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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Aug 30. 2022

가족이 우울과 절망의 원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우울해하거나 삶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우울해하거나 삶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싶진 않았다.


긴 장마와 지나친 폭염이 동시에 찾아온 대구에서의 7월에, 나는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3달 만에 왔던 본가에서 엄마와 밤새 긴 이야기를 했다. 몇 번이나 심장이 저릿할 정도의 대화가 오가고 난 후에 깨달았다. 아, 역시 아니었구나. 내 희망일 뿐이었구나.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가치관만을 가져온 사람은 더더욱 고립될 뿐, 타인의 사고를 받아들일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것이 정작 가족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가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가족은 따뜻하고 화목한 그림이었다. 갓 지은 밥은 항상 부엌에 있었고, 가족 중 한 명이 위로가 필요한 날은 모두 모여 앉아 그날의 일을 이야기하며 서로 토닥여주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슬프거나 힘든 날은 서로를 의지하고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 때로는 불편하고 싸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마음속 깊이 서로를 신뢰하는 그런 모습. 그게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가족의 모습은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진 못하더라도 서로를 정서적으로 해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조금 거리가 있더라도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의 범주에 가족을 넣어두는, 딱 그 정도의 친밀감이라고 생각해왔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가장 무난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긴 밤동안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세계에 나도 모르는 큰 벽이 대체 무엇인지 십수 년 간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는데 그 답이 여기에 있었다. 나만 존재하는 나의 세상 속에 나는 언제나 피투성이였다. 땅에 발을 붙이지도 못하고, 시원하게 날아가지도 못하고 어딘가에 고립된 채 끊임없이 부유하는 내 모습은 길 잃은 어린 새 한 마리 같았다. 툭 건드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은 모습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형체라도 가질 수 있었던 건 나의 과거를 지켜준 소중한 사람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집을 떠나 나의 공간에서 지내게 되면서 형체가 조금은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 힘으로 걸을 수도, 날 수도 있었고 안전한 공간을 찾아 비바람을 피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정말 가볍고도 단순한 착각이었고, 나의 꿈속 상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쉽게 무너졌다. 고작 하루치의 대화로.


스스로를 어떠한 충격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몇 겹이나 나를 감쌌다. 온몸엔 갑옷을 두르고, 얼굴엔 웃음을, 머리엔 이성적인 사고를 갖추고 전장으로 나아갔다. 여러 대화거리와 유머도 빼놓지 않았다. 시뮬레이션도 많이 돌렸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장면으로 똘똘 뭉친 시뮬레이션을 돌릴 때는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전장에서 내가 두른 갑옷과 웃음과 사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낙엽 같았다. 떨어지기만 떨어질 뿐 어떠한 공격도 막아주지 못했다.


오히려 약간 시원한 느낌도 들었다. 가끔씩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존감과, 이 세상 것이 아닌 우울함과, 마음속 깊이 맺혀있던 고립감의 근원지가 여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하나의 해결도 하지 못한 채 무력감만 가득 채워왔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원인을 알았으니까.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났는데 나는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에 안개가 낀 듯한 느낌이 강해졌다.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상이 힘들어졌다.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궁금하지 않았고, 즐거운 일이 없어졌다. 노래를 부르고 싶지도, 그림을 그리고 싶지도, 영화를 보고 싶지도 않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정말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더 문제가 뭐였냐면, 이 증상을 개선하고 싶지가 않아졌다는 것이다. 어떤 지옥에서도 삶을 헤쳐왔고 행복을 찾아온 나였는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우울한 줄도 몰랐고, 절망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왜냐면 나는 평소와 똑같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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