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의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쓰는 향을 예민하게 선택하는 시대이다. 향의 시대는 취향의 시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관능이 중요해지는 시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 기능이 중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효율, 비용, 쓰임이 중요하다. 1위가 시장의 50퍼센트, 2위가 30퍼센트, 3위가 15퍼센트를 나눠먹는 시대가 대량생산의 시대이다. 그만큼 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난한 향, 대중적인 맛들을 선택해 전형적인 상품들이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그 시대에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품이냐가 중요했다. 안전과 신뢰가 중요한 요소일때는 익숙하고 무난한 것을 선택하게 되어있다. 이런 시대에는 개인의 기호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시대가 지나갔다. 갑자기 사람마다 다른 술 1병을 따로 선택해 먹고, 식당에서 앞접시를 따로 내고, 1인별로 메뉴를 구성하면서 같이 먹는 팟에 숟가락을 넣는 사람들을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가치관의 변화가 생겨났다. 준거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중요해서 같은 것을 소비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대에서 자신만의 가치, 취향을 드러내는 일이 훨씬 덜 위험하고, 그런 사람이 더 멋진 사람이라는 인식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소속감을 강조하는 대기업에서조차 선발과정에서만큼은 개성과 취향이 있는 사람을 뽑으려 한다. 모난 돌이 정맞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신뢰와 안전이 중요한 시대(기능의 시대, 대량생산의 시대)에서는 낯선 향은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시대로 넘어가면서 선진문화권에서 온 제품에서 나는 향을 소비자들이 이국적이며 프리미엄한 향으로 기대치를 갖기 시작했다. 이제 새로운 향은 위험하고 낯선 것만은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 한국인들은 2천만명 정도가 1년이면 해외를 다녀왔다. 해외 곳곳을 다니며 오리지널한 음식, 상품 등등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맛과 향에서 추구하는 범위가 매우 넓어지기 시작했다. 양고기가 일상화되면 고수향이나 큐민향에도 익숙해지듯이 일반 대중들조차 다양한 향에 익숙해지고 그러다보니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매스브랜드조차도 향을 다양하게 펼치는 계기가 되었다.
여태까지 생산효율을 높여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소품종 대량생산을 고집하던 제조기업들도 소비자들이 바뀜에 따라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생산과 관련된 모든 기업시스템을 바꿔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먹거리가 제일 먼저 바뀌었고 패션도 마찬가지다. 예전처럼 똑같은 옷을 만들어 팔면 망한다. 히트텍 같은 사례는 이제 예외적인 사례이다.
뷰티와 공간, 생활 전반에 걸친 향의 영역은 사실 변화가 제일 늦은 편에 속한다.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공간향보다는 내 몸에 바르는 향이 훨씬 변화가 빠르다. 나와 관련이 높기 때문이다. 향의 변주가 다양해지는 지금도 공간향은 아직 대량생산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같은 공간향이라도 디퓨저의 향은 변화가 적은 편이고 향초는 향이 다채롭다. 디퓨저가 공공의 영역이라면 향초는 개인적 영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공동공간에 향을 얹는 일은 위험부담이 많다. 하지만 샴푸나 섬유유연제들의 향은 강해지고 점점 개인화되고 있다. 얼굴에 뿌리거나 몸에 뿌리는 향수의 향에 대한 관여도는 훨씬 높다.
그렇다면 우리 소비자들은 어떤 향을 선호할까. 서구에서는 향에 대해 크리에이티브, 아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그래서 조향이라고 한다)이라고 사고하는 것이다. 향수도 그런 향들이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소비자들은 자연의 어떤 향을 소비한다라고 생각한다. 사향, 소나무향, 피톤치드향, 꽃향기 등 자연의 특정 원물과 관련된 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에서 온 향을 럭셔리, 고급, 이국적이라고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 향을 편안하게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향은 로즈계열의 꽃향, 시트러스 계열, 티트리나 허브 종류, 대나무잎, 우드향 등이다. 짚시워터와 같은 이름을 들으면 한국인들은 이게 무슨 향일까 고민하게 된다. 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조말론, 딥띠크, 이솝 같은 브랜드에서도 내추럴한 향쪽이 한국에서는 좀더 인기를 얻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칵테일 만드는 이들이 세계대회에 나가면 왜 한국에는 한국의 칵테일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는데 향과 관련된 시장도 주로 향을 유럽에서 배우고 온다. 배운대로 조향을 하면 서구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리엔탈을 한국에서 한국인이 구현하게 된다. 막상 한국인들은 그런 향을 중국향 혹은 동남아시아 향이라고 느낀다. 향을 서구에서 배우고 오기 때문에 한국적인 향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향은 식문화, 주거환경,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비에 젖은 땅, 강, 바다, 안개낀 날의 향, 호수의 향기, 흙의 향. 서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들, 특히 미국의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는 이들이 좋아하는 향은 한국인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흙의 향을 맡지 않고 자라기에 흙과 흙에서 자라는 야채들의 향을 무섭다고 느낀다. 낯설기 때문이다. 이렇듯 후각은 경험지식의 영역이다.
한가지 더. 온라인 시대가 되면 오프라인이 다 망할 것처럼 얘기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도 책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의 감각에는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각각의 쾌락, 즐거움과 맞물리는 영역이 존재한다.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에도 미각과 후각이 함께 존재한다. 코를 막고 음식을 먹으면 맛을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인간은 오감을 갖고 있고 이를 통해 종합적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디지털 세상은 아직까지는 주로 시각에 의존하고 있고, 거기에 청각 정도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촉각과 후각은 아직 디지털로는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감각기능이 마비된 채 경험되는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