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소통을 생각하며
소통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플라톤 처럼 나는 '소통' 이라는 것에 대한 하나의 '상(이데아)'를 설정하고 그것에 상응하지 못하는 소통은 모두 덜 된 소통, 불완전한 소통, 가치 없는 소통으로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소통의 통로를 넓힐 때인가? 깊이 있는 소통을 연습할 때인가? 나에게 지금은 하나의 답을 설정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날 때이다. 이분법적 질문보단 지속적으로 소통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를 묻는 것이 유익한 듯하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SNS의 가벼움도 필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소통이란 무엇인가.
소통의 사전적 정의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통하여 서로 오해가 없음’이란 뜻이라고 한다.
막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뜻이 통하여 오해가 없는 소통은 말 이전에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표현의 정확성에 대해 생각하고 남의 상황과 정황에 대해 생각하는 것. 그리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 이 소통의 준비 단계 아닐까. 당연한 부분이지만 이게 쉽지 만은 않다.
유심히 보았다. 회사 상사들은 자신들의 설명이 끝난 뒤 주로 '이해했어?' 라고 묻는다. '이해 했어?'는 타자의 이해력을 묻는 질문이다.
그냥 자신이 어떻게 표현하건 알아서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고, 이해를 못하면 센스가 없거나 무능한 것처럼 으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이해 됐어?' 라고 묻는 분이 계시다. 자신의 표현력을 묻는 질문이다. 개인적으로 난 후자일 때 좀 더 마음으로 듣게 되는 것 같다.
'이해 좀 해' 라고 '배타'하기 전, '이해 할 수 있게 말했니?' '너의 언어로 잘 이해가 되었니' 하며 자기를 점검하고, '이타적' 으로 말하는 것.
이해가 되는 '표현'과 '때'를 잘 선택, 분별 하는 것이 소통의 기본 조건 아닐까.
소통은 결국 자신을 생각하는 것, 즉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상대를 생각하여 정황과 때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 아닐까.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상대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상대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아직 여전히 미숙하고 어렵다. 소통을 시도하는 한 많은 실패를 할 것이다. '다시 소통이란 무엇인가' 로 돌아 올 수도 있고, '이해 좀 해' 가 튀어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처음 소통의 본질을 자문했다. 어찌 보면 걸음마다. 이 시점에선 지속가능한 소통의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한 듯 하다. 어디에서건 소통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작은 이해의 돌 하나 더 얹을 수 있으니, 소통을 생각하며 소통 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 한 줌을 오늘도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