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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Apr 01. 2019

[임신일기 #13] 11주차 0일째 - 1차 기형아검사

모든 것이 걱정인 엄마와 팔다리를 훠이훠이 신난 귤이

임신부 몸과 마음의 변화는 정말 경이롭다. 이제 겨우 11주 정도인데 벌써 옷이 조금씩 맞지 않고, 음식에 대한 반응도 평소와 많이 달라졌다. 가슴도 배도 허리도 이전의 내 모습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을 하든 아이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된다는 것.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세상의 중심은 나였고, 결혼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당연히 나의 행복, 안위가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변했다.


"이거 먹어도 될까?", "이거 발라도 될까?", "이 샴푸, 이 비누 써도 괜찮을까?", "이렇게 오래 앉아 있어도 될까?", "이런 자세 괜찮을까?"


평소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던 모든 것을 검색해 태아에게 해롭지 않은지를 확인하고 난 후에야 마음이 편해졌다. '걱정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을 괜히 걱정하지 않는다.'라며 살았다. 그러던 내가 분명히 변했다. 쓰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점검했다. 필요한 물품을 찾아보고, 구매 목록을 짜느라 시간이 모자랐다. 태아 보험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니 조금 더 임신 기간과 출산에 대해 공부할 마음이 생겼다. 임신부를 위한 책을 사서 읽고, 무한 인터넷 검색으로 한 달을 보냈다. 많은 자료를 찾아 읽다 보니, 내용이 꽤 비슷했다. 게다가 명확한 근거 없이 주장만 있는 책도 많아서 구매하는 것이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15년 넘게 찾지 않아 잠겨있던 집 근처 도서관 ID를 되살렸다. 마음이 편해지는 명상 책, 출산한 다른 선배 엄마들 이야기, 호흡법, 출산 방식, 신생아 관련 책 등 임신부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마구잡이로 검색했다. 도서관에 도움이 될만한 책이 참 많다. 도서관 이용기는 나중에 따로 글을 정리해 적어봐야겠다.




2019.01.17


평소보다 집중이 잘 되지 않고 계속 눕고만 싶은 하루하루가 지나 벌써 11주 차. 임신 기간 40주 중에 1/4이 지났다. 우리 아이는 잘 자라고 있을까? 피곤해서 누워도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고, 그렇다고 뭔가 일을 집중해서 하기에는 기력이 모자란다. 특히 검진 예약 전날은 더욱 그렇다. 이번 검진은 1차 기형아 검사 예정이었다. 혹시나 내가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아서 우리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내가 먹는 것을 잘 챙겨 먹지 않아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괜한 걱정이 돼서 잠을 설쳤다.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다. 언제나처럼 혈압과 몸무게를 쟀다. 한 달 전보다 오히려 몸무게가 빠졌다. 임신을 했는데 살이 빠지다니. 우리 아이가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고 있는 걸까? 또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상담 시간에 기형아 검사 방식을 선택했다. 산모인 내 혈액을 채취해서 태아가 기형아가 될 확률이 있는지 검사하게 되는데 어떤 검사 방식으로 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신경관 결손, 다운증후군, 에드워드 증후군 확률이 높은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정확도가 85%~90%인 검사를 선택했다. 이외에 아이의 뇌 발달 상태(그러니까 정신 지체 등의 장애를 안고 태어날 확률이 있는지 확인)와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보고 싶으면 추가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검사는 선택하지 않았다. 검사 방법을 1차 기형아 검사 전에 선택하는 이유는, 산모의 피를 두 번 체취해 검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차 때 검사 결과와 2차 때 검사 결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고 기형아 위험군을 판단한다고 한다.


드디어 진료실 입장. 내가 불안해해서 그런지 남편도 썩 마음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농담도 하고 음악도 찾아 듣고 했는데 역시나 진료실에 들어서니 괜히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밝게 맞이해 주셨다.


"어서 오세요. 어디 특별히 불편한 곳 있으신가요?"

