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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Apr 08. 2017

별안간 어머님

D+125, 작지만 큰 도전 그리고 호스트로서의 임무를 완수한 춘이

오늘 나는 작지만 의미있는 도전을 했다.


임신 전부터 내가 내 중심을 잡아가도록 많은 도움을 줬던 컬러테라피와 마음챙김 명상을 얼른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었는데, 오늘 작게나마 그 시도를 해봤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이에 관심있는 애기엄마들을 모아 내가 도움받았던 것을 나눈다는 글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어서 오늘 집에서 그 모임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난 원래 생각난게 있으면 일단 해보는 타입이었는데, 백일 갓 지난 춘이와 한 몸이 되어있는 상황에서는, 화장실 한번 느긋이 가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는 참 많이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또 내가 꼼꼼함을 요구하는 일을 제일 오래해왔던 터라 어떤 걸 주최한다는 건 나에게 많은 에너지를 써야한다는 걸 알기에 더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냥 했다.

출산 후 눈에 띄게 심해진 딸리는 단어구사력, 춘이한테 남편을 부르는 호칭인 자기라고 부르는 어이없는 두뇌혼동, 무엇보다 너무 심하게 떨어진 체력에 어제 저녁엔 잠시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었다. 특히 우리가 먹는 것에도 테라피의 효과가 있다고 믿기에 좋은 재료들로 정성스런 다과도 준비하고 싶었는데, 춘이 들쳐업고 비를 뚫고 간 마트에서 춘이의 낑낑거림을 보고 얼른 딸기하나 건져 집으로 왔단 말이다. 거기에 공간이 주는 에너지도 참 큰데 현재 집 구조에서 어떻게 엄마들이 쾌적하게 자기 마음을 볼 수 있을까 애기들이 서로 방해받지 않고 울 수 있을까..ㅋㅋ 나름 고민을 많이 되어 더욱 그랬다.

준비하는 중간에 바틀을 가지고 명상을 잠시 했다. 그냥 이 과정을 즐기자라는 메시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대신 진심을 다하는 내 Heart만은 가슴 가득히 가져가자. 라고 내 의도를 세우고 나니 오히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두 팔 걷어붙이고 화분을 옮기고 베란다를 걸레질하고 집에 있는 것들로 다과를 준비하고..할 수 있는 선에서 몸을 움직이고 중간중간 춘이를 달래가며 먹여가며 재워가며 시간을 쪼개 움직이니, 얼추 최소한의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춘이가 흔치 않게 새벽에 일어나서 우는 덕분에 아침에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그냥 몸을 일으켜 으쌰으쌰 준비하며 이 과정을 즐기자는 어제의 메시지를 잊지 않으려했다.


갑자기 참석하기로 한 조리원 동기 언니님이 어제 새벽 그간 모유수유로 자제하고 있던 맥주 한캔을 맛보다가 그대로 쭉 달려버려서 미안해하며 오늘 급 불참 통보를 하셨지만, 엄마가 되어보니 그 맘도 이해를 못할바가 아니어서 웃으며 숙취해소를 기원해줬다. ㅋㅋ 다행히 다른 대기자..분이 몇시간 전 물어봤음에도 오겠다고 해서 이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것도 살면서 참 중요한 일이 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예비 엄마 한명, 150일 아기와 그의 엄마 한명, 춘이 조리원 친구 125일 아기 두명에 그들의 엄마, 이제 돌 지난 젤 큰 형님과 그의 엄마, 연남동에서 초빙한 명상덕후님까지 속속들이 춘이와 나의 은밀한 공간에 모여들었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엄마라는 공통점만으로도 반갑게 서로의 애기들과 인사했다.

채색하면서 중간중간 애기 잡으러 다니랴, 밥 먹이랴, 울락말락해서 얼른 들쳐 업으랴, 잠시 내려놓으랴 오직 예비엄마만이 느긋하게 즐겼지만, 이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컬러를 즐기고, 무언가를 해소하고싶은 엄마들의 열정만큼은 참 멋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것이, 아직 마음을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가고 있는 단계일텐데도 그냥 무심코 던지는 말들과 지나온 상황들을 견뎌온 것에서 어떤 큰 힘이 느껴졌다. 그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나 역시도 그들에게 가르침을 얻은 부분이 참 컸다.


우리 춘이는 요 근래 들어 다른 인격체가 나오고 계셔서 오늘 가장 큰 주목을 받지 않을까 염려되었지만, 호스트로서의 역할을 놀라울 정도로 잘 해냈다. 세상에나, 요즘 목욕도 거부, 밥도 거부, 눕는 것도 거부, 거부투성이었던 아이가 어찌나 천연덕스럽게 손님들을 맞이하며 옆에 우는 친구를 여유있게 바라보기까지 하던지 기특해 죽는 줄 알았다. 엄마 뱃속에 있을때 많이 느꼈던 풍경이어서라고 내 멋대로 결론내리기.^^

물론, 아니나다를까 마지막 손님이 가자마자 울어제꼈지만, 기특한 하루를 보낸 춘이가 떼를 부릴 틈을 여유롭게...주기로 했다. 춘이를 겨우 재우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밥을 먹었지만, 오늘도 이렇게 인생의 한 지점을 지나고 있고, 그 순간 내가 알아차리고 있음에 감사했다.


밥을 먹고 가만히 앉아서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오늘 본 한 명 한 명의 엄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땀이 흥건한채 애기를 계속 안고 달래는 앳되보이는 엄마,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애기를 계속 쫓아다니며 혹시라도 민폐를 끼칠까 따라다니며 치우느라 엉덩이 한번 못붙인 엄마...한창 일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꽃이 핀줄도 모르고 집안에만 갇혀서, 그 속에서 느끼지 않아도 될 미안함을 느끼는 엄마들..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엄마들.. 그리고 그 눈물.. 나도 그들 중 하나겠지만, 정말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마음속 깊이 응원을 보냈다.

아무리 사회구조가 바뀌어간다고 해도, 생물학적인 특성상..여자들의 삶은 남자들의 삶보다 복잡할 수 밖에 없는게 사실인 것 같다. 앞으로 이 부분은 어떻게 풀어가야할까?

출산과 그 이후의 삶, 과연 신이 여자에게 준 선물일까 벌일까?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선물이 되도록 꾸려나가는 자만이 그 달콤한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면 너무 섣부른 결론일까?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확실히 명료한 것은, 모든 인생의 순간순간이 다 명상이라는 것.

오늘도 이렇게 일개의 어떤 하루에서 명상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도전을 완수한 나를 토닥인다.


손님맞을 준비중인 호스트 춘이의 여유로운 모습
그 누구보다 멋지고 강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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