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쌓은 브랜딩이 무너지는 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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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하루, 토스로 시끌벅적했다. 토스가 회원 데이터베이스를 건당 69,000원씩 받고 보험설계사 및 대리점에 판매한 사실이 한경닷컴의 언론보도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보도가 각 뉴스 포탈 사이트 메인에 걸리자 뉴스 댓글창과 여러 커뮤니티에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간 착실하게 쌓아올렸던 브랜딩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보도는 삽시간에 여러 커뮤니티에 전파되었다.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고, 볼멘소리로 가득했다. 토스를 탈퇴하겠다, 2% 이자율이 DB판매에서 나왔냐, 징벌적 손해배상 추징을 해야 한다, 한국이라서 아무 일 없이 또 넘어가겠지 등등 여러 반응이 나타났다.
토스의 대응은 빨랐다. 토스 공식 블로그[링크]를 통해 입장표명을 했다. 결론은 "회원에게 제3자 정보제공 동의를 받고 한 일이라 문제 없다"였다. 너희들이 동의를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러할 것이다. 토스의 PO들과 내부 관계자들은 이번 일들을 진행하면서 법률 검토를 했을 것이고, 이슈 없다는 판명 하에 회원DB 판매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법적 이슈 문제와 고객 정서상 발생 가능한 이슈는 전혀 다른 문제다. 토스는 뭣이 중헌지를 모르는 것이다.
설사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해도 또한 개인정보를 거래하는 일이 관행이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고객이 그 사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에 있다. 해킹 등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로 한때 사회가 들끓었는데, 유출보다 한 발 나아가서 이제는 "내 개인정보를 돈받고 판대."라는 사실을 고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 정보가 돈받고 팔리는 줄 몰랐던 고객들은 토스에 신뢰를 계속 보낼 수 있을까?
토스는 그간 '고객 가치에 대한 집착'을 핵심가치로 여겼다. 간편 송금과 사용자 친화적인 서비스 구조,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허들을 제거한 서비스 제공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 결과로 1,700만 사용자를 확보한 한국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토스는 유려한 기획과 기능 개발, 일관성있는 가치 제공을 목적으로 50여가지가 넘는 유효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간편송금, 자산관리, 소비내역 리포트, 차 보험료 조회, 대출한도 조회, 매출장부관리, 급여명세서 보내기, 비상금빌리기, 토스페이, 병원비 돌려받기, 신용점수 확인, 신용카드 추천, 국내외 주식 거래, 내 차 시세, 토스 주민센터, 토스 프라임, 정부지원금 조회, ATM현금찾기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만큼 토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다양하고 많다.
또한 수많은 서비스의 목적은 단 하나로 귀결된다. 고객을 토스 내에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라는 '핵심가치 제공'이다. 그것을 위해 트래픽과 Carrying Capacity 등 다양한 데이터 분석으로 고객 유치와 잔존율(Retention) 확보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토스가 놓친 부분이 있다. 토스처럼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오른 기업에는 기획과 브랜딩보다 리스크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기업 리스크는 보통 '기업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5%이하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리스크가 한번 발생하면 기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전사적 리스크 관리(ERM, Enterprise Risk Management)가 필요하다. 우리는 삼양식품이 '우지파동'을 겪으면서 어떻게 시장점유율을 농심에게 내주게 되었는지 기억하고 있다. 아무리 인체에 무해하다는 판단이 뒤따라도 한번 터진 리스크로 인해 발생한 고객의 부정적 인식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 다시 기획을 공부하는 중이다. 여러 개념과 용어, 그리고 그것들이 현업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등을 찾아서 읽고 정리를 해왔다. 누구도 명쾌하게 알려주지 않고 파편화된 정보들을 주섬주섬 하나씩 주워 읽고 소화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획을 왜(Why)하는 걸까?
기획은 상품/제품/서비스 혹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세상에 선보이기에 앞서서 그것이 최상의 효과를 발휘하고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하기 위한 토대/기반을 닦는 일이다. 잘 기획된 제품과 서비스는 고객의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성장가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잘 조직된 회사일수록
회사 사정에 알맞은 전략기획으로 회사의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세밀하게 구상된 사업기획으로 사업성이 유효한지 평가하고 프로덕트의 적확한 마켓핏(Market-fit)을 찾고 비즈니스모델을 구상하며,
크레이티브한 서비스기획으로 프로덕트를 구체화하고 실현 가능한 기능들의 집합체로 만들어내며,
운영기획으로 제작된 프로덕트가 마켓의 흐름에 맞게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조정할 줄 안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각 단계별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마켓은 하나의 생물체이자 조그만한 실수에도 금세 본인의 프로덕트가 사라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 정글이기 때문이다.
� 맺음글
기획은 어렵다. 운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고객의 마음을 읽는 일이다. 고객의 마음은 객관적 사실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또한 외부 요인에 의해 쉽게 옮겨가고(유동성), 고정관념에 따라 한번 인식된 정서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고정성) 한마디로 고객은 '고정 불변의 어떤 것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획과 운영이 어려운 이유다.
앞서도 말했지만 최근 다시 기획을 공부하고 있다.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또 다른 미래를 그려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간 에세이를 쓰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특정 서비스의 사용성과 왜 이렇게 기획했는지,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등을 기록해나갈 예정이다. 한편으로 이번 일을 보면서 토스 서비스를 기획하고 런칭했을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련의 반응과 신뢰도 추락을 그들은 예상했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역시 '잘 만드는 것'도 어렵고 중요하지만, 만들어진 것을 '잘 운영하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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