먹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내 말들이 거절당할 것 같아서.


모처럼 함께 주말을 보내던 날이었다. 주말에도 일을 잡고 있는 것, 더군다나 여자친구가 옆에 있는데 본인은 여전히 일을 잡고 있는 것에 또 한껏 뿔이 나 있는 듯 했다. 갑자기 옆으로 슬그머니 오더니 "뭐 보고 있어?"하고 말을 걸었다. 아마 여자친구가 옆에서 혼자 놀고 있는 것에 내심 미안했었던 것 같았다. 보던 예능을 중단하고, "왜? 뭐가 또 잘 안돼? 힘들어?"하고 묻자 슬슬 또 스트레스를 토로할 것 같은 기미가 보였다. "나랑 이거나 같이 보자. 재밌어."하고 그의 말을 막았다. 


사실 그는 텔레비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라서인지 텔레비전 보는 것을 굉장히 무의미한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거절하며 차라리 일을 더 마무리하겠다고 일어났다. 그런데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일어서는 그를 다시 앉히면서 말했다.


"잔말말고, 그냥 보기나 해."


그는 별로 내켜하지 않았지만 노트북 앞에 엎드린 남자친구 위에 올라 앉으며 못 일어서게 막았다. 몇 분이 지난 뒤 그는 슬슬 예능프로그램에 빠져 들었다. 프로그램을 다 본 뒤 그는 다시 일을 마무리했고, 그 날은 신기하게도 아무런 투정이나 짜증 없이 넘어갔다. 사실 허무하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노력할 땐 안되더니 기껏 예능프로그램 하나에 풀어진 모습에 뭔가 약이 올랐다.




예능따위한테 밀렸다. 짜증이 났지만, 재밌어서 곧 잊었다. 




되게 단순한 말 한 마디, 혹은 짧고 강력한 애교 하나 

그 뒤로 그는 종종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마다 "저번에 우리 같이 보던거 이름이 뭐였지?"하고 물었다. 그때마다 괘씸하고 약올랐다. 내 노력은 씨알도 안먹히고, 예능에 내 역할이 밀렸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는 느낌이랄까. 


그 뒤로 한참이 지난 얼마 전, 학과에서 장수커플로 유명한 선배를 만났다. 무려 7년째 연애 중인 이 선배 앞에서 주름잡을 것이 못됐지만, 나름 '장수 커플'의 고충을 서로 공감하며 자연스럽게 '일에 치인 남자를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오빠, 결국 예능에 내가 밀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래요."

"원래 남자가 그렇지. 생각보다 단순한 것에 기분이 풀리거든."

"난 너무 어렵게 접근한건가요?"

"뭐, 그럴 수도 있고."


능글맞게 웃으며 '팩트폭력'을 일삼는 선배가 얄미웠다. 


"네 남자친구가 네게 힘든 것과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와 똑같아.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그것에 공감을 얻으면서 위로를 얻기도 하지. 그런데 내가 봤을 땐, 네 남자친구는 네게 털어 놓는 과정을 통해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 네 공감과 리액션, 조언 같은 것들이 고맙게 느껴지지. 그런데 결국 그것들로 인해서 계속 네 남자친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대화로 이어지는 거잖아? 여자친구하고 있는 시간에서조차 벗어나질 못하잖아.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웃고 마는 예능에 스트레스가 풀린 거겠지. 뭐, 나는 보통 여자친구하고 이야기할 때 그렇게 느낄 때가 많거든. '이 이야기 좀 그만 하고 싶다'하는 생각. 남자친구의 길고 긴 토로 뒤에 필요한 건 생각보다 되게 단순한 말 한마디나 짧고 강력한 애교 하나면 충분한거 같아."

"그게 뭔데요? 애교 부리는데."

"네가?"

"그럼요. 남이 보면 살벌해서 문제지."

"상상도 안된다. 네가 애교라니. 뭐, 그건 네가 고민해봐. 세상 모든 남자가 다 같겠니?"