"입덧은 어떠세요?"

"변비가 생겼나요?"


다행히 입덧도 심하지 않고, 간혹 일을 보지 못하고 거르는 날이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변비 때문에 고생스럽지 않다. 약간 요도 쪽이 찌릿찌릿하고 간지러운 느낌이 난다고 말씀드리자, 자궁이 커지면서 주변 장기들이 영향을 받아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셨다. 참을 수 없이 간지럽거나, 소변을 눌 때 고통스럽냐는 질문을 들으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아니오. 그렇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정상이라고 한다. 혹시 그런 증상이 더 오래가거나, 고통스러울 정도면 꼭 산부인과에 다시 오라고 했다. 남편이 약간 놀란 눈치다. 이런 불편함을 이야기한 적이 없으니, 놀랄 만도 하다.


초음파실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번 초음파 검사할 때부터 아기의 머리 엉덩 길이, 머리 크기, 몸통 둘레, 양수의 양, 자궁저 길이를 빠짐없이 말씀해주셨는데 1차 기형아 검사 때는 목 뒷덜미에 있는 목 투명대 검사, 콧대 상태를 추가로 확인했다. 아기의 목 투명대가 3mm 이하가 정상인데 우리 아이는 1mm 정도라고 했다. 휴.. 정상이구나. 머리 엉덩 길이는 4.7cm이고 콧대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셨다. 콧대가 없고 목 투명대 두께가 두꺼우면 다운증후군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다행히 귤이는 모두 정상 소견을 받았다.


11주 차 0일째 귤이 초음파 - 엄마 눈엔 콧대가 오똑


발 길이는 0.8cm. 아이고.. 아직 1cm도 안 되는 발 크기라니.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에 발이라도 뿌옇게나마 발가락이 동글동글 붙어 있는 게 보인다. 걱정했던 내 마음을 알았을까? 이 녀석이 초음파기를 배에 댄 순간부터 가만히 있지를 않고 훠이훠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놀고 있다. 기분 좋을 때 팔다리를 마구잡이로 흔들며 춤을 추곤 하는데, 마치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기라도 하는 듯 신나게 흔들었다. 혹시나 내가 생활 균형을 맞추지 못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잠깐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물었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선생님의 생각은 어떤지, 어떤 출산 방법을 추천하실는지 궁금했다.


"출산은 닥쳐보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요. 막상 진통이 시작되면 르봐이예고 라마즈고 뭐고 소리 지르고 난리 나는 경우도 있고요. 무통을 거부하고 진통을 참다가 기력이 없어 마지막에 힘을 못 주는 경우도 있고요. 산모마다 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관장을 하지 않으면 출산 시 아이와 대변이 뒤섞여서 감염 위험도 있고요. 저는 회음부 절개는 하지 않아요. 그 외에는 상황에 따라 결정을.. 분만 방법에 대해 미리 공부해 두시는 것은 정말 좋고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 안심이 되었다.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원하던 답을 한방에 얻은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특정 분만 방법에 대해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대신 본인의 경험을 몇 가지 알려주셨다. 그리고 본인이 분만 시 꼭 지키는 원칙인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는다.' 한 가지만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정말 명쾌하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었다. 회음부 절개를 하면 회복이 매우 더디다는 이야기에 꼭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내가 분만할 때 내 몸상태가 어떨지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골반이 너무너무 작아서 도저히 자연분만을 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고통을 지독히도 잘 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고통도 못 참고 길길이 날뛰는 사람이 있다. 분만 시의 고통을 내가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도저히 가늠이 안된다. 진통이 시작되자마자 무통주사 놔달라고 오열을 했다던 친구가 떠오른다. 그 친구는 세상에 두 부류의 여자가 있다고 말한다. 무통을 맞은 여자와 맞지 못한 여자. 아무것도 미리 준비할 수 없다. 그저 운동하고, 맛있는 것 먹고,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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