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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hea Feb 13. 2016

제 6화. 불현듯 입술과 입술

데이트 인 듯 데이트 아닌 듯, 같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적으로 연락하는 일이 잦아졌다


사실 우리 집에서 체육관이 걸어서 10분 거리, 그리고 우리 집에서 기연씨 집이 걸어서 20분 거리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바로 옆 동네였고 바람이 선선해지자 가끔 만나서 같이 체육관도 가는 사이가 되었다


난 지독한 개인주의로 사생활 노출에 엄청 민감하게 굴고 별거 아닌 일도 철저하게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그게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으므로 우리의 이런 썸 또한 알려지는 것이 싫었고 체육관 근처에서 내가 먼저 들어가면 기연씨가 나중에 들어오는 식으로 그렇게 아슬아슬한 만남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성인 반은 평균 나이 25세 이상으로  눈치챈 사람도 분명 있었고.. 우리는, 아니 정확히 나는 내가 그런 식으로 보이는 게 싫었다


한 집 단안에서 연애를 했었고 이 연애가 실패로 끝나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여자는 어떤 존재가 되는지 한 번 겪었기에 그게 어떤 집단이든 어떤 인간들이든 다시 그런 실. 수를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난 그저 운동에 미친, 운동에 환장한, 운동만 하고 가는 그런 여자면 된다


그렇게 보여져야 한다


사람들이랑 가까워지는 것도 싫었고 내 영역으로 침범하게 허락하지도 않았다


기연씨가 내 영역으로 발을 디딘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방관하면서도 괜찮을 거라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뭔가 불안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비뚤어지고 왜곡된 나의 사랑은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내가 마음을 여는 것도 내 마음을 주는 것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마음속으로는 빗장을 걸고 썸 타는 짜릿함을 즐기면서 내 가치관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라 되뇌었다


운동하는 시간이 더 짜릿해졌다


나를 보는 그의 시선이,  온몸으로 전해지면 운동으로 극대화된 신경세포들과 근육이 더 팽팽하게 수축되는 것만 같았다


같은 공간  안에서 금기시된 무언의 행위를 하면서 주변을 농락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운동을 끝낸 후에는 언제나 내가 먼저 샤워를 하거나 정리를 하고 돌아갔고 체육관 신호등 앞에 기다릴  때쯤이면 기연씨가 뒤따라 와 있었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부는  늦여름 주말.




[달혜씨, 뭐해요? 오늘도 운동해요?]


[아니요, 오늘은 그냥 산책하다 올 거예요]


[오~ 산책, 어디로 가는데요? 저도 마침 쉬는 날인데 저랑 같이 가요]


[저 20분 후에 출발해요, 중간에서 만나요 그러면]


[ㅇㅋ!]


주말이라 사람이 북적거렸고 얘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상당히 멀리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저 조금 다리 아파서 그러는데 앉았다 가요]


[그래요~]


산책로 옆길에 잠시 앉아있었고 내 안에 잠들어있던 여우 본능이 꼬리를 슬쩍 내밀었다. 그리고 원래는 해서는 안되지만 한 번 시험해보고 싶어 졌다


[무릎 좀 빌려주시죠?]


[네? 아.. 그래요~]


바람도 선선하게 불고 있었고 엠피쓰리에서는 약간 끈적거리는 하우스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기연씨, 이거 한번 들어봐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예요]


[음.. 괜찮네요. 이런 장르도, 저도 여러 가지 많이 듣긴 해요]


[한번 끝까지 들어보세요~]


난 그의 무릎을 베고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중, 안경 너머로 기연씨와 눈이 마주친다


'올 게 온 건가.. 여기서 멈출까.. 어떻게 해야 되지'


그리고 점점 나에게 가까이 온다


나는 눈을 감지 않는다


그렇게 예고되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불현듯 입술과 입술이 마주쳤다


난 주먹을 꽉 쥐었다..


늦여름 특유의 비릿하고  끈적대는 바람이 얼굴 위로 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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