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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Jan 21. 2017

특별하지 않은 4주년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땅인 듯 당신에게 나는 사랑이다

나의 연애는 남들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었다. 평범함을 보통정도로 살아가는 나에게, 연애란 사람들에게 그러듯 항상 비슷하게 살던 매일에 짜릿한 감정과 저릿한 심장, 그리고 안식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랑'이 주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를 그저 평범하게, 보통과 같은 수준에서 느껴왔다. 

 

내 연애는 어느덧 4주년을 맞이했고, 5년째 접어들고 있다. 한 남자와의 연애를 하는 기간 동안 어느 두 날을 콕 찝어 비교했을 때 그 두 날이 똑같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품고 있던 감정이 달랐고, 담고 있던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이 연애가 지겹다거나, 질린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물론 때때로 '이 것이 말로만 듣던 권태인가!' 싶던 때도 있었고, '이 남자를 여전히 사랑하는 것이 맞나..'하는 혼란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이 남자와 진정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인가?'하는 심오함에 빠져 몇 일을 말 없이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연애를 이어가는 것을 보니 수 많은 고민과 혼란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환난이었던 것 같다. 




4년 간 여자라곤 나만 봐와서 그런지, 내 사진만큼은 누구보다 잘 찍어준다. 




이제는 일까지 함께 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연애의 의미가 지난 4년 동안 참 많이 변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의 깊이나 진정성 정도, 감정의 격동성 정도도 물론 여러 가지 의미에서 변해왔다. 그런데, 새삼스럽게도 최근에 유독 '그에게 나와의 연애란 어떤 의미였을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를 사랑하고 있는, 나와 연애하고 있는 "이 남자는 나와의 연애를 어떻게 느껴왔을까, 나라는 여자가 4년 동안 이 남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까'하는 생각. 


시시콜콜하게 '나를 왜 좋아하게 됐어?'라거나 '나와 연애한 것을 후회했던 적이 있어?' 따위의 질문은 하고 싶지 않았. 연애 4년차의 자신감이라기 보다는, 이전에 물어본 적이 있었고 이미 '그런 적 있다'는 대답을 알기에 더이상 상처받기 않기로(그냥, 기분 나빠지지 않기로) 한 탓이다.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질문해야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딱히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떻게 질문해야 여자친구 4년차의 신분으로서 유치함을 덜고 품위있게, 우아하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하는 것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고민했다. 그러나 애써 고민한 것과 다르게 내 질문들은 허접하기 그지없었으며, 첫 질문부터 '폭망'이었다. 젠장.






(2017년 1월 20일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안)


Q. 나랑 4년 연애해 보니 어때?

"벌써 이렇게 됐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해. 아직도 널 언제 키우나 싶고."

(그냥 아직도 내가 총총 거리는 것을 귀여워하는 것 쯤으로 생각해면 된다.)


Q. 나는 4년째 연애 중이라고 하면, 주변에서 되게 놀라거든. 20대 때는 많은 남자를 만나 보는게 좋지 않냐는 소리도 가끔 들어. 오빠는 그런 생각 든 적 없어?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 한 사람들 4년 동안 만나게 되면,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거든. 그런데 나는 네가 '다양한 남자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못 할 정도로 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안그래?"


"뭐, 다양하게 지X 맞긴 했지?(ㅋㅋ)"


"뭐, 너도...."


Q. 제희랑 4년 연애 했다는 것, 오빠한테는 어떤 의미일까?

"처음하는 것?(ㅋㅋ)"


"준비된 대답은?"


"그만큼 널 사랑한다는 의미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4년 동안 이렇게 만날 수 있었을까? 널 사랑하기 때문에 조금 더 널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널 이해할 수 있어서 우리의 관계가 더 편하고 깊어진 것 같아. 너에겐 우리의 연애가 어떤 의미인데?"


"나에게는 20대 그 자체야. 22살에 오빠를 만나서, 이제 26살이 됐잖아. 앞으로 몇 년을 더 보내야 내 20대가 완전히 채워지겠지. 그런데 가장 풋풋하고, 가장 빛나던 시절을 오빠와 함께 했잖아. 그래서 이른 말이지만, 나의 20대를 대변할 수 있는게 우리의 연애야."


"진짜 대답은?"


"20대 4년 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도 남친 1호라니. 젠장."


"죽는다"


"20대 그 자체라는 것, 그게 진심이야. 어느 때 보다 내가 빛났다고 생각한 시기에 오빠와 함께한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 더 빛날거야. 아직 넌 제대로 네 빛을 발하지 않았어. 더 빛나도록 도울게."


"응, 고마워."


"생각해 보면, 이 4년은 내가 가장 열정적인 시간이기도 해. 너를 만나면서 난 굉장한 안정을 느꼈고, 그 안정감이 있어서 여러 가지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나 정말 나태함을 타고 난 사람이거든. 잠도 엄청 많고. 네게 그런 모습 보이기 싫어서 더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네게서 느끼는 안정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의 반도 하지 못했을거야. 내 20대에서 가장 열정적인 순간이 이 4년이야. 고마워."



우리는 서로를 만난 그 시점부터 자신의 인생에 열정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힘들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안정감. 그것을 서로에게 느꼈고, 그것은 우리가 열정적일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안정감. 이 사람은 나를 끝까지 응원해 줄 것이며, 항상 내 곁에서 날 사랑해 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었다. 내가 연애에 바래왔던 것, 그리고 그 또한 바래왔던 것이 정말로 우리의 연애에 있었다. 



