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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혜 May 12. 2016

무표정한 도시, 마테라

이탈리아 남동부 여행 (3) 마테라

바리랑 알베로벨로를 검색하다 보니 자꾸만 연관검색어로 뜨는 도시가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도시였지만 함께 가는 코스구나 싶어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게 된 도시가 마테라다. 마침 내가 머무르던 비앤비 주인 엘리스가 나에게 링크 하나를 보냈다.


"눈 덮인 마테라 모습이야."



알베로벨로처럼 사진 한 장이 나를 마테라로 끌진 않았다. 엘리스가 뷰티풀 하다며 왔는데 사실 내 눈엔 그렇게 뷰티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안 보고 오기는 또 아쉬워서 일정을 조금 무리해 들리기로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타이틀 때문인지, 검색하면 나오는 전망대에서 찍은 듯한 마테라 전경 사진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바리에서 마테라로 가려면 사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바리 중앙역이 아닌 옆에 따로 마련된 역에서 열차를 탄다. 2층으로 올라가서 열차를 타는데 느낌이 꼭 청룡열차 타러 가는 기분이다. 여느 때와 같이 표를 찍고 들어가는 데도 괜히 설렌다.


마테라는 바리나 알베로벨로와는 다르게 바실리카타주다. 마테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사씨(Sassi). 사씨는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 주거지로 구석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나중에는 빈민촌이 되었다가 사씨의 가치가 인정돼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해 보호하고 있다.


마테라를 검색하면 뜨는 사진은 모두 사씨 전경 사진이다. 그만큼 유명하다. 모두 그걸 보러 가는 거니깐 가면 찾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전 정보 없이 마테라로 출발했다. 사전 정보를 많이 모으지 않은 건 게으름도 한 몫했다. 


그 대신 목표를 두 개 잡았다. 하나는 전경 내려다보기, 다른 하나는 유명하다는 교회 가기. 교회 앞에서 바라본 전경이 멋있다는 글을 보고 정한 목표다. 


오전 11시쯤 마테라 중앙역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학교가 끝났는지 벌써 집에 간다. 이탈리아 학생들을 부러워하며 걷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블로그에서 보던 사진 속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났다.

베네토 광장에서 바라 본 전경


허름한 듯 또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내뿜던 마테라. 마테라는 한때 빈민촌이었던 곳이라고 한다.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하고 두 번째 목표인 교회를 가려고 보니, 교회가 딱 정 반대편에 있는 거다. 


가로질러 가면 되지 하고 별생각 없이 걸어 내려가는데 내려가는 순간 후회했다. 굽이굽이 골목길이 많았고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이 꽤 가파랐다. 심지어 비까지 한 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목표로 삼았다는 게 뭔지, 딱히 다른 곳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처음부터 그 교회를 가기 위해 마테라에 온 사람처럼 걸었다. 


이런 길이 굽이굽이
종종 평이한 길도 나오고


빈 집은 비둘기들이 점거하고 있다.


교회 벽면 유네스코 마크, 마크가 예뻐서 찍었다. 정작 교회사진은 없다......


아쉽지만 교회는 닫혀있었다. 교회 앞에서 본 전망은 베네토 광장에서 바라본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굽이굽이 난 길을 걸어와서 그런지 길이 눈에 잘 들어왔다. 쉬운 길을 두고 힘든 길로 걸어왔더라. 


한 번 더 슬슬 둘러보다가 나가야지 싶었는데 바로 이 슬슬 둘러본다는 생각은 또 한 번의 실수였다. 걷다 보니 다시 한번 골목으로 들어가게 됐고 걷기를 시작,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는 마테라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해 어디를 가야 나갈 수 있는지 투덜투덜 거리는데 그때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진정한 사씨!



이걸 못 보고 갈 뻔했다. '동굴 주거지라고 하는데 동굴이 없네'했는데 내가 못 찾고 있었던 거다. 진정한 동굴을 보면서 구석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말이 잘 이해됐다. 이래서 대책 없이 오는 것이 위험하긴 하다. 그만큼 어쩌다 마주친 풍경을 바라보는 기쁨은 더 크지만. 


카메라가 내가 보는 풍경을 담아내지 못해 내내 아쉬웠다. 1월인데도 생각보다 춥지 않아 아무도 오지 않는 명당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도 멈췄다. 함께 앉아 있던 친구가 음악을 튼다.

 


무표정한 이 도시에 축복 같은 하얀 눈이 내려
쌓여가는 저 눈만큼 우리의 부와 명성도 쌓여 갈 거야
큰소리로 웃으며 하얀 거릴 달렸지 찬바람을 가르며 같은 노랠 불렀어
그때 그 순간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던 우리



무얼 하고 살아야 할까 무얼 해서 돈을 벌어야 할까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고, 이제 어떤 선택도 쉽지 않겠구나 하던 때였다. 당분간은 떠나지 말자며 이게 마지막 여행이라고 마음먹고 온 이탈리아였는데, 동굴을 보며 위로받을 줄이야. 여러 노래를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이 노래가 위로가 된 건 쌓여가는 눈만큼 부와 명성도 쌓여 갈 거라는 가사 때문인 걸까. 


한국에 돌아와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도 종종 이 노래를 듣는다. 걷고 걷느라 지쳐 힘들다고 투덜대다 음악 하나에 미소 짓던 시간들. (딱히 다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지만) 자꾸 생각나는 도시, 마테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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