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한 가지다. 대단하다. 이 ‘대단하다’는 의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어쨌거나 대단하게 보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스타트업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2가지다. ‘열정이 엄청나구나’하거나 ‘취업이 잘 안 됐나 봐’하는 안타까움.
모든 사람이 그렇다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내가 느껴온 시선들은 그랬다. 특히 현재 일하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남자친구다 보니, 이를 아는 사람들은 '취업하기 어려우니 남자친구 프리미엄에 편승했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혹은‘어차피 둘은 결혼 할 생각이니, 함께 일하려는 것 아니야?’하는 시선도. 그러니까, 내가“저는 스타트업에서 일해요.”라고 이야기 했을 때 내게 다가오는시선은 4가지가 된다.
학부 졸업과 함께 취업하겠다는 야망은 처참히 무너져 절망하던 차에 내게 내밀어진 손이 있었다. 메이커(Maker)들이 모여 만든 스타트업. 메이킹 관련 행사와 다양한 워크샵을 운영하고, 드론과 관련해 <드론 파이트 클럽(Drone Fight Club)>이라는 자작 드론 배틀대회를 개최하는 곳이다. 과학이라고는 고등학교 1학년 공통과학 이후 약 9년간 배운 적이 없었다. 지난 그 9년 동안 과학 지식은 모두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소금을 NaCl(염화나트륨)이라고 표기한다는 것 정도. 그야말로 철저히 문과생인 나를, 온갖 장비와 공구가 난무한 이곳이 어째서 나를 필요로 할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한 동안 고민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내 내면 속에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었던 잣대와 기준 때문이었다.
‘사회생활의 첫 직장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은 취업 준비를 하며 수도 없이 들었는데, 스타트업은 내가 예상한 직장 리스트엔 없었다. 하물며 내 첫 직장이 스타트업이 되는 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한 생각도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학부 생활 중 여러 스타트업들을 봐오면서 스타트업에 대한 일종의 기피증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무엇보다 불안감이었다. 생활이 안정적인 연봉과 고용을 생각했을 때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 둘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 보였고, 괜히 잘못 발을 들였다가 다신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참 희한하게도 내 주변엔 (긍정적인 의미에서)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이들의 시선이 이 고민에 한 몫 했다. 이들은 모든 것이 쉬워 보이게 만드는 착시효과를 유발했는데, 어찌나 그렇게 명문대학에 턱턱 잘 붙고 대기업, 공업에 턱턱 입사하던지. 마치 대기업이나 공기업 입사, 전문직시험 합격 같은 것들은 내 콧대를 높였고 무의미한 자존심만 높였다. 그래서 그런지 열정이 닿는 곳이라 할 지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이들 틈에서 ‘나 스타트업에서 일해’ 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고, 눈빛으로 ’너, 앞으로괜찮겠어?’하고 말하는 태평양 같은 오지랖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이 고민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굉장히 별 것이 아니었다. 그저 혼자 멍하니 고민하다가 “그래서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고 스스로 질문했을 때, 이 일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베스트(best)이자 유일한 선택지였다.
내 효용가치와 쓸모를 무참히 외면당해 왔는데 내가 필요하다 말해 주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래. 아주 솔직하게 까놓고 말해서, 내가 찬밥 더운밥 따질 입장이 아니었다.(나중 이야기지만, 남의 시선과 경제적인 요건들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한심한 짓이었는지는 생각보다 빨리 깨달았다.)
두 번째로 걱정했던 것이 앞서 언급된 내 전공 때문이었다. 드론과 3D 프린터, 아두이노와 같은 것들은 주로 신문에서나 보던 단어들이었다. 워낙 드론과 3D프린터에 대해서는 남자친구를 통해 귀가 닳도록 들어왔을 뿐더러 이제는 제법 몇몇 전문용어를 들먹이며 아는 척 할 수 있는 수준은 됐다. 그래도 4년간 경제만 공부하던 내가 이 업계에 적응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이지 부터가 의뭉스러웠다. 스타트업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반대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는 정말 앞이 깜깜했다.
내게 요청한 업무에 대해서도 막막했다. 내가 맡은 일은 2017년부터 시작할 과학체험교육에 대한 기획이다. 지난 9년간 과학의 ‘ㄱ’자도잊고 살았던 내가 과학체험교육을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솔깃한 것도 없지 않았다. 어쨌거나 교육분야는 내 주요 관심분야 중 하나였고,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또 하나는 산업의유망성이었다. 드론과 3D 프린터 산업분야는 세계에서 주목하는 차세대 산업인데, 그것이 어떻게 숨쉬고 성장해 나가는지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때, 유독 내 눈에 ‘융합인재’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내가 졸업한 대학은 전통적으로 공학계열이 강한 곳이다 보니 캠퍼스 곳곳의 플랜카드, 공지 문자에 ‘융합인재’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다. 게다가 이런 고민을 아는 동기가 “누나, 경제 배웠는데 거기에 드론까지 만들면 누나야말로 융합인재네요”하고 밑도 끝도 없이 던진 말에 내 두 눈이 가려지고 두 귀가막혔던 것 같다. ‘취업시장에서, 그러니까 사회에서 그렇게 추구하는 융합인재, 까짓거 내가 한 번 되어 본다’ 하는 답 없는 패기였던거다.
어쨌거나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한다. 고민하는 과정에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 아니니? 조금 더 기다려도 되잖아."하는 우려와 조언을 많이 들었다. 일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2달 된 사회적 신생아지만, 아직까지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이 내게 많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사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기회였고, ‘조직과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며, ‘내가 그려온 프로젝트를 진짜 사업으로 이뤄간다’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비록 선임이 없어 일을 알아서 척척 배워야 하고, 내게 처음인 일이 모두에게 처음인 일이라 내가 당황하면 모두가 당황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꽤 ‘일하는 사람’ 같은 말도 내 뱉는다.
“사무실이요? 노트북 있고, 와이파이 되면 사무실 아닌가요?(찡끗)”
그러나 여전히 가슴 한 켠에는 불안하고, 무섭다. 그런데 또 설레고 짜릿하다.
주변에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지인들이 ‘스타트업에서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그래서 글로 답한다. 스타트업에서 일 한다는 것, 일의 ‘ㅇ’자도 몰랐던 내가 오만 곳에 다 부딪혀 가며 하나씩 배우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다.
이 이야기가 언제 끝날 지 모른다. 어떻게 끝날 지도 모른다. 앞서 말하듯 사회적 신생아인 내가 기고, 걷고, 말하고 뛰는 모든 순간들이 기록돼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람이 큰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내 인생을 빌미로 한 실험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아담 스미스는 드론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제가 한 번 알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