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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 Sep 27. 2019

<봄에게로 가자>_꽁지여행 춘천편

2015년 매거진 <빅이슈> 연재글


춘삼월.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 숨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고 싶은가. 춘천 가는 기차를 타자. 홀로 떠나는 질문 여행, 인생의 봄날을 준비하는 시간, 하루면 족하다.



타자, 카누





기차의 낭만을 즐길 시간은 의외로 짧았다. 용산역에서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싣고 1시간 13분 쯤 지나니 “잠시 후 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합니다”라는 멘트가 들렸다. 생각보다 멀지 않구나, 강원도라는 자연은. 산도 산이지만 강원도하면 역시 물.




특히 의암호가 물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들른 곳이 송암스포츠센터. “물에도 길이 있다”는 말은 카누 타기 기본 훈련을 하는 교관에게 들었다. 물길을 거닐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답은 카누에 있었다. 커피가 아닌 나무배, 카누(canoe)다.




물레길의 시발점인 의암호에는 카누 코스가 세 곳 있다. 의암댐 코스, 붕어섬 코스, 중도 코스가 그것. 초보에겐 의암댐 코스가 제격이다.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는 3킬로미터의 물길. 코스완주가 목적이 아니라면 카누로 ‘쉼’을 누려보자.




카누에 앉아 절구를 치듯 노를 앞으로 꽂아 당긴다. 카누가 바로 반응하며 앞으로 쭉 밀려나간다. 강어귀로 간다. 물안개를 보며 바람을 맞는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배경음으로 깔린다. 무념무상, 자연과 보폭을 맞추고 물의 느린 호흡을 배우는 시간이다.




허리를 젖혀 하늘은 본다. 하늘을 이렇게 평안하게 바라본 게 얼마만인가. 돼지는 목과 몸이 일체형인지라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지만 인간은 언제든 하늘을 보며 삶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은가. 멈추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그 특권을 우리가 잘 누리지 못하고 사는 건 아닌지.



감상하자, 벽화마을





‘라면 먹고 갈래요?’와 ‘라면인건가’의 차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썸’의 언어와 ‘독처’의 언어, 사랑의 언어와 고독의 언어라고나 할까. 올해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게 될까? “올해는 연애 좀 해야지?” 지긋지긋한 이 질문을 떠올리면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이번 봄은 다를꺼라 다짐한다.




효자동 벽화마을을 수놓은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봄 냄새가 난다. 사랑향기다. 연인의 사랑만이 아니라 가족 간의 애증, 마을의 삶과 애환이 느껴진다. 메인 콘셉트는 사람이다. 산토리니의 건축물처럼 정교한 예술과는 다른, 투박하지만 정겨운 예술이 골목 구석구석에 서려있다.




초입의 ‘천사의 날개’에서부터 ‘빨간색 딸기를 입에 물고 있는 호랑이’와 ‘원두막의 수박소년’까지. 그림에 귀를 기울이면 그림 속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골목 한 바퀴 돌면 어느새 슬며시 미소를 머금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웃음꽃 사람꽃 피어나는 낭만골목. 혹자는 아름다움이란 ‘어울림’이라 말했다. 골목이든, 사치품이든, 사람과의 만남이든, 사람과 대상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것. ‘아름답다’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 왔을까?




사람됨 전체를 보기보다 외모와 스펙 위주로 사람을 지나치게 재단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 단순한 기준으로 만날 사람을 정했던 것이 아닐까. 골목 끝에 서니 이 질문이 스쳤다. ‘나와 아름답게 어울리는 사람은 누굴까.’



먹고, 보자, 산토리니





춘천으로 ‘식신로드’를 몇 번 갔던 사람, 훈련소를 춘천 102보충대로 갔던 사람, “국가가 뭔데 우리 오빠를 2년간 무상임대하냐”며 팬클럽을 동원해 춘천을 찾았던 사람은 슬슬 춘천 닭갈비가 지겨울 것이다. 사실 닭갈비는 어디에나 있다.




춘천에만 있는 건 따로 있다. 구봉산 전망대에 위치한 산토리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산토리니에선 안심 스테이크와 이탈리아식 피자가 일품이다. 2층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면 춘천의 아담한 조망을 음미하며 와인 한잔 곁들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춘천의 봄은 밖에서 봐야 제 맛. 테라스 끝에 서면 춘천의 상징인 소양2교와 봉의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확 트인 풍광도 감동이지만 노을 지는 풍경이 단연 압권이다.




‘영화 [국화꽃향기]를 보고도 울지 않았다’며 자신을 감정이 메마른 사람 중 ‘갑’으로 소개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쩌냐고? 그런 사람도 석양이 지는 봉의산과 소양강이 함께 어우러진 그림을 보면 결국 마음을 내주고 말 것이다.




그 옆엔 지중해 느낌이 나는 종탑도 있다. 흰색과 파란색의 단순함과 문형의 독특함이 조화를 이룬 그 오묘한 예술은 그리스 키클라딕 건축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함과 단순함이 연결될 수 있다니.




며칠간 복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흔한 ‘멍 때리기’ 한번 못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까. 순간, ‘우리네 복잡한 인생이 조금 더 단순해 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하자, 소양강 처녀와 야경보며





황혼이 진 소양강에 바람이 분다. 강물 위로 불빛이 떠오른다. 소양강 처녀는 그리움에 사무친다. 그 애달픈 그리움으로 강 주변을 지킨 것이 벌써 몇 년째일까. 소양강 처녀공원에서 보는 춘천의 야경은 아담하다. 이해하기 쉽다.




사람의 마음은 아담한 듯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복잡하고 어렵다. 춘천 하늘의 달 하나, 호수 위에 달 하나 그리고 내 가슴에 뜬 달 하나. 닿으려도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사람이 떠오른 밤.




여행의 끝엔 역시 그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며 살고 있을까.’ 정리해야 할 감정이 있다면 춘천으로 감성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①송암레포츠타운(남춘천역, 역에서 버스로 이동) → ②효자동 벽화마을(남춘천역에서 도보로 이동) → ③산토리니(춘천역, 택시 이용) → ④소양강처녀와 춘천 야경(춘천역에서 도보 또는 버스)


사진 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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