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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선생 Aug 09. 2020

우울증: 깊은 늪에서 길을 찾다.

나를 나답게 만든 시간

나의 사춘기 시작은 20살이었다. 다들 겪는 사춘기를 성인이 되서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중고등학교시절 나에게는 사춘기다운 사춘기가 없었다. 사춘기를 호되게 겪은 2살 터울 형과 내가 사춘기가 올 시기에 태어난 동생,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 중1 무렵 사춘기 비슷한게 오려고 했으나, 사춘기를 겪으며 반항하고 떼를 쓰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형은 이미 사춘기를 호되게 겪으며 부모님께 큰 고민을 안겨주던 상황이었고, 동생은 막 세상에 나와 부모님의 온 신경을 쓰게 하던 시기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부모님께는 사고치지 않고, 말 잘듣는 아들, 형에게는 양보하고 희생하는 동생, 동생에게는 잘 돌봐주고 마음 넓은 형이 나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게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착한 학생', 집에서는 '착한 아들', 친구들에게는 '착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내 모습이라고 착각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쯤이던가,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을 하던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너무 착하려고만 하는 것 같애. 착하기만 한 건 좋은게 아냐. '착한 사람' 컴플렉스 있는 애 같애."


 나를 지켜보던 친구가 한 말에 나는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어리광 부리면 안된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시키는 해라." 등의 이야기를 집에서 항상 강조하셨고, 권위적인 아버지, 공감능력 부족한 형, 모든 일에 희생하는 어머니, 갓 태어난 동생을 보며 끊임없이 다짐했던 것 같다. 조용히 참아야 한다고. 그리고 매번 꿈을 꾸었다. 성인이 되면 이 집을 떠나겠다고. 어찌보면 나에게 사춘기가 20살에 찾아온 것이 아니다. 내가 20살까지 사춘기를 미뤄놓았던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과 부모님께서 보여준 사회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학생운동에도 기웃거리면서 우리사회의 비판적인 시각이 싹트게 되었고, 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관념은 사회와 부모님이 나를 속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깨지기 시작한 것이 이무렵이다. 오히려 반대로 못되게 말하고, 행동하였다. 욕을 섞어가며 거칠게 말하고,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을 여과없이 이야기 하고, 기성세대의 생각에 대해서 비웃고, 비아냥 거렸다.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 꾹꾹 눌러서 담아놓았던 억압된 자아욕구가 분출된 것이다. 


 이러한 시기는 20살을 지나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갈 때까지도 계속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하기도 부끄러워서 자다가 이불킥 할 정도의 일들이 많았다. 이 시기의 나는 쉽게 분노하고, 쉽게 슬퍼하고, 쉽게 짜증부리는 미성숙한 존재의 모습이 많았다. 연애하는 상대에 의해서 쉽게 좌지우지되고, 내 스스로의 모습이 무언지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 같았다. 인생의 결정도 오기와 분노로 결정하기도 했다. 대학원 진학을 하겠다는 말에 부모님께서는 "취업 걱정이 되서 그러냐?"라고 물으셨다. "취업하고 관두면 되죠?"라는 대답과 함께 취업 준비를 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고 1년 정도 다니다가 유학을 가겠다며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는 증명했으니 됐어.'라고.


 유학을 가겠다며 준비하던 나는 밤낮으로 준비를 하였으나, 결국 돌아온 것은 우울증이었다. 청소년기부터 스스로를 억눌러오던 마음과 성인이 되어서 제대로 제어되지 못한 분노, 타인보다 나아야 한다는 경쟁심과 압박감 등이 합쳐져서 마음의 병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날카로워진 신경을 감추기 위해 알약들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나면 바다에 떠있는 해파리 같이 의식이 부유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물 속에 들어가서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않게 된다. 7개월 간 이러한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나의 내면과 지나온 시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나에게 던지며, 나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나에 대해서 집중하고자 하였다. 지금의 상황을 다른 누군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고, 내가 가진 의식이었다. 모든 신경을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 과정에서 내가 겪어온 시간들에 대한 이유를 찾게 되었고,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 시간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오히려 당사자인 나는 마음이 편했다. 그동안 미뤄놓았던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숙제를 풀어낸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 때의 정서적인 후유증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40대가 된 지금에도 흔적이 남아있다. 


 나는 그 때의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을 내가 알게 된 시기,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시기 였다고 생각한다. 아마 우울증이 걸리지 않았다면,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불안과 짜증, 알수 없는 분노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며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거칠고, 오만하고 안하무인에 컴플렉스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종종 내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지금의 나는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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