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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빛빛빛 May 14. 2018

사랑의 목적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SF 작품 속 미래의 다양한 섹스 방식을 엿보고 있으며, 그 참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다양한 종(인간, 사이보그, 양성인 등)의 모습도 살펴보는 중이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성의 방식과 성을 나누는 대상이 달라진 미래 사회에서 과연 사랑의 방식은, 혹은 사랑의 목적은 어떻게 다를까 하는 것. 혹은 수단과 대상이 확장되었을 뿐 사랑의 목적은 동일한 것인가?


SF 장르에서 사랑이란 요소는 중심 소재로 사용되기 보다는 흔히 작품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첨가적 요소로 쓰이곤 했다. 이유는 사랑이란 것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 주인공들은 때로는 사랑을 위해 시간을 거스르기도 하고 기계 종족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며 과학 소설의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조르주 바타이유에 따르면 사랑, 특히 개인과 개인의 사랑은 “성의 여러 가지 형태들에 따라 또는 문명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 그것은 역사적인 순서나 양상을 따르지 않고 역사적 사건에 종속되지도 않는다. 그는 “사랑이란 어떤 특수한 조건, 인간의 역사적 발전의 한 단계에 종속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1]


바타이유의 말처럼 개인적 사랑이 비역사성을 가진다면 사랑의 정의는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어 둘 사이의 공간 안에서 새롭게 개념화될 것이다. 단지, 그것이 모두 타자他者와 소통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원초적인 사실만 제외하고 말이다.

 

영화 『쉐이프 오브 워터 The Shape of Water』. 미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일하는 엘라이자와 연구를 위해 이송된 괴생명체와의 사랑을 그린다.


SF 소설에서는 연인들의 소통 방식을 위한 기발한 최첨단 기기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서로의 욕망을 확인하거나 증진시키는데 활용하거나 실제적으로 성관계를 하는데 이용한다. 데이비드 제럴드David Gerrold의 『3막극 러브스토리Love Story in Three Acts』에서는 부부의 성관계를 실시간으로 진단하고 처방해주는 모니터 안내 시스템이 등장하고, 코드웨이너 스미스Cordwainer Smith의 작품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각인된 큐브를 휴대할 수 있다는 설정이 나온다.     


그러나 너무 정밀한 이 기기들은 때론 오히려 둘의 사랑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3막극 러브스토리』에서 데이비드 제럴드는 커플이 모니터 시스템 전원이 꺼져 있는지도 모르고 기기에 의존해 흥분을 느끼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묘사했다. 브루스 스털링의 『천국에서』에 등장하는 한 커플의 사랑을 본다면 이러한 기기들의 사용이 무색해질 것이다.


어떤 형태이든 남녀간의 교제는 환상으로 가득찬 것이고, 그 환상은 클수록 더 좋은 법이다.

- 브루스 스털링, 『천국에서』중에서  


브루스 스털링의 『천국에서』에는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남녀가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명제를 사랑스럽게 보여준다. 배관공 펠릭스는 모슬렘 여성인 카디바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서로의 언어를 몰라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실시간으로 외국어를 통역해주는 전화기로 소통한다. 전화기가 없으면 전혀 서로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들의 사랑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산책을 하고 쇼핑을 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러던 중 경찰이 불법체류자인 카디바를 쫓기 시작하면서 둘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다. 이제는 전화기도 사용할 수 없다. 그들은 여행을 하며 서로의 교감을 높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을 찾아낸다. 이 예쁜 소설은 펠릭스가 카디바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너는 진주야”라는 시인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끝이 난다. 그녀가 그것을 전화기없이 알아들었을까? 고단한 여행길에서 그들의 교감은 과연 얼마큼 성장했을까.



참고

[1] 조르주 바타이유 『에로티즘의 역사』, 조한경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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