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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개 Feb 26. 2018

낡은 열차 안 땅콩봉지

갈레행 열차 안에서


콜롬보발 갈레행 열차 안에서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현장을 뜻합니다.

애정과 공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 신영복, 『담론』




정말 오래된 기차였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천장 쪽에 낡고 까만 팬이 탈탈 돌아가고 있었다.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열기를 식힐 수 있는 방법은 창문을 활짝 여는 것뿐. 기차가 달리니 한껏 열어젖혀진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긴 비행시간을 거쳐 도착한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허둥거리다 변태도 만나고 바가지도 씌었다. 여행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느낌과 더불어 이 번잡한 도시의 부정적인 첫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비집고 탄 열차에서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내게 사람들이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낡은 기차는 몹시 흔들렸다. 배낭이 내 몸에 비해 컸기 때문에, 기차가 움직일 때마다 배낭과 함께 나 역시 엄청나게 흔들렸다. 불안하게 앉아있는 걸 지켜보던 사람들이 내 가방을 번쩍 들어 머리 위 짐칸에 올려주었다. 이후에는 복도 쪽 자리에 걸터앉아 목 빠지게 창가를 보고 있던 나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창가 자리를 나에게 양보해주었다. 


이들은 기차 객실을 오가며 주전부리를 파는 사람에게서 땅콩 한 봉지를 사서 본인들 몫을 아주 조금 제외하고 봉지 통째를 나에게 주었다. 내가 땅콩 몇 개만 집고 봉지를 돌려주려 하자, 극구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그저 낯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호의와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 그 작은 땅콩봉지에 담긴 따뜻한 마음에 어느덧 여행 첫날의 부정적인 인상이 녹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여행이, 이곳에서 만난 스리랑카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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