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洞人_ 6. 영화 ‘마션’_ 리들리 스콧, 2015 作
영화 ‘마션’은 화성 탐사 도중 갑작스런 사고로 유리된 마크 와트니의 기적적인 지구 귀환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2011년 전자책으로 처음 공개 된 앤디 위어의 SF 소설을 리들리 스콧이 메가폰을 잡아 영화로 완성시켰죠.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아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2시간 반의 러닝타임을 몰입하게 하는 구심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유머’입니다. 그리고 그 코드를 가장 잘 살린 신의 한수는 ‘음악’이었습니다. 아바의 ‘Waterloo’를 BGM으로 화성의 황무지 사막을 가로지를 땐 경탄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리들리 스콧 감독이 ‘글래디에이터’의 보리수 밭과 같은 미학적인 미장센 대신 이번에는 스토리의 풍미를 살리는 음악에 제대로 힘을 준 것 같습니다.
11월 영화동인이 영화 ‘마션’을 선택한 이유 역시 우주 생존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유머’ 때문입니다. 이런 류(類)의 영화는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리라 (生卽死 死卽生)’라는 절박함과 비장함이 기저에 있는데, 영화 ‘마션’은 그 반대이거든요. 생의 의지라는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지만, 시종일관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스타트업 1년 차, 이제 막 죽음의 협곡에 접어들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프레임을 얻었습니다.
멘탈 갑(甲)의 명쾌한 조언, ‘우주에서는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자원의 바닥은 보이는데,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여유가 급격하게 고갈되기 시작했습니다. 초조해질수록 시야가 좁아져서 기회와 사람을 모두 잃는 경우도 잦아지고요. 외적인 자원의 고갈 속도보다 저의 에너지 소진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에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스타트업의 낙오는 리더의 약해진 정신력에서 시작 되더군요. 제가 불안에 떨기 시작할 때쯤부터 어떠한 실행도, 결과물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2시간 20분의 화성여행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조바심이 생각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포박했다는 것을요.
‘우주에선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작정 시작해보는 거지.’
영화 ‘마션’에서 찾은 명약은 바로 저 대사였습니다.
잘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실행하는 것과 어차피 내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라는 비움에서 실행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요. 마치 남자친구에 대한 기대감이 낮으면 실망도 덜하다는 것과 ‘내려놓음’에서는 맥을 같이 한다고나 할까요? 목표에 대한 실패보다 좌절감이 훨씬 더 치명적인 현재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은 역으로 힘을 빼는 것이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과정이 결국 생존의 과정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아남아야지.
문제를 한 가지 해결하고,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가능성은 커진다.”
스타트업은 문제의 발견에서 태생하여, 살기 위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문제 해결이 생존의 숙명이 되는 것이죠. 이 프레임으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니 산재 해 있는 문제의 꺼리들이 먹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쯤이면 중증일지도...)
쓰다 보니 굉장히 쿨하게 끄적이고 있지만, 저와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물과 땅, 대기가 있는 지구에 안착할 때까지 죽을 위기를 여러 번 겪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은 여전히 두렵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보는 프레임이 달라지니, 공포에 포박되었던 때와는 다르게 시야가 넓어진 기분입니다.
이것이 영화 ‘마션’의 재미와 힘인 것 같아요.
만약에 아마겟돈처럼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생존이었다면 흔한 블랙버스터 영화에 그쳤을 겁니다.
제가 받아들인 두 가지의 메시지는 저와 같은 경영자,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기부여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절찬리 상영 중이에요. 저는 4DX로 보았습니다. 화성에 공기가 없어서 바람이 그렇게 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의자에서 바람도 나오고 냄새도 나더군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만 팔천 원으로 생존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화성여행을 할 수 있다면, 이것처럼 가성비 좋은 여행패키지도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