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톰 Sep 12. 2015

   와일드 (책과 영화)

누구나 한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번은 길을 만든다

와일드는 1995년 '몬스터(괴물)'라는 별명커다란 배낭을 메고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는 미국 대륙 종단길(PCT)을 94일 간 홀로 걸어 간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PCT(Pacific Crest Trail)

PCT 는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9개의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4.285Km의 도보 여행길이다.(서울~부산간 거리의 약10배)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주를 지나가는 여정에는 황무지, 국립공원, 사막, 산맥, 열대 우림 과 강을 지나야 하며 퓨마, 갈색 곰, 방울뱀 등 무수한 위험이 여행자들을 위협한다.
아름답고 변화무쌍하며 일주일을 걸어도 사람을 만나기 힘든 외로운 길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PCT의 전 구간을 다 걸어간 것은 아니다.
멕시코와의 경계 구간이 아니라 모하비에서 출발하여 폭설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 구간을 차로 우회하였고 컬럼비아 강이 흐르는 '신들의 다리까지 약 1,800 Km,하루 평균 20Km 정도를 94일간 걸어갔다.
PCT(4,285 km)

이야기의 시작은 38일째 걸어온 셰릴이 발톱이 빠지고 피범벅이 된 발을 어루만지며 쉬는 사이 배낭이 넘어지벗어 놓은 등산화 한 짝이 벼랑 밑으로 굴러 지 나머지 신발마저  절벽으로 던져버리며 소리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잠시후 셰릴은 테이프로 샌들을 발에 동여 메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38일 동안 황무지를 걸어온 셰릴의 고통이 발톱이 빠진 피투성이의 발에 농축되어 있는 듯하다.

셰릴 스트레이드(Cheryl Strayed), 갓 이혼한 26살의 그가 이 험난한 행로를 선택하기까지에는 과거 4년간 어두운 방황이 있었다.

셰릴은 소설가를 꿈꾸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마흔살의 대학생,엄마 바비와 여성학을 공부하는 캠퍼스 커플이기도 했다.

(자식이 학생이면 부모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좋은 제도를 가진 학교였다,미네소타 대학교)

19살 때 첫사랑과 결혼한 그 였지만  친구이자 신앙과도 같은 엄마가 폐암으로 45살의 나이갑자기 세상을 뜨공황 상태에 빠지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방랑헤로, 외도 등 혼탁한 생활을 하며 급기야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하게 된다.


셰릴이 6살 때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혼한 엄마는 공장, 식당 등을 전전하며 가난하게 생활하지만 세명남매를 사랑하였고 항상 긍정적이며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의 재혼으로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나무를 때어 난방을 하는 미네소타 숲 속에 집을 짓고 두 마리의 말과 개, 닭들을 키우며 10대를 보내게 된다.

소박하였지만 행복하였고 서로를 이해하는  가정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으로 가정이 붕괴되며 셰릴의 방황과 이혼으로 이어진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하자 셰릴은 끝내 눈물을 터트린다.

주체하지 못하고 통곡하 망가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고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벼랑 끝에서 몰려드는 후회와 각오.    

'나 이제 다시 돌아갈 거야'

'엄마가 나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로, 그 여자로 다시 돌아갈 거야'

이 만큼 너희를 사랑할까?
미네소타 숲속의......
우리는 부지야. 사랑이 가득하니까
40살의 대학생, 바비
일년은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불과 한달...
신은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거저 인정사정 없는 개 자식에 불과했다. 평생동안 전망 좋은 방에서 살기를 바라던 엄마는 창밖으로슈페리어 호수가 보이는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거야

하지만 이혼 수속을 마친 그녀가 이제 할 수 있는 일 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피폐해진 영혼, 한푼없는 재산,떠나가고 사라져 버린 주위의 모든 것 . 

