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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 Sep 27. 2019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정말 심령이 가난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을까


가을바람의 서늘함도 뜨거운 태양빛 앞에서 맥을 못추던 시월 어느날 정오 쯤 되었던것 같다. 출근길 집을 나오는데 한 할머니가 폐지 한 무더기를 리어카에 싣고 혼신의 힘을 다해 오르막을 오르고 계셨다. 바로 옆엔 교회가 보였고, 목사로 보이는 한 사람이 교회에서 나와 할머니를 지나쳐 총총 걸어가고 있을 찰나였다. 할머니의 허리는 거의 30도 이상 굽어 잇었고 자칫 손 하나를 놓치면 리어카가 내리막길로 떨어질 것 같았다. 


'도와 드려야 하나'

'그러다 회사에 늦으면 어쩌지'


찰나의 고민을 털어내고 할머니의 리어카를 따라가 조용히 밀었다. 




"아이고 젊은이 고맙네, 고마워, 고마우이" 


할머니는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는 단지 무거운 페지를 이고 가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린 것 뿐이었다. 할머니는 이런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넙죽넙죽 인사하기 바쁘셨다. 


문득 세상에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으로 몸부림 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여러 기업의 정리해고 사태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 세월호로 자녀를 잃은 부모와 가족들.  


그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외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고막을 진동시키는 적막함’이다. 사람들은 이들의 절규를 철저히 외면한다. 


성서는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심령이든 재물이든 가난한 자에게 신의 마음이 있다고 한다.


예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 하셨으며, 가난한 자(다른 복음서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한다그 반면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가난은 결단코 복된 현상이 아니다. 가난은 인간을 참혹하게 만든다. 더 큰 노동을 요하고 작은 보상만을 허락한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시대의 교회는 이 시스템을 철저히 습득해 제것으로 했다. 심령이 가난하려는 시스템보다는 안락하고 편안한 대형 교회 시스템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무엇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옮은가. 심령이 가난할 수 있는 삶의 구조를 만들어야 할까. 여느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시대의 흐름대로 더 가지려고 노력해야할까. 


생각할수록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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