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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화 Jan 08. 2024

MRKH 증후군 환자를 만나다.


#1. 모든 것은 스펙트럼이다. 나와 타인을 구분짓는 경계 조차도. 


#2. B는 굳이 분류하자면 '여성'이었다. 2차 성징도 나타났다. 그렇게 미인인 편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매력도 있었다.  그러나 생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10년 전 방문한 큰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시행했다. MRI도 한참을 찍어야 했다. B의 어머니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검사를 이렇게나 복잡하게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받은 진단은 Mayer-Rokitansky-Küster-Hauser 증후군, 줄여서 MRKH 증후군이었다. 


평생을 임신을 할 수 없단다. 그렇다. 그녀는 질과 자궁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히 내분비 기관인 난소는 있어서 배란과 호르몬 분비는 정상적으로 이루어 지지만, 아기를 담는 공간인 자궁이 존재하지 않아 생리를 하지 않았고, 성관계도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처방은 질에 몰드를 작은 사이즈부터 끼워서 질을 늘려나가는 방법 뿐, 그녀는 방치되다시피 했다. 집이 멀리 충남 지방인 이유 때문에 일종의  희귀병인 MRKH 증후군 관리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그렇게 지내던 중, 내 유투브를 보았단다. 2년 전에 CBS 씨리얼과 함께 콜라보해서 찍었던 방송인데,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에서 상담 신청하신 분이 MRKH 증후군이었고 나는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때만 해도 자궁이식은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성공 사례가 없었지만 최근 서울삼성병원 다학제 팀에서 성공 해서 발표한 이래로 MRKH 증후군 환자의 임신 가능성에 새로운 희망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2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올라온 그 모녀는 여전히 이런 질환에 신경을 써주는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기가 어렵다며 힘들어 했다. 게다가 B는 경한 지능 장애도 있어 그녀와 이야기 할 때는 마치 아주 순수한 어린 아이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이미 MRKH 증후군을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지만, 그래도 골반 초음파를 한동안 보지 못했으며 외향적 진찰로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의심되는 소견도 보여 반드시 골반초음파를 봐야 할 것 같아서 항문과 배를 통해 접근을 시도했다. 다모증에 음핵이 커져 있었던 것이 뭔가 고안드로겐혈증 등 여러 호르몬 불균형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골반에 11cm가 넘는 덩이가 있는게 아닌가. 남아있던 난소에서 혹이 생긴  걸로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관련된 혈액 검사를 진행했다. 모양은 양성처럼 보였지만 크기가 너무 컸다. 결국 수술을 해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두 모녀는 매우 놀란 표정이었고, 엄마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나이가 찬 딸이 남자를 만나 사랑도 하고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는 이 평범한 바램을 갖기가 누군가에게는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 것임을. 


#3. 그래서 평안(平安)에 이르렀나. 


  혈액검사를 시행하고 우선 모녀를 돌려보냈다.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아 줄 수 있음을 주지시켰다. 또한 삼성병원의 긍정적인 치료 성과가 있으므로 MRKH 증후군 환우들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희망을 가져보자고 독려했다. 막혀 있는 질은 몰드를 쓰는 방법은 너무 속도가 느려서 수술도 고려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진료실을 나서는 어머니의 어깨가 축 쳐져있었다. 그녀의 어깨에 올라간 보이지 않는 짐을 덜어주고 싶었건만. 뭔가 골반 덩이를 발견해 낸 내 자신이 괜시리 죄책감이 드는 것이 서글퍼졌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런지. B가 사는 근처에도 산부인과는 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MRKH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주치의를 만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과연 우리 나라에는 의사가 적은 걸까? 내가 원하는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 뿐이지 않나. 순수하게 빛나던 B의 눈빛만이 모두와는 대조적으로 평안해 보였다.


https://youtu.be/tcnBrsWg_N4?si=3NXtEGWo6aYOgk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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