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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 Sep 27. 2019

상품이 아니다, 생명이다.

2014년 2월 자본주의와 등급화에 대한 단상

상품이 아니다, 생명이다.


한 결혼정보회사의 인간등급표를 보고 피식 웃었다. 꽤나 합리적인 그들은, 대상자가 어느 대학교, 무슨 전공으로 졸업했는지, 현재 직업군 은 어느 계열인지, 연예계 종사자라면 몇 등급 정도의 스타급인지, 부모님의 총 자산은 얼마나 되는지, 부모님의 직업은 무엇인지, 전문직 사업자라면 사업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의사, 약사, 변호사 등) 등의 요소를 통해 1등급에서 15등급으로 사람을 등급화 하여 등급에 맞는 남여를 정확하게 매칭해준다는 정보를 흘리고 다녔다. 


몇 억이니 몇 천이니 연봉을 기재하며 천박하게 쓸 필요 없다. 직업군에 따른 연봉은 이미 데이터베이스에 있을 테니깐. S대 법대 출신 판사는 다른 항목을 열겨하지 않아도 1등급이었고, 일반 중소기업 입사자는 다른 항목을 넣을 수 없이 15등급이었다. 




나도 이런 등급화의 달콤함을 경험한 적이 있다.

회사 생활이 길어지며 점점 나를 돕는 서브 역할의 사원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때였나 보다. 

해야 할 일의 범위나 역할을 단순규정하고 일의 성과를 등급화 하는 것이 창조성을 방해하는 것임을 굳게 믿어왔던 내가, 직원들을 규정화하고 등급화를 하기 시작한 것. 


상부에서는 성과를 계량화해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즉 주요성과지표 수치로 성과책정 및 보고를 하라고 닥달을 하고, 나는 동료들(혹은 팀원들)이 수치화하지 않는 것을 모두 수치화해 보고해야 하니 빠르고 단순하게 등급화 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래서 직장 동료들을 단순 계량화해서 현실화했던 기억이 있다.


출처 : 빅이슈코리아

회사 입장에서 인간을 혹은 인간의 노동을 계량화하고 등급화 하는 것이 당연히 효율적이다. 

매번 생명의 특질에 맞게 작성된 보고서, 즉 정형화 되지 않은 보고서는 다시 누군가의 노동에 의해 회사 포맷에 맞게 구성되는 추가 작업을 거쳐야 하지만, 

하나의 관리 프로세스를 구축해놓는다면...? 거기에 투입요소들을 넣기 만하면 '퉁'하고 자동으로 결과들이 나오게 하면 일이 얼마나 쉽고 간편해지는가!


등급화 과정에선 사람도, 재화도, 시간도, 성과도 모두 숫자다. 

이 과정에서 '생명성'은 필연적으로 결여되고, 단순화는 효율성과 동의어가 된다. 

인적자원관리 라는 경영학 용어가 말해주듯, 이 시스템에서 '인간'은 '자원'이 될 뿐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나 '마케팅'처럼 투자 대비 리턴비용(ROI) 또는 원가 대비 마진율(PM)로 철저히 관리된다.




자신들이 합리적이라고 믿는 결혼정보회사의 인간등급표에서 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상품처럼 등급화 된다.  이미 태어나며 출산지가 붙고 그 출산지에 따라 성장가능성(최대교육값)이 정해지고, 일정부분의 '가치'가 평가 되는 일종의 '상품'이 되는 것이다. 미국산, 중국산, 한국산, 태국산, 에디오피아산 처럼, 부동산재벌집안, 강남태생, 법관자녀, 교수아들, 투자회사임원의 딸, 중소기업 출신, 지방 출신(서울과 이원화된 이 말이 참 싫지만) 등으로 가치의 등급이 결정된다. 


운명을 믿는 자유시장주의자라면 출생의 운명에 가장 마음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출생의 운명을 위해 빌어야 할까?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판단 기준이다.

인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만 살았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시스템을 창조해 왔고 계속 진보해가고 있다. 


자유 시장경제 시스템내 여러 분야에서 등급화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선 분명히, 등급화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경쟁보단 협력이 요구되고, 차이에 집중하기보단 공통분모에 집중해야 할 때, 등급화된 평가보단 예술적 풀이가 필요한 지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런 것들은 대부분 물질이 아닌 생명에 대한 것들이다. 


사람은 '생물'이다. 

인간은 수직의 선 한줄 그어 몇 개의 항목으로 등급화하기 어려운 생명의 생물이고, 생물은 수직보단 넓은 수평적 스펙트럼을 가진 경우가 많다. 


상품의 가치가 아니라, 생명의 가치로 분별해야할 때는 아는 것. 이 시대의 중요한 시대정신 중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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