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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빛빛빛 May 14. 2018

미래의 언어로 다시 말하기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는 캐나다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평론가로 우리나라에는 미국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이다. 그러나 장르를 넘나드는 탁월한 문학적 역량으로 앳우드는 캐나다 문학을 대표하는 주자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해왔다. 급진적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여성적 글쓰기를 해온 그는 『시녀이야기The Handmais's Tale』로 큰 주목을 받았다.


1985년 출간된 이 소설이 쓰이게 된 배경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페미니스트 논쟁이다. 여성운동이 1980년대에 반페미니즘적인 물결로 인해 보수주의로 회귀하며 퇴조의 조짐을 보이자 그에 대한 경고를 하고자 이 작품을 쓴 것이다. 포르노 산업 탄압, 낙태 금지 등이 여성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종교계의 주장이 오히려 여성을 억압하는 역기능을 하며, 성적 불평등의 심화마저 초래하는 매우 퇴행적인 발상임을 작가는 우려하였다. 또한, 에이즈, 환경재해, 핵폐기물 등 현대의 문제들이 적절히 대응되지 못할 때, 길리어드와 같이 극단적으로 통제되고 노예화된 억압체제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자 한 것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소설에서 가상의 시공간으로 서기 2195년 누나비트의 한 대학에서 개최된 국제 역사학대회의 한 장면을 설정한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20~21세기 아르히브’의 소장이자 저명한 역사학자 제임스 파익소토 교수가 논문을 발표한다. 이 역사가는 학회에 참석한 고매한 학자들 앞에서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을 구성하는 역사적 가공물 ‘시녀이야기’ 사료에 대한 역사적 주해를 가한다.


앳우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드, 『핸드메이즈 테일』. 시즌1을 아직  다 보지 못해서, 나중에 이 글 뒤에 이어 쓸 예정.


그는 사료 해제 작업을 하던 중 억압적인 가상의 국가 ‘길리어드Gilead'가 붕괴된 한참 후에 그 시대를 묘사한 시녀이야기 오디오 테이프를 발견한다. 길리어드 시대의 사료, 특히 여성에 대한 사료는 파편화되어 접근이 어려울 뿐 아니라 이용하기도 쉽지 않다고 알려져 있던 터라 그는 이 희귀한 자료 오디오 테이프에 대해 매우 세밀한 분석을 가한다. 이 역사가는 그 사료에 묘사된 사건들, 사람들, 그리고 행위들, 사료의 진위여부를 입증하려고 시도한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출산을 맡는 소수의 가임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으로 나뉜다. 그들은 모두 독립적인 정체성을 잃었으며 오로지 선택받은 계층의 남자만이 여자를 할당받을 수 있고 저조한 출산율을 높이는 의무를 갖고 있다. 이 소설 속에는 사령관, 그 아내, 수호자, 천사들, 시녀들, 하녀들, 아주머니 등으로 구성된 계급사회, 계급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는 성 지식을 쌓을 권리를 차단하는 억압 사회가 잘 나타나 있다.


이 곳에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오프레드는 어느 한순간부터 남편과 딸아이와 헤어져 시녀라는 이름으로 불임가정에 배속되어 자궁을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점은 강압적인 사회를 살았던 이 여성에 대한 사료 분석 작업을 한 이후에 역사학자 제임스 파익소토가 내린 다음의 결론이다.


그 나름대로 상당히 웅변적인 우리의 문서도...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 속에서 에우리디케를 불러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녀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돌아서서 그녀를 쳐다보면, 그녀는 잠깐 모습을 보이지만 어느새 우리의 손아귀를 빠져나갑니다. 모든 역사가들이 알고 있듯이, 과거는 위대한 암흑이요, 메아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속에서 목소리들이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들은 온 세상의 어둠에 흡수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우리 시대의 선명한 빛 속에서는 그 목소리를 정확히 해독할 수 없는 것입니다

-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이야기』 중에서  


파편화된 사료, 해독되지 않는 목소리, 그러나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말... 이 소설의 중요한축은 시녀, 오프레드의 ‘언어’이다. 이는 앞 장에서 르 귄이 언급한 “과학 소설은 은유”라는 정의와 맞닿아 있다. 존재하지 않는 가상 세계에서 허구의 사건, 허구의 캐릭터들은 비밀스러운 말 걸기로 '지금 그리고 여기 Here and Now', 현재의 세계에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내 속에 말이 고여 드는 느낌이 온다.

-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이야기』 중에서  


원작에서 시녀의 말하기는 자기 존재의 결핍 의식을 채우기 위한 강박적인 욕구이다. 여성의 말하기를 금지하는 '그들'에게 짓밟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욕망을 가진 주체가 되기 위해서 그녀는 언어를 붙잡는다. 언어적 주체가 되는 것이 자기 삶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소설의 제목 『시녀이야기』는 상당히 도발적이다. 가부장적 권력체제의 하위주체인 시녀에겐 말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말은 오직 권력을 가진 지배계층, 특히 남자에게만 있다. 말을 빼앗는 것은 한 존재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빼앗는 행위이며 존재를 지우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녀의 말하기는 자신의 주체성을 탈환하기 위한 시도이며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 볼 수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여성으로서, 여성을 위하여, 여성의 이름을 복원하기 위한 절박한 이야기이다. 탈출하려다가 발목에 족쇄에 묶이고 손가락이 잘리며 끝내는 상류계급 남자들의 창부로 전락하는 모이라를 대신하여, 14세에 집단 강단 당하고 미쳐버린 재닌을 대신하여, 비밀조직에 가입하여 저항운동을 하다가 신분이 드러나자 자살해버린 오브글렌을 대신하여 그녀는 이야기한다. 그녀는 목을 매달아 자살한 사령관의 첫 번째 시녀가 마룻바닥에 써놓은 금지된 메시지를 마음속에 새겨두며 수시로 생각한다. “그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Nolite te bastardes carbrundorum”는 뜻의 이 글귀는 주인공의 의식 속을 끊임없이 헤집고 다니는 저항의식이며, 이 소설의 저변을 흐르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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