그 벼랑 끝에서 셰릴은 눈에 아른거리는 한 권의 책,문득 REI 진열대에 놓여있던 PCT Guidebook을  떠올린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체념한 그에게 다가온 한 줄기 희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바위산에 둘러 싸 여진 호수가 그려진 책의 표지가  떠오르자 기분이  들뜻고  PCT를 걷는 일이 나를 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필연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변해야 한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그 모습을 되 다는 생각이 PCT를 준비하는 몇 개월 동안 셰릴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셰릴은 PCT를 걸어가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단련하는 것이  지난 4년간에 걸친 방황의 늪에서

져 나오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한 번도 배낭을 메고 장거리 하이킹을 해보지 않은 셰릴의 준비물은 엄청 났다.

바지, 셔츠, 양말, 모자. 타월, 정수기, 버너, 알루미늄 연료통, 라이터, 코펠, 샌들, 드라이 백, 첫 번째 보급 기착지인 케네디 메도우즈까지 10일간의 식량, 10 리터(10 kg)의 물,빅토리 눅스 맥가이어 칼, 쌍안경, 슬리핑 백, 캠핑용 의자, 나침판, 구급 약품, 휴지, 머그잔, 방수포, 양초, 물통, 건전지, 성냥, 담요, 필기구, 헤드 램프, 소형삽, 휴대용 톱, 요오드 정제, 카메라, 줌 렌즈, 삼각대 등등 거기다 두툼한 세 권의 책까지......    

똑바로 세운 배낭은 셰릴의 허리까지 닿았으며 배낭을 메고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였다.      

체중의 절반을 훨씬 넘는 무게.

처음 배낭을 메고 험난한 길을 떠나는 셰릴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REI 등산용품 전문 쇼핑몰

6월의 첫주.....

셰릴은 드디어 '몬스터'를 메고 출발점에 선

모하비 사막의 서쪽 끝.

그리고 첫 번째 방명록 포스터에서 자신의 다짐을 기록한다.

'If your nerve deny you , go above your nerve'

너의 용기가 너를 거부하면 그것을 넘어서라.

뜨거운 열기와 함께 출발부터 처음 경험하는 육체적 고통이 셰릴을 괴롭힌다.

배낭이 짓누르는 어깨의 통증과 발가락을 으깨는 듯한 아픔과 물집.

PCT Guidebook 6 page에 쓰여진  글귀의 의미를 채 5Km도 걷기전에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이 준비해야만 하는 심리적 요소들을 책 한 권으로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절망감,외로움,걱정...근심 특히 고통은 육체적 정신적 측면 모두에서  여행자의 중심에 있는 의지까지도 난도질해 들어간다. 이것이야말로 이 도보 여행에서 정말로 준비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              

그리고 육체의 고통 앞에서  영혼의 갈구와는 달리 너무도 쉽게 찾아오는 후회.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2분마다 한 번씩 그의 선택을 후회했으며 '언제고 어디서고 포기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걷는다.

노래를 흥얼거리려고 애쓰지만 고통에 찬 숨을 헐떡거리며 신음할 때 노래를 하기란 정말 어려운 노릇이라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다.

겨우 8km,아직 오후 4시 밖에 되않았지만 엄청난 무게의 베낭 때문에 탈진한 셰릴은 서둘러 첫날의 행보를 마감한다.

너의 용기가 너를 거부하면 그것을 넘어서라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난 언제고 포기할 수 있어

셰릴은 혹독한 바람과 암울함위에  어설프게 매뉴얼을 보며 텐트를 치고 털썩 주저 앉았다.

너무 피곤해서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고  버너에 불을 붙일 힘도 없었다.

그러나 서둘러 가방을 뒤져 한 권의 책을 펼쳐든다. 셰릴에게 종교와도 같은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집 공통된 언어의 꿈.

셰릴은 책과 시를 좋아했다.

자신이  세상이 힘들고 견디기가 어려울 때 책 속에서 현재를 망각한 다른 세상을 추구했었.

그리고 여기 PCT에서의 책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공통된 언어의 을 펼치고 큰 소리로 읽고 또 읽었다. 시의 제목은 바로 (Power) 이었다.

공통된 언어의 꿈
 *Adrienne Rich/셰릴이 눈을 감고도 외운다는 시집 The Dream of a Common Language의 작가
내가 포기해도 화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홀로 맞이하는 밤의 침묵은 웅장했고 고독감은 무거운 무게로 내려 앉았다

건조하고 바위 투성이인 사막 지역에서의 기온은 급변했다.