Q. 그 동안 연애하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 

"꾹꾹?(안마)"


"죽을래."


"네가 '오빠'하면서 베시시 웃을 때. 그렇게 웃으면서 날 부를 때가 가장 예뻤고, 또 그 때가 가장 행복했어. 넌?"


"난 오빠가 나한테 안길 때. 피곤하다고 칭얼대면서 안기고, 오랜만에 만나서 좋다고 안기고, 그냥 가끔은 뭔지 모르겠는데 오빠가 애교부리면서 날 안아. 그럴 때."



생각해 보니 4년 동안 연애했음에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너무 소소했다. 결국 '4년'이라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가장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이 우리가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다. 



Q. 마지막으로, 나는 오빠한테 어떤 여자야?

"날 이해할 줄 알고, 또 날 사랑할 줄 아는 여자. 그리고 자기의 인생에 열정적일 줄 아는 여자."


"가장 솔직하게는?"


"시도 때도 없이 장난치고, 비글미 넘치는 여자. 네 장난은 항상 내 예상을 초월하지."


"시도 때도 없이 지랄 맞다는 거지?"


"어, 신호 바꼈다."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처럼, 드라마나 영화 속의 멋드러진 대사 같은 답변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진지함이 어색한 듯, 장난치는 그의 대답에도 그의 진심과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내게서 느끼는 감정, 그가 내게서 느끼는 사랑, 그리고 그가 내게 기댈 수 있다고 믿는 안도감. 




등 하나 없이, 노을빛에도 분위기가 멋있는 카페. 이렇게 그 자체로 멋질 수 있는 연인이 되길. 



4년 간의 연애가, 그와 나 스스로는 '와, 정말 4년이야?!'하고 깜짝 놀라는 그 연애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또 그렇게 화려한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서운하지 않았다. 아쉽지도 않았다. 오히려 꾸밈없고 담담한 그의 대답이 더 현실감 있었다. 셰익스피어처럼 유려한 말로 답했다면 사실 속으로 '어떻게 알고 또 저 말을 꾸며왔지?'하고 의심했을 지도 모르겠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목소리와 말투, '뭘 이런걸 물어?'하는 심드렁한 말투에서 소나기가 아니라 가랑비처럼 그의 인생에 내가 스며 들어 가 있음이 느껴졌다. 나에게도 그렇게 그가 스며들어 있음을 과연 알고 있을까. 





첫 여행, 1일 4식 3디저트의 제주도

4주년을 맞아 우리는 첫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나는 나대로, 남친은 남친대로 여기 저기 다녔지만 연인이 된 이후 함께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물론 종종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곤 했지만. 


마치 아들만 둘 키우는 듯 한 엄마는, "너네는 사귄지 몇 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여행 한 번을 안 가니?"하며 종종 놀리곤 하셨다. 얼마 전 제주도로 여행가기로 했다고 전하자 나보다 엄마가 더 신이 나셨다. "첫 여행인데 숙소라도 좋아야지."하시며 기꺼이 리조트 예약도 해 주셨다. (아빠의 멤버쉽으로 예약했지만, 아빠만 아직 모른다.)


비행기표를 사고, 숙소를 예약하고, 차를 렌트하고. 본격적인 제주도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남친은 본인이 바빠 여행 준비를 돕지 못한 것이 미안한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하며 여행 계획의 모든 권한을 내게 위임했다.


"오빠, 1일 4식, 3디저트 가능하지?" 

남친은 오늘부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래서 운동용 남성 타이즈도 구매했다. 실제 조깅할 때 보다 춥다고 외출 할 때 더 많이 입는 것 같지만. 


첫 여행이라 그런지 준비하는 내내 설레고, 떨렸다. 원래 모든 여행이 그렇다지만 유독 더 심했던 것 같다. 여러 블로그의 제주도 여행 후기 글을 읽으며 계획을 세우는데 계속 웃음이 났다. 


"그렇게 좋아?"

"응"

"진작에 여행 좀 다닐걸 그랬네. 이렇게 좋아할 줄을 누가 알았겠어?"

"그러게 그랬어, 오빠가 잘못했네."


무언가 더 특별할 것 같았던, 뭔가 더 신기하고 애틋하고 특별한 감정을 느낄 것 같았던 4주년은 어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평범하게 지나갔다. 오래 연애를 한 연인들은 아마 이 기분을 공감하고, 이해할 것 같다. 

사랑이 더 깊어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서로에게 이미 익숙하고 편안해 져서, 이 사랑에 익숙해진 느낌.

내 삶의,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아 새삼 특별할 것 없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 진 느낌. 



그와 나의 4주년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게, 어제와 비슷한 오늘 처럼 지나갔다. 

하늘은 하늘이며, 땅은 땅인, 그리고 그에게 제희는 사랑인 진리 처럼.










학부를 마치고, 일을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글을 쓰지 못한 것도 3개월. 

언젠가 남친이 "요즘 왜 글 안써?"하고 물었다. 너무 바빠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답하자 "우리가 요즘 너무 재미없게 보냈나?"한다. 아, 그는 이 연애 글을 통해 내 생각을 염탐하고 있었나보다. 귀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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