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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톰 Nov 23. 2017

                 나의   애송시

한잔의 술을 마시고....

난 시를 모르며 쓰거나 탐독하지도 않는다.


딱 한번 어설픈 글줄이 눈먼 자의 손에 들어가 시로 둔갑되고 학보와 교지에 실린 적이 있다.

이에 공대생들의 경사라 하여 푼돈의 원고료로 시작해 재앙에 가까운 술값을 뒤집어쓴 일이 유일무이한 작시다.


시인들은 다들 왜 그렇게 멋있어 보이던지...

어느 날 인사동 화랑에서  '시인 인물전'을 보고, 불현듯 시가 그리워져, 여기저기 좋다는 시를 오려 엉성한 시집 한 권을 만들고, 딱 100편의 시를 외우리라 마음먹었으니 시와의 첫 번째 맞선이었을게다.


마침내 시어들이 입가에 어른거리며 수시로 남발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시심 적은 자가 옮겨 쓴 시라 금방 가슴에서 머리로 옮겨져 식어버리니 시인 놀이도 시큰둥해져 버렸다.


그래도 100편의 시중 '목마와 숙녀, 바닷가 우체국' 외 몇 편의 시는 오롯이 가슴에 남아 사랑스러운 나의 애송시로 자부하게 되었으니....


김수영이 신문 기사 만도 못한 센치멘탈 리즘으로

폄하하기도 하고, 음악을 타고 흐르는 박인희의 처연한 낭송 시로 알려져 통속적으로 여길 수도 있겠으나 '목마와 숙녀'는 문장의 유려한 흐름 속에 감성과 허무가 엉어리져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등의 한줄 만으로도 괜히 서러워진다.


게다가 '근원을 알수없는 박인환의 슬픔과 외로움'이 더해져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기우는 세월은 또 얼마나 허망 하던지....


'바닷가 우체국' 은 마치 나의 이야기 처럼 여겨지며, 오지않는 편지를 기다리던 날이나

편지 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지던 일들,

한여자보다 한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 하였던 날들.  

이 모두가 훌쩍 먼바다를 건너고

'파도소리를 잡아 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천천히 늙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라는 세월이 파노라마 되면 아득하고 나른해진다.


처음 바닷가 우체국을 포스팅 했을때, 두개의 좋아요와 한개의 댓글이 달려 안도현 시인께 적잖이 미안했는데 댓글에 씌였으데

'바다가 우체국은 어디에 있나요?'하니

진담인지 유머인지 황망하여

'내 맘속에 있으니 님은 갈수 없습니다' 로 답 할 수 밖에.


박인환,김수영,전혜린,김관식 등 동시대의 문인들이 들락거리던 명동 대포집 '은성'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에 허무 외로움 쓸쓸함 낭만을 담아 오롯이 둘러 앉았더니, 하나같이 돌연사, 사고사, 자살등으로 이풍진 세상에 손을 흔드니 시인과 쓸쓸했던 낭만은 다 어디로 숨어 버렸단 말인가.


수 많은 시인들이 스쳐갔지만, 유독 그들의 삶을 추억하는 것은 전장의 페허 속에서도 정녕 멋스러웠고 암울했던 시간들조차 시어가 되어 문학 사조의 한축이 되었음이라.


또한 페허와 허무가 염세로만 치닫지 아니하고 애뜻한 서정 또한 많이 남겼으니,

천재 요절 비운 이런 꼬리표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 서다가/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쉽게 헤어져 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다행히 사람은 가도 시는 남고, 목마에 동승하여 떠난 박인환은 기억하지 못해도 '카페베네' 창가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시를 읽는 소녀가 있어 시인은 여전히 거기 있음이요.


비록 나의  손과 가슴은 시 한줄 옮겨 쓰지 못하나 이 밤도 파지를 구겨가며 하나하나의 시어를 건져 우리의 가슴을 데워주는 이땅의 시인과 딜레탕트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오늘은 개구리도 개골 개골 시 읆는 날이라 하니

눈 녹은 봄길따라 바닷가 우체국에 다녀 와야겠다.


<사진/박 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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