낮에는 폭염,밤에는 몸이 벌벌 떨리는 한파.

따뜻한 음식을 준비해보려고 하지만 연료를 잘못가져온 버너는 금방 쓸 수없게 되고....


하루가  일주일보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며

뜨거운 태양 아래 걷고 또 걸었다.

자갈길에서 미끄러져 정강이에 깊은상처가 생기고 살이  퉁퉁 부어올랐다.

발은 상처 투성이이며 물집 때문에 살은 너들너들하게  쓸려 있었다.

너무나 힘들어 울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 강하고 용감하다는 주문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그런 최면들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절망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 상상력이 빚어내는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 그런 것들을 어느 정도 몰아낼 수 있었다.

견과류,육포, 초콜릿 등 건조 식량만으로 버티기 8일째... 식량이 바닥났으나 다행히 인근 농부의 트랙터를 발견하면서 도움을 받게 된다.

처음으로 따스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왕성한 식욕을 노출시켰으며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같이 먹고 이야기 하고 싶어
Day 8
PCT 여행자인데  먹을 것이 다 떨어졌어요

열흘이 지나 으지고 의 고통,배낭에 쓸린 등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점차 여행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으며,버너에 데운 따스한 Soup 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했.

사막 또한 건조하고 뜨거우며 뱀과전갈,선인장으로 가득차 있는 모래밭이라는 상념을 깨고 꽃송이들이  흩날리는새로운 세상이라는 것도 알아갔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    

방울뱀, 송충,밤의 공포

그리고  혼탁하고 음습한 과거의 기억들이 셰릴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엄마,엄마 ....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옆에 있지 못했던 . 그 죄책감이 셰릴을 짓밟으며 슬픈 꿈으로 나타난다.     

Day 10
불을 지펴 처음으로 말린 콩과 쌀을 끓여 따뜻한 식사를 차렸다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친구, 보고싶다
송충이
밤의 공포
엄마, 엄마.....

 군대의 행군같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걸어본 사람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무슨 짓을 한다는 것을.

셰릴이 더블 민트껌과 버거킹 광고 노래,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를 반복해서 부르거나 발걸음 숫자를 끝없이 헤아리듯이.


셰릴은 여행을 준비하면서 엄마의 죽음 앞에 속절없이 무너 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배신하고 스스로를 슬픈 굴레속으로 몰아 넣었는지, 마음 속에 돌처럼 품고 있었던 생각들을 PCT에서 정리 할 계획이었다.

해질 무렵 노을 아래서 정갈한 호수를 바라보며 깊은 자아성찰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여행을 하면서 매일매일 스스로를 씻어내는 눈물을 흘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만끽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까지는 아니였다.

내면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발과 등과 엉덩이의 상처 때문에 힘들어 할 뿐.

여행의 의미는 희석되었고 때려 치워야겠다는 생각과 포기에 대한 합리화만 셰릴의 머리속을 멤돌았다.


그러나 영화는 셰릴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25개의 국유림과 7개의 국립공원, 모하비 사막과 투올럼니 초원, 후드산,레이니어 화산등을 배경으로 펼쳐진 장엄한 광경으로  PCT에 대한 동경과 함께 스크린에서 눈을 띠지 못하게 한다.


이미 포기를 결정하고 돌아갈 길을 찾고 있던 셰릴은 방명록의 유일한 여자, 셰릴을 기억하는 PCT 하이커 그랙을 만나게 된다.

4년간이나 PCT의 정보를 수집하고 베낭을 메고 연습했다는 이야기,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폭설등 여행의 정보자신도 처음엔 그러했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만 적응할 수 있다는 격려의 말을 듣기도 하지만 이미 포기를 작정한 셰릴에게는 이 모두가 여행을 그만 둘 합리적 이유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난 PCT를 계속 걷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기록적인 폭설 때문에'

그러나 케네디 메도 우즈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지금 잘하고 있으며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것.  당신처럼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등 그랙의 진심어린 격려에 감격한다.

'그래,그랙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면 나도할 수 있다' '나보다 강한사람은 없다'

스스로도 믿지 않는 말을 되뇌이며 새로운 결심을 하고 37도가 넘는 열기속으로 다시 걸어나간다.

