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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hea Oct 04. 2015

에피소드 3. 반짝이는 농구공

꺼림칙한 예감이 적중한 그 순간.      



"집에다 뭐 숨겨놨어요? 왜 이렇게 빨리 가요~"   

     

"아니요.. 그냥 피곤해서"      


자꾸 따라오는 그 사람이 귀찮아진 나는 모든 싹을 처음부터 잘라버리고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기연 씨는 집이 어디신데요?"      



"아.. 저는 아파트 돌아서 산책로 따라 쭉 가면 돼요~자전거 타니까 금방 가죠"     


 

어찌되었든 비슷한 방향이라고 하니 우선은 넘어가기로 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사실 다 동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라서 친해지려면 그럴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관계도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정말 닥치고 운동만 하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사는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 친구가 최기연이고 둘은 오래된 친구 사이라는 것.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운동을 하고 마치는 길에 어쩌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가게 되었는데 석원이 내 나이를 물었다.      



"달혜씨, 몇 살이에요?"       


 

"얼굴 본지 얼마나 됐다고 여자한테 나이를 물어보세요~, 저 86년 생인데요.."   


       

"으왓, 생각보다 나이가 많네.. 실망이다.. 농담이고요, 달혜씨 같은 동네 사니까 주말에 자전거 타러 안 갈래요?"        



나이 어쩌고 하는 거에 솔직히 더 이상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운동이라면 환장하는 나였기에 자전거 타자는 말에 솔깃해졌다.          



"그래요, 뭐 시간 되면 같이 가요"    



    

- 딩동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두 남자가 내 앞에 먼저 가면서 석원이 다시 나에게 번호를 물어봤다.


         

"달혜씨, 그러면 전화번호 알려줄래요? 아, 근데 기연이가 대신 전화할 수도 있어요"


                 

그래.. 나는 뭔가 느낌이 왔다. 하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 상의 뻔한 명목으로 전화번호를 내주고야 말았다.       




   

[다음 날 회사]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초등학교 동창생인 미혁이와 부산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타 보는 KTX에 처음 가보는 부산 그리고 해운대..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 미혁이와도 오랜만에 보는 기회였으므로 새벽부터 부지런히 짐을 싸서 서울역으로 향했다. 아슬아슬하게 기차 시간에 맞춰 탑승할 수 있었고 7년 동안 얼굴을 보지 않았던 동창 놈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 까 했지만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정신없이 잠에 취해 일어나 보니 어느덧 부산역에 도착해 있었다. 부산 지하철을 타고 롯데호텔로 향했다. 짐을 풀고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해운대에 가서 바다 구경도 하고 저녁엔 호텔 라운지에서 공연이 있다 길래 칵테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여름 휴가를 즐기고 긴 밤이 지나고 있었다. 미혁이와 방에 들어와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카톡 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달혜씨, 여행 갔다면서요~ 부럽다.. 나도 여행 ㅠㅠ]      


    

'올 게 왔구나. 아... 귀찮다. 어쩌지. 읽기만 하고 답장 안 하기에도 그렇고 뭐라 딱히 할 말이 없는데..'


     

[네, 친구랑 같이 왔네요. 부산에 왔어요, 좋은 밤 보내시고 안녕히 주무세요]     


     

먼저 인사를 해버리면 더 이상  주고받지 않아도 되므로 이른 저녁 인사로 카톡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1년 간의 스트레스를 침대에서 머리 풀어헤치고 뛰어놀기, 맥주 퍼마시기, 음악 듣기로  승화시키고 있던 찰나,       



-띠링  


   

[친구랑 부산 가셨구나.. 좋겠어요~ 저는 이제 운동 마치고 집에 가는 중 이예요, 내일은 운동 오세요?]



           

[상황 봐서요, 운동하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더 이상 서울으로부터의 메시지를 받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 시간 만큼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고 핸드폰은 OFF로 해놓고 광란의 밤을 보내고 부산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자마자 짐을 풀고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에 농구가 하고 싶었던 나는 자전거로 내리 달려 농구 코트장으로 향했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코트에서 폴짝거리며 농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볼 네트가 너무 좁아 농구공이 계속 걸려 신발로도 던져서 내려보내고 물통도 집어 던지고 달밤의 원맨쇼를 진행하고 있던 찰나,            



-철컹        



"에이씨.... 또 걸렸어 젠장. 키도 안 닿는데 힘드네.."    


          

혼자 중얼 거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에 아무도 없는 농구 코트장에 사람 발자국이 들렸고 나는 시선을 돌렸다.     


      

키 큰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가볍게 점프를 해서 농구공을 꺼내 주었다.      



      

"달혜씨.. 농구도 해요?!!"     



           

낯익은 목소리와 몸집    




        

"아.. 예, 여행 다녀와서 몸이 찌뿌둥 해서요.. 그런데 늦은 시간에 웬일이세요?"     


     

"저도 지금 운동 마치고 가는 길이예요"    


    

"아.. 그러시구나, 농구공 꺼내 주셔서 고마워요"      


  

재밌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기연이라고 하는 그 남자는 나에게 농구 게임을 제안했다.    

    

결과는 무승부였고 저녁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산책로로 데려다 준다고  했다.

       

내가 비록 연애 고자지만 눈치 하나는 빠르기에 이렇게 뻔하게 흘러가는 스토리의 종착역이 어디가 될지 훤히 보였기에 사소한 일말의 가능성도 전부 잘라 내버리고 싶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저 자전거 타고 와서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도망치듯 페달을 밟았고 집에 와서 농구공을 내려놓고 1분 간 우두커니 쳐다본 뒤 샤워를 하고 잠에 들었다.             

창고에 놓인 농구공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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