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맛(1)
인문360 (2017년 수상작)
크리스마스 시즌이 지나가면서 여기저기서 받은 케이크들로 한동안 빵 속에 묻혀 지냈다.
몸에 좋다는 유기농 밀로 시트를 만들어 동물성 생크림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케이크,
각종 유명 캐릭터로 만든 케이크,
어릴 적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아이스크림 케이크 등등.....
다양한 케이크들이 많아진 요즘이지만,
언제나 크리스마스 즈음이 다가오면 나는 버터크림 케이크가 떠오른다.
나는 ‘케이크’의 존재를 모르고 자랐다.
글을 깨치면서 동화책 속에 나오는 케이크를 보면
그런 예쁘고 커다란 빵은 외국에서나 살아야 볼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우리 집이 유독 가난하기도 했지만, 동네 자체도 부유한 동네는 아니어선지
지금은 여기저기 너무나 흔한 빵집조차 없었다.
어쩌다 엄마 아빠를 따라 서울에 있는 외갓댁에 가는 길에
외갓집 근처에 있는 제과점에 들러 옥수수 알갱이가 콕콕 박힌 옥수수 빵을 사주시곤 했는데
그 옥수수 알을 떼어먹으면서도 내가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조차 못해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리 동네에 빵집이 생겼다.
‘파란 풍차’라는 간판을 달고 옆 골목에 생긴 제과점.
학교를 오가는 길에 매일 빵집 앞을 지날 때면 걸음이 느려졌다.
유리창에 코를 붙이고 예쁜 빵들을 구경하는 어린아이를 빵집 아저씨는 한 번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나는 백 원, 이 백 원씩 모아서 사백 원이 생기면 소보루 빵을 하나 사먹으러 그 곳을 드나들었고,
아저씨가 계산을 하는 동안 계산대 아래의 유리 진열장에 케이크들을 한 참 구경했다.
지금 생각하니 제과점 아저씨는 단지 잔 돈을 받아들고 빵을 내어주셨을 뿐인데 참 느리게 계산을 해주셨다. 마음껏 구경하고 아쉬운 한 숨을 쉬며 손에 든 소보루를 꼭 움켜쥐고 그곳을 나서곤 했다.
그러 던 어느 날, 크리스마스보다 두어 달 이른 내 생일에 아빠는 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오셨다.
태어나 처음 직접 보는 케이크라니! 부드러운 크림이라니!
연분홍색 꽃잎이 도로로 말려있는 장식품도 먹어도 되는거라니!
그 꽃이 바스라지는게 아까워 잎사귀부터 떼어
오도독 씹어서 긴 시간 녹여먹었다.
달콤한 가루약을 먹는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불행히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탓에 느끼한 크림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크림을 걷어내고 속통만 먹는 나를 보며
엄마는 촌스럽다 탓하시면서도 못내 마음이 아파하셨다.
먹다보면 입에 맞을 거라며 조금씩 빵에 크림을 묻혀 내 입에 넣어주셨는데
나는 콧등을 잔뜩 찌푸리며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케이크를 조금씩 받아먹었다.
왈칵 올라왔던 묵직한 느낌의 크림은 이십 오년이 지난 지금도
먹기도 전에 무언가 거부감이 느껴져
크림은 대부분 걷어내고 먹는 버릇이 남은 걸 보면
엄마의 방법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림을 쓰윽 밀어내고 먹었던 그 케이크가 지금도 겨울이면 늘 생각이 난다.
듬성듬성 묻은 크림, 퍽퍽하고 거친 빵인데도 그게 어찌나 맛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