그 때 그랙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의 이책도 영화도 없었을 것이다.

모하비 사막을 막  벗어나 무성한 숲을 통과할 때  커다란 곰이 나타나나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다는 호신용 호루라기를 미친듯이 불어 제낀 덕분에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개미떼의 습격을 받고,푸마의 발자국을 밟으며 걷기를 14일째 ,160Km,하루 11 Km 의 거북이 행보로 첫번째 기착지 케네디 메도 우즈에 도착한다.

PCT의 중간중간에는  150~250Km 정도의 거리마다 (서울~대전:160Km) 우편물이나 소포를 수령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모여 쉴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셰릴의 첫번째 기착지 케네디  메도우즈,새로운 등산화를 받게되는 캐슬트랙스,오리곤의 경계에 있는 세이어스 밸리,벨든 타운,올드 스테이션,

애쉬 랜드.....등 

 잡화점 하나 그린피스라는식당하나 그리고 조그한 야영장이 있는 문명의 전초기지.

여기에서 셰릴은 그릴과 재회하며 친구가 보내온 오코너의 단편집,20달러의 돈,뜻 밖에 의붓 아버지의 편지를 받다른 여행자의 도움으로  휴대용 톱,쌍안경, 카메라 후레쉬,향수 등 중요하지 않은 짐들을 덜어 냄으로 배낭의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더그,앨버트등 잊지 못할 길위의 사람들을 만난다.

수인성 기생충에 감염되어 중도 하차하지만,셰릴의 베낭을 줄여준 앨버트가 이 길을 걷는것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 해보고 싶었던 일생의 꿈이었으며 쉰살이 넘어서야 이곳에 오게되어 감격스럽다는 이야기를 하자 셰릴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에 안도한다.

책은 PCT에서 셰릴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엄마와 셰릴의 과거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PCT의 묘사에는 다소 소홀했으나 영화는 다채롭고 장엄한 영상으로 이를 보완했으며 주인공의 섬세한 내면적 표현 또한 영화가  더 충실했다는 생각이 든다.  

Day 12/128 Km
그랙을 만남
Day 14
KENNEDY MEADOWS
I made it.
케네디 메도우즈
중요하지 않은 짐들을 덜어내고...

아쉬움을 남기고 케네디 메도 우즈를 떠난 셔릴은 640 Km 에걸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폭설로 인하여 차를 타고 시에라 시티까지 우회하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눈 쌓인 평원에서 길을 잃고 여우를 만나기도 하면서  셰릴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고통과 불안감 속에서도 작은 아름다움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묵직한 느낌이 드는 몬스터가 셰릴의 등뒤에서 자리를 잡았고 그 이름에 깊은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이토록 무거운 짐을 자신이 지 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육체적,물질적인 행위가 정신적 영역까지 연결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점차 가라않는 듯한 내면의 소리,산 넘어 히미해 지는 태양과 장대한 하늘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복잡한 삶이 이렇게 단순해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으며 여행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인생의 슬픈 일들을 되새기는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떠오르기시작했다.

어쩌면 육체적 고통에만 신경을 집중하느라 감정적 상처 같은건 저 멀리 사라졌는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길에 들어선 이후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쉼터에서도 쥬스 한잔 마실 수 없는 텅빈 주머니, 2센트만 가지고 있어도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훈련시켜준  어려웠던 과거에 감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은 차츰 한가지 생각만 담고 있는 투명한 유리병으로 변해갔지만 육체는 정반대로 깨어진 유리잔으로 변해갔다.

Day 25
여우가 떠나갈 때 셰릴은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우리 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
Day 36

캐슬 크랙스 주립 공원과 애쉬 랜드의 80Km테이프로 샌들을 감고 걸어야했으며, 얼음이 녹은 차디찬 급류를 몸으로 건넜고 시간이 주어질때마다 구간구간 PCT를 걷는다는 여자 하이커 트리나를 만나 길의 의미와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한다.

