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에 맥주 한 병을 사서 집으로 향한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순수하게 맥주 맛이 그립기도 하고, 하루 종일 이런 저런 생각에 시달리며 고생한 내 자신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어깨 한 쪽에는 가방을 매고, 다른 쪽 손에는 맥주가 있는 봉지를 들고 신호등 앞에 섰다. 사거리를 지나치는 자동차들이 마치 가을의 깊숙한 곳을 향해 질주하는 시간 같았다. 약간 찬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작~ 맥주 한 병?'
36년이라는 시간을 살아 오면서 15년은 공부만 하고, 10년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여 돈을 벌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집어든 것이 겨우 맥주 한 병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가끔은 개념 없이 소득을 맘껏 써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냥 나를 위해...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 연로하신 부모님, 그리고 곧 유치원에 들어갈 아이, 노후...그외 많은 요소들을 생각 할 때 순수히 나를 위해 지금 이 순간 불태워 버릴 돈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결국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훗날을 기약하며 메모지에 버킷스트를 적어두는 것으로 가름한다.
누가 특별히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절약이 몸에 밴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망설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물건이 불필요해져 버린다. 하지만 절약과 인색함은 구분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주변 친구들이나 후배들이게 밥 한끼 대접하지 못하는 '밴댕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늘 택시 대신 버스를 이용하고, 간촐한 복장으로 사계절을 보낸다. 어떨 때는 내 자신이 가엽기도 하다.
"그런데 절약해서 뭐하려고 그러니?" 나에게 물어본다.
충남대학교에 가면 '정심화 회관'이라는 큰 공연장이 있다. 대전에서 열리는 상당수의 공연이 여기서 열리는데, 이 건물 이름은 평생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한 '김복순' 할머니의 성함에서 비롯되었다. 그녀의 불자명이 '정심화'였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을 존경하다가 나의 60대 꿈을 만들어 냈다. 오래 전부터...나는 60대에 내 전재산을 기부하여 '학교'를 세우고 싶었다. 어림잡아 지금의 가치로 100억원 정도가 필요해 보이는데,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현재 가진 것은 없지만 향후 20년의 세월이 나를 분명 그 지점에 데려다 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를 세우고 정문 앞에 동상으로 남고 싶다. 내 본명 두 글자가 의미하는 상(庠..학교) 기(基..터)를 실현하는 날까지... 늘 배우는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간다. 그리고 절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