애매모호하게 마무리된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 참, 뭐 그리 대단한거라고. 그냥 좀 알려주지 싶은 생각에 선배가 더더욱 얄미워졌다. 더 짜증나는 것은 '되게 단순한 말 한마디나 짧고 강력한 애교'면 충분하다는 선배의 말이 딱 맞아 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일이 늦게 마친 남자친구는 늦은 시간에도 얼굴 한 번 보고 가겠다며 집 앞으로 왔다. '늦었는데 얼른 들어가서 쉬지', '아냐 얼굴 보고 갈게'하고 나름 귀여운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사실 실랑이 보다는 거의 짜증 섞인 대화에 더 가까웠다. '아니, 보고싶어서 온다는 사람이 뭐 이렇게 짜증이람'하다가도 일에 치여 한껏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라고 생각하자 '짧고 강력한 애교'를 수백번 머리에 되뇌었다.


"어휴, 힘들어. 일이 너무 많아.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려고 그만 둔건데, 왜 더 힘들지."

나는 야심차고 아주 호기롭게 남자친구에게 다가가,


"힘들었지? 나 맛있느거 사주려고 돈 버느라 아주 고생이 많네."

하고 남자친구를 안았다.


"응. 힘들다. 제희 맛있는거 사줄려고 하는데 같이 밥 먹을 시간도 없네."


그 뒤로도 남자친구가 힘들다 힘들다 할 때는 "힘들었지? 늦게까지 고생하네 우리 오빠."하고 안았다. 이제는 힘든 날이면 얼굴을 보자마자 '안아보자'하고 덤벼드니, 선배의 말이 맞았다. 그렇게 만나면 가끔 맥주 한 캔 씩 들고 예능을 본다. 


아, 짧고 강력한 애교? 사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진짜 이건 아주 야멸찬 애교다' 싶은 것은 없었다. 글을 쓰다 남자친구에게 물으니, 내가 "나도 오늘 오빠 못 봐서 힘들었으니까, 좀 안아줘봐"하고 말했을 때 자기 눈이 뒤집어 졌다고 했다. 




사실 남자친구가 잘 때 이 고양이랑 완전 똑같다. 




여전히 일에 지친 남자의 예민함과 투정, 그리고 짜증이 어렵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울컥(혹은 욱)하고 올라오는 서운함과 화를 억누르기 힘들다. 이 남자가 짜증을 내는 이유엔 나의 지분이 단 하나도 없는데, 말 한 마디 한 마디, 단어 하나 하나에 온갖 감정이 서려 있으니 대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내게 '그렇게까지 하면서 연애 하고 싶어?'하고 묻는 사람도 더러 있다. 어떡해 그럼, 헤어지긴 싫은데. 사실 이건 나만의 고충, 혹은 여자들만의 고충은 아니다. 남자도 여자친구를 위해 충분히 하는 고민이며, 모든 커플의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종종 남자친구의 말에 방청객 모드 리액션을 해주기도 하고 팩트로 폭력도 한다. 어쩔 땐 이상한 춤을 추기도 하고,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으면 '오늘은 내가 더 힘드니까 애교 좀 부려봐'하고 허세도 떤다. 결국 정답은 없다. 적당히 남자친구 눈치 봐 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옵션 중 가장 '먹힐 만한 것'을 찾아내야 하고, 그 바탕엔 남자친구의 성격과 성향, 선호 같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 

 

새삼 느끼는 하나는, 그래도 제법 오래 연애를 하다 보니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맞춤형 위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날씨가 흐리고 쌀쌀한 날엔 남자친구가 먼저 "우리 뜨끈하게 쌀국수 먹을까?"했고, 통화하다가 남자친구가 기름진걸 많이 먹었다 싶을 때는 "오랜만에 된장찌개나 먹으러 갈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더욱 정교한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연애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남자친구가 고양이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고양이 사진은 좋아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남자친구가 저 고양이(마지막 사진)랑 똑같이 생겼다. 성격마저 고양이 같았다면, 정말 난 돌아버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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