Day 38
Day 49/애쉬 랜드
고등학교 영어선생,처음으로 단기 PCT 여자 하이커 트리나를 만난다
엄마는 인생에는 일출과 일몰이 있고
그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요

한낮의 온도가 40도 가까이 되는 머독 고원. (올드 스테이션에서 록 스프링스까지의 50 km)

그 길의 중간에 있다는 물 탱크를 기대하고 걸어 가지만 텅빈 물 탱크는 탈수증과 탈진으로 셰릴을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간다.

텐트에 맺힌 이슬까지 핥는 극심한 갈증을 견디며 휴대용 정수기와 요오드로 정제한 흙탕물을

4 리터나 마시고 노골적인 성희롱을 일 삼는 사냥꾼을 만나 허겁지겁 텐트를 접고 밤길을 달려 도망치기도 했다.

Day 56
머독 고원
물 없음물없음물없음물없음

고통과 혼돈,경이와 평온이 뒤 엉킨 감정들이 교차하며 62일째 드디어  캘리포니아를 넘어 오리건 주에 입성한다     

나는 해냈다.

오리건! 오리건! 오리건!  

오리건 주
캘리포니아에서 오리건으로/애쉬랜드
안녕,오리건의 젖소들아!       

단돈 2달러 29센트의 잔고 밖에 없던 셰릴은 오리건 주의 첫 번째 기착지 애쉬랜드에 친구로 부터 청바지 등 옷가지며 거액 200달러의 송금을 받아 부자가 되고,마침 마을에서 열리는 가수 가르시아의 추모제에서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34세 청년,조나단을 만나 22시간의 뜨거운 데이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나단과 함께 찾아간 바닷가 마을 브리킹스의 해변가 모래 위에 헤어진 남편 폴의 이름을 새겨 떠나 보고 화산 폭발로 생겨난 거대한 호수 오델레이크를 향한 발걸음을 지속한다.

PAUL

 길에서 만난 첫 번째의 인연 그랙으로부터 종착지인 신들의 다리에 이르기까지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쉼터에서의 재회등 많은 인연이 이어지며 셰릴은 그들을 통해 깨달음과 지혜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오델레이크에서는 다른 하이 커들로 부터 PCT 의 여왕이란  호칭을 부여받기도 했다.      

셰릴은 십오년이 흐른  후에 PCT에서 만난 더그의 죽음을 알고 당시를 회상하 며 눈물을 흘리는 등 길위의 인연이란 스쳐가는 옷깃처럼 가벼움지만 때론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하는 것 같다.   

오랠리 레이크

길 위에서 맞이한 엄마의 생일, 만일 살았더라면 50번째 였을, 겨우 마흔 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그레이트 레이크로 가는 녹색의 터널 위에 뿌리고 지나간다.            

'나는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단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어. 언제나 누구의 딸, 엄마, 그리고 아내였지.

나는 나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말기암 판정을 받은 엄마 바비의 울먹거림이 메아리 쳤다.

그가 만든 상처,스스로가 귀기울지 못한 그의 소리.

힘들고 길이 없다고 느껴져 선택 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힘겨운 여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자신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어

목적지 신들의 다리가 가까워 오며 숲속에서 라마를 끌고 여행하는 여인과 소년을 만나며 

아픈 어머니가 가려쳐주었다는 소년의 노래를 듣는다.

이 협곡에서 이젠 네가 떠날거라고 이야기해

우린 너의 빛나는 눈과 미소를 그리워할거야

햇빛 처럼 빛나 우리 가는 길을  비춰주었어

날 사랑한다면, 내옆에 앉아

나에게 작별을 고하려 서두르지

언제나 붉은 강의 협곡을기억해 주길

그리고 카우보이가 널 좋아했던 건

정말 사실이란다

카우보이는 널 정말 좋아했단다.

'엄마,그리워요!'

이 협곡에서 이젠 네가 떠날거라고 이야기해
우린 너의 빛나는 눈과 미소를 그리워할거야
넌 햇빛 처럼 빛나 우리 가는 길을  비춰주었어
날 사랑한다면, 내옆에 앉아
나에게 작별을 고하려 서두르지 마
언제나  붉은 강의 협곡을기억해 주길
그리고 카우보이가 널 좋아했던 건 정말 사실이란다
.카우보이는 널 정말 좋아했단다.
엄마, 그리워요

6개의 발톱이 빠지며 세 자매산,워싱턴산을 넘어 셰릴은 여기까지 걸어왔다.

