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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년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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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 Oct 02. 2021

황도를 보면 목이 멘다.

나의 할머니께

  

“복상이 먹고 싶구나......”

할머니는 복숭아를 꼭 복상이라고 부르셨다. 그게 사투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1988년 겨울, 할머니는 원인모를 극심한 신경통으로 머리와 팔이 아프다시며 몸져누우셨다. 

“어머니,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제대로 끼니도 못 넘기시는 할머니를 보다 못해 아빠가 물으셨는데, 할머니 입에서 나온 복숭아 얘기에 아빤 선뜻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셨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형편이 여의치 않았는데, 우리가 살던 동네가 다 고만고만해서 정확히 우리집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던 건지 기준을 잡기가 힘들다. 생일이나 어린이 날,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 짜장면이나 통닭을 먹을 수 있던 정도라면 가늠할 수 있을까? 때문에, 한 겨울에 복숭아는 아빠에게는 편찮으신 노모만큼이나 걱정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낡은 잠바를 주섬주섬 입고 나간 아빠는 한참 만에 손에 달랑달랑 조그만 검정 봉지를 가지고 오셨다. 봉지 속에서 나온 것은 ‘황도’라고 커다랗게 씌여 있는 통조림이었다. 

난생 처음 본 통조림을 뜯는 광경을 신기한 마음으로 구경했다. 뚜껑을 따자, 달콤한 향기와 함께 보송한 털을 홀랑 벗어재낀 매끄러운 광택의 노오란 복숭아 속살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꿀꺽꿀꺽 넘어가는 침을 삼키며, 엄마가 숟가락으로 잘라서 할머니 입에 넣어드리는 걸 구경했다. 할머니는 머리맡 물컵에 넣어둔 틀니를 다시 끼워 넣으시고는 그 복숭아를 정말 맛있게 드시고 국물까지 쭈욱 들이키셨다. 옆에서 조금이라도 남은 걸 먹을 수 있을까 기다리던 나는 몹시 실망했다. 평소 같았으면 할머니가 내 몫을 남겨주셨을 텐데, 할머니는 옆에 앉은 내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아픈 걸까 생각하며 적잖이 실망한 나는 다시 누우시는 할머니를 보고 방을 나왔었다. 

며칠 동안 집에는 황도 통조림이 떨어지질 않았고 8살 철부지였던 나는 결국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엄마가 잠시 외출하신 어느 날 오후였다. 집에는 방에서 주무시는 할머니와 나 둘 뿐이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냉장고 문을 열자 반쯤 먹은 황도 통조림이 비닐에 감겨 있었다. 숟가락으로 과즙을 조금만 먹자...... 하던 것이 복숭아를 아주 조금만 잘라 먹자...... 그러다가 시간이 흐른 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텅 빈 통조림만 내 손에 있었다. 겁에 질린 나는 통조림을 쓰레기통 바닥으로 꾹 눌러 숨겨버렸지만 집에 돌아온 엄마는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회초리를 드셨다. 아팠는지 아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 종아리를 치던 엄마가 같이 울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어린 손녀가 철썩철썩 맞는 소리에 아픈 몸을 일으켜 허둥지둥 할머니가 뛰쳐나오시고, 퇴근하며 집에 들어서던 아빠는 할머니를 방으로 모신 뒤, 담배를 하나 들고 베란다로 나가셨다. ‘왜 나만 못 먹게 하느냐!’며 악다구니를 쓰다가 종내에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로 마무리 지었던 그 해. 그 해가 넘어갈 즈음에 수두에 걸려 누워있는 내게 엄마는 꿀맛 같던 황도를 가져다 숟가락으로 잘라주셨다. 

나이가 들어 가끔씩 허기진 내 유년의 기억을 다시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2002년 쨍한 여름, 평소 존경하던 글쟁이 어르신께서 내게 황도와 백도를 선물해 주셨다. 그 어린 시절 내가 흠씬 혼이 난 후에 할머니도 더 이상 황도를 찾지 않으셨다. “할머니 이제 황도 싫어?” 라고 물으면 “이빨이 나빠서 씹기가 힘들여.”라는 대답만 하셨을 뿐. 

평소 복숭아를 먹어 댈 땐 아무 생각이 없다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선물 받은 황도를 보자마자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억에 황도를 씻어서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 할머니께선 노환으로 기력이 많이 쇠하셨을 때인데도 나를 알아보시고는 “아가, 왔냐?”하고 개미 목소리만 하게 말을 건네셨다. 더 이상 ‘아가’가 아닌데 나는 아마 평생 할머니에게 ‘아가’겠지. 정작 아가처럼 누워만 계시는 할머니가 평소 과일 드실 때 하시듯이, 황도를 반으로 쪼개어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내서 한 숟가락이 채워지면 입안에 넣어드렸다. 

“달다, 아가!” 

틀니마저 빼두시고는 잇몸으로 오물오물 움직여 꿀떡 삼키시던 할머니. 

그렇게나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진작 생각해 내었을 것을. 첫 월급타서 촌스런 내복 따위 말고, 황도나 한 상자 사다 갈아드릴 것을. 차오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가며 남은 복숭아를 부지런히 갈아서 드렸다.      

2005년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던 추운 겨울을 지나기가 무섭게 난 맨손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당장 먹고 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더블린에서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할머니의 꿈을 꾸었다. 곱게 연보랏빛 한복을 차려입으신 할머니가 찾아오셔서 할머니랑 어릴 때 즐겨가던 부평 깡시장에 갔다. 살아생전 좋아하시던 국수마차에 앉아 국수를 먹여드리고, 그 좋아하시던 황도도 사다드렸다. 꿈에서 할머닌 황도를 이빨로 꾹 베어 무셨다. 달달한 꿀물이 턱을 타고 흘러 저고리까지 흘러내렸다. 나는 손수건을 접어 할머니의 젖은 턱을 닦아 드렸다. 그렇게 할머니 꿈을 꾼 다음 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어제 웬일로 할머니가 꿈에 나오더라구......”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다. 

“어머나! 네 할머니 너한테 찾아가셔서 제삿밥 먹고 오셨는갑다.”

그랬다. 마침 첫 제삿날이 코앞이었다. 할머니의 제삿날을 타지에서 그냥 지나칠까봐 직접 찾아오셨던 할머니. 항상 날 지켜보고 계시는구나하는 생각에 힘든 유학 생활도 열심히 버티자 더 다짐하고 힘을 냈었다. 

아플 때 통조림으로 대신 먹었던 황도, 이제는 통조림이 아니라 싱싱한 진짜 황도를 한 상자도 너끈히 살 수 있는데 그 한 상자를 사도 선뜻 먹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노란 황도를 보면 자꾸 할머니와 통조림 그리고 철없던 내 모습이 반추되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복숭아 철에 마트에 가면 자꾸 달달한 복숭아 향기가 코를 찌른다. 더불어 할머니의 모습도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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