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찬송 작사가 패니 크로스비의 ‘삶’과 찬송 이야기
‘찬송가의 여왕 (Queen of Gospel Song Writr)’, 또한 미국에서 ’ 현대 집회 찬송의 어머니(Mother of modern congregational singing in America)‘ 로 알려진 패니 크로스비가 쓴 찬송 시는 ‘새 찬송가’에 22개가 담겨있다.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예수께로 가면”, “나의 갈길 다 가도록” ,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 ”예수 나를 위하여 “ , “인애하신 구세주여 “ 등 제목만 들어도 멜로디와 가사가 떠오르는 패니의 고백은 100년이 지나도록 우리 귀에 친숙하게 전 세계에 울려 퍼지고 있는 곡들이다. 역경을 뚫고 그녀의 인생을 통해 들여다본 찬송 시는 여전히 크리스천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Fanny Jane Crosby(24 Mar 1820 - 12 Feb 1915)
Frances Jane Crosby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아버지 존 크로스비(John Crosby)의 첫 번째 아내와 사별 후 머시 크로스비( Mercy Crosby) 사이에 외동딸로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 주 북동쪽 작은 마을 퍼트남(Putnam)에서 태어났다. 생후 6주 감기로 인하여 그녀의 눈이 부어오르고 충혈되었는데, 약사는 겨자를 갈아서 눈에 바르라고 처방하였다. 그 집 가정부는 겨자를 갈아서 뜨겁게 하여 패니의 눈에 발라 주었고, 이로 인하여 패니는 결국 시력을 잃고 맹인으로 살게 된다. 패니의 눈을 치료하고 싶었던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패니의 아버지(John)의 병세가 악화되기도 하여 집안 형편이 어렵기도 하였고, 패니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잃게 된다. 생업을 위하여 머시는 패니를 외할머니(Eunice Paddock Crosby, 1778-1831)에게 맡기고 워킹맘으로 헌신적인 삶을 살아간다. 패니의 외할머니는 헬렌켈러(Helen Keller, 1880.6.27~1968.6.1)의 설리번(Anne Sullivan, 1866-1946) 선생을 떠올릴 만큼, 패니의 가장 좋은 친구와 선생님이기도 하였다. 패니의 인생은 비록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손으로 만지고 느끼고 냄새를 맡고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와 자연환경이 패니의 일상이 되도록 인도해 준 이는 바로 패니의 외할머니였다. 패니의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매일 성경말씀을 들려주었고, 패니가 믿음의 유산 가운데 신앙으로 성장하여 찬송 시를 쓰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패니는 이렇게 고백한다. “ 어머니는 매일 성경을 읽어주셨어요, 하지만 내가 성경을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분은 바로 나의 외할머니이셨습니다.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는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고, 큰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기억하기도 전에 그녀는 시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고 밝은 아이로 성장하였다. 의료사고로 인한 감염으로 시력을 잃어 평생을 살았지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그녀의 삶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격려와 위로로 함께하는 패니 크로스비의 인생은 희망의 아이콘이다.
1835-1843년까지 뉴욕에 맹인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1847년-1858년까지 영어문법, 수사학, 로마와 미국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기도 하였고, 기독교 역사상 영웅(Heroine)이라 칭송하기도 한다. 30세가 되던 1850년 11월 20일, 패니는 어느 부흥집회에서 온 회중이 Issac Watts, (1674-1748)의 찬송 [웬 말인가 날 위하여]를 부를 때 함께 부르다가, 5절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Here, Lord, I give myself away; ‘Tis all that I cav do’ 란 구절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예수를 영접하기로 결심한 분들은 앞으로 나오시오 “ 하는 초청에 응하여 참 마음으로 예수를 영접하고 , 평생 동안 I.Watts 와 같은 찬송가 작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녀가 1864년부터 쓰기 시작한 찬송 시는 8000여 편 (9000 기록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이나 되는 만큼 많은 아름다운 찬송 시에 신앙고백을 담았다. 1858년 맹인 음악가이며 같은 학교 교사이던 알렉산더 밴 앨스타인( Alexander Van Alstyne,?-1902)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패니는 기타와 피아노뿐만 아니라 오르간과 하프를 배우기도 하였고, 소프라노로 노래도 하며 복음찬송을 부르는 가수이자 시인이었다. 복음 간증을 다니는 사역자이기도 하면서, 지금으로 말하면 다재다능한 영역에서 실력을 발휘하여 작사, 작곡하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인 셈이다. 그녀는 행복 전도자다.
O what a happy soul am I!
Although I cannot see,
I am resolved that in this world
Contented I will be;
How many blessings I enjoy
That other people don’t!
To weep and sigh because I’m blind,
I cannot, and I won’t.
Crosby 가문은 영국의 오래된 ‘십자가의 마을’ 이란 뜻의 청교도 가문이었고, 패니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녀의 선조는 ( Anna Brigham, Simon Crosby) 1635년 보스턴에 정착하여 하버드 대학의 설립자 중에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의 묘비에는 “She hath done what she could (그녀가 하려고 했던 것을 해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추가된 묘비에는 그녀가 작시한 노래 가사인 ”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가 적혀있다.
“ 하나님은 나의 육신의 눈을 멀게 하신 대신에, 나의 영의 눈을 열어주셨다. 내가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찬양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찬양 시를 쓰게 하셨음을 나는 믿는다. 만약 내가 육신의 눈을 떠서 세상 것으로 장애를 받았더라면 내 어찌 그토록 많은 찬송 시를 쓸 수 있었으랴….., 인생이 그다지 길지 않기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노래하게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