이제 포클랜드에서의 생활을 준비해야 할때....

그래도,그래도 계속 살아야겠지.

비록 한 푼 의 잔고 남아있지 않지만

을 찾을 때까진 팔 수 있는 건  다 내다 팔고  수북한 책들은 헌 책방에 내다 아 현금을 만들자,

CD Player 로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듣자.

그리고 낡은 컴퓨터로 소설을 쓰자.

걸어온 PCT Guiderbook을 불에 태우며 셰릴은 여정을 마무리해 간다.

Day 94

94일째 드디어 셰릴은 컬럼비아강이 흐르는 신들의 다리에 도착했고 컬럼비아 강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천천히 흘러갔다.

강물에서 비치는 희미한 빛은 긴 여정동안 상 상했던 그 어떤 모습 보다 아름다웠다.    

'엄마가 기러셨던그런 여자로 돌아오는데 4년 7개월 3일이 걸렸어'    

'이제 비통해하는 나 자신은 숲 속에 다 던져 버렸고 그 숲 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어'  

나는 이곳에 도착했다.

이 여정을 해냈다.

    

'배낭 여행하시나 봐'        

'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여행했죠. 캘리포니아에서 이곳까지 석 달 넘게 걸어 왔어요.  오늘 아침에 막여행을 끝냈죠'    

'아, 정말이요'    

눈에 조금씩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이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것.

이길에서 나를 가르쳐 준 모든 것들.

마침내,마침내 마음속에 하나로 합쳐진 모든 것들....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PCT 에서 셰릴의 낮과 밤을 지켜주었던 공통된 언어의 꿈에 실린 글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담겨져 옴을 느꼈다.    

힘.....

'엄마가 기러셨던그런 여자로 돌아오는데
4년 7개월 3일이 걸렸어'    
이제 비통해하는 나 자신은 숲 속에 다 던져 버렸고
그 숲 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어
 고맙습니다. 이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것.
이길에서 나를 가르쳐 준 모든 것들.

긴 여정을 끝내고 하얀색 벤치에 앉을때 나는 나의  앞날이 어떠하리라는 걸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정말로 이 일을 해냈다는 사실만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제는 더 이상 빈손을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 수면 아래로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저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내 삶도 신비로우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 이라는것을, 

지금이 순간, 바로 내 것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셰릴 스트레이드

20년이 흐른 지금 셰릴은 작가이며 두 아이의 엄마다.  

 

**책은 책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나름의 장점과 특질이 있다.

영화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섬세한 내면의 소리를 책은 표현할 수 있으며 영화가 시간의 제약으로 스쳐가는 부분을 책은 놓치지 않는다.

반면 영화는 책에서 표현할 수 없는 생생한 장면을 스크린에 담아 감동을 전하며 여운을 남긴다. 

      

책과 영화를 조합하는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

전개 방법과 순서가  달랐고 대사와 등장 인물에도 차이가 있었다.    

책과 영화 모두 다 셰릴의 경험이며 감성이었다 생각하며 둘 중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을 골랐 다. 

언젠가 특별한 영화<클라우드 아틀라스>의 후기를 쓰다 중도에 그만 둔적이 있다.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로 표현한다는건 어렵고 리포트처럼 흥이 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PCT 에 대한 동경과 셰릴의  이야기에 대한 흥미가 적었다면 이런 시도가 무의미했을 것이다.

나 역시 홀로 걷는 길의  의미와 어려움을 알며

그 길에서 무엇을 얻으며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를 어렴풋이 경험하였으므로 전적으로 셰릴의 생각과 결심에 공감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과 영화에 몰입하였고 마치 내가 셰릴이고 셰릴이 나인 것 같은 생각으로 셰릴과 같이 PCT 의 행로에 뛰어들었다


보통 영화보다는 책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곤 했지만.     

와일드의 경우 화면에 펼쳐지는 장엄한 풍광 탓에 책보다는 영화가 더 좋았었다.

은 책에 더 가깝게,사진은 영화에서 글과 매치되는 장면을 Capture 고 순서는 표현이 용이하게 구성했다.나중엔 책과 영화가 혼돈되어 이도 저도아닌 전혀 다른 내용을 쓰기도 했다.

PCT를 걸었고 다시  걸어갈 계획에 설레였으며 간간이 이 글을 정리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셰릴이 홀로 걷는 험난하며 고독한 여행을 통해 자아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나는 이해하며 공감한다.    

우선 걸으면서 대자연을 마주하다 보면 일상의 사소한 일들이나 처경,울적한 고민들이 하잘것없고 별 것이 아니라는 대범한 생각을 하게 된다.

시린 별빛은 내 눈 속에 있었고 파도소리,바람소리, 물소리가  내 귓가를 채우며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풀  한 포기가 내 몸의 일부였음을 왜 랐을 후회하게 된다.     

(홀로 낯선곳을)여행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인생은 한 페이지만 읽은 책과 같다는 말처럼

홀로 가는 여행에서는 끊임없이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허공에 흩어져 버리는 말이 아니라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는 진실과 사색의 글이다.

이렇게 쌓여진 생각들이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 정반합을 거쳐 하나 하나 엉킨  타래를 풀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 나가기  때문이다.         

                                                     

책과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다시 와일드의 원서 PCT Guiderbook을  구입했고

마치 당장 PCT로 떠날 것처럼 지도를 더듬었으며 수시로 REI를 넘나들며 필요한 장비 구경했다.

셰릴의 Gregory Evolution 배낭, Wenzel Alpine Dome 텐트,MSR Whisper Lite 버너까지.   

PCT를  완주하려면 노련한 하이커들처럼  하루에 30Km를 쉼 없이 걷는다 해도 143일이 소요되며  쉬는 날과 준비 과정을 포함하면 거의 200일 가까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의 시간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4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협찬 받아 PCT 에 도전하는 하커가 출국하였다는 블로그를 보았다.    

아마 최초는 아닐 것이다.

당시에 이미 PCT를 걸었던 한 사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많은 트레일이 있다.

PCT와 함께 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인 Appal achian Trail 어느 해는 일 년에 단 한명의 완주자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험로,대륙 분수령 트레일(CD T, Continental DivideTrail)그리고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를 출발 안데스 산맥을 따라 마추픽추까지 이어지는 잉카 트레일.     

알프스 산맥이 지나는 8개 국가가 합의하여 만든, 슬로베니아의 트리 에스테에서 시작해 모나코의 지중해에 이르는 5.000Km의 꿈결 같을 산길  비아 알피나 트레일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장장 17,000Km의 랜스 캐나다 트레일.  

예수의 12 제자  한 명인 야고보가 걸었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800 km)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바이칼 다음으로 큰 '푸른 진주 호수'를 지나는 몽골의 흡수골 트레.  

그리고 우리나라의 지리산 길, 제주도길.   

그러나 펜션.호스텔,카페가 즐비하여 편히 잠잘 곳이 있고 쉴 곳이 있어 보름치의 식량과 물을 짊어지고 가지  않아도 되며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는 길들은  많은 유명세를 타 이미 그 신비한 기가 다 빠져버린  관광지가 연상된다.

올레길,둘레길, 산티아고 역시...     

미국의 3대 트래일

트래커가 직업이 아니라면 이 멋진 길을 다 걸을 수는 없다.

이 중  나는 가장 이끌리며 체력이나 여건 등 현실적 가능성이 높은 PCT잉카 트레일 그리고 알프스의 비아 알파나 트십년내에 기회를 만들어 꼭 걸어보리라 생각하고 오래부터 나의 버킷 리스트에 넣어두었다 .

아마 그때쯤엔 내 인생에서도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중요한 일은  꿈을 꾸고 실행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 일 것이다.

PCT 의 경우 매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도전하지만  완주하사람은 일 년 에 100여 명 정도, 생애 60년 동안이면 6,000 명.

생애 36억 분의 6,000,설레이지 아니 한가!!   

                                                                          

                           

작가의 이전글 동해안 해안길을 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