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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개 Aug 06. 2020

결혼이라는 비극의 공범

영화 <나를 찾아줘> 리뷰

* 해당 글은 영화 <나를 찾아줘>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 영화 <나를 찾아줘>는 불행한 가정에 깃든 저마다의 이유 중에서 눈에 띄게 극단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느 부부에게나 발견될 법한 가장 보편적인 이유를 찾아낸다. 그간 수많은 동화와 영화 속 로맨스가 사랑의 이상적 엔딩으로 '결혼'을 택했다. 그 결과, 사랑의 종착지는 결혼이며, 결혼은 완전무결한 행복이어야 한다는 서사는 자연스레 보편적 관념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은 이혼과 재혼, 비혼 등이 혼재된, ‘완벽한 엔딩’의 존재 여부가 의문스러운 사회다. <나를 찾아줘>는 바로 여기, 로맨스와 현실의 간극에서 시작한다.


 어느 파티에서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를 만나게 된 닉(벤 에플렉)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리고, 열정적인 연애 끝에 부부가 된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누구보다 완벽해 보이는 부부지만 5년간의 결혼생활은 실상 녹록지 않다. 뉴욕 출신의 에이미는 자신과 상의 없이 고향인 미주리로 이사 가자는 닉의 결정을 아무 말 없이 따른다. 투병 중인 닉의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다. 설상가상 실업자가 된 닉과 더불어 에이미 부모님의 재정 문제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이들 부부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맞이한 5주년 결혼기념일, 에이미는 홀연히 사라진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증거와 닉의 불륜 정황은 그를 에이미 실종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몰고 간다.



 영화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닉의 시점에서 에이미의 실종 사건이 전개되는 한편, 에이미의 일기를 통해 닉이 말하지 않은 이들 부부의 이면이 드러난다. 결혼 생활에 지쳐있는 닉의 모습과 두 연인의 뜨거운 연애 초기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점차 두 개의 이야기는 얽히고설키고, 관객들로 하여금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케 만든다. 닉을 의심스럽게 지켜보던 관객들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에이미에 당황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은 에이미가 닉을 ‘조련’하기 위한 일종의 계략이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줘>는 같은 제목의 소설을 영화한 것으로, 스릴러 장르에서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루어 온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다. <나를 찾아줘>는 이야기의 교차 편집을 통해 영화의 긴장감과 리듬감을 절묘하게 자아낸다. <세븐>, <파이트 클럽>, <조디악> 등 그의 전작이 그러했듯이, 세련된 영상 뒤에 묵직한 질문이 놓여있다. 결혼으로 맺어지는 두 사람의 특수한 관계에 대해 왜 사람들은 어떠한 의심 없이 ‘행복’이라는 관용어를 가져다 붙이는 것일까? 왜 우리는 결혼을 갈망하고, 동시에 결혼에 실망할 수밖에 없는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에이미는 설탕이 눈처럼 휘날리는 거리에서 닉과의 달콤하고도 황홀한 미래를 꿈꾸었지만, 그녀가 정작 마주한 것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경제적 문제, 호르몬이 급격하게 안정되며 찾아오는 권태감과 배우자의 외도,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이 되어가는 기분, 완벽해 보이는 서사 속에 사라지고 있는 정체성의 문제였다. 에이미는 결혼 생활이 지속될수록 자신이 사라져 가는 느낌을 받는다. 닉에게만큼은 언제나 특별할 것으로 기대했던 그녀의 존재감은, 시간의 유속을 견디지 못하고 일상의 물결에 닳고 닳는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질수록 더욱 상대방을 통제하려 한다. 자신이 가장 되기 싫었던, 남편을 춤추는 원숭이로 조련하는 여자처럼 말이다.


 관계 속에서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에이미뿐만이 아니다. 닉은 에이미 앞에서 자꾸만 비참해지고, 촌놈이 되었으며, 자신의 아내를 실망시키는 별 볼 일 없는 남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온전한 나 자신이 되도록 지지해주던 그녀는 이제 완벽한 남편이 되도록 자신을 조종한다. 삶을 들뜨게 만들었던 사랑의 자리에는 일상을 지긋하게 만드는 증오가 싹트고 있다. 그리고 그 역시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아내를 재수 없으면 찍히는 과속카메라처럼 대하는 남자가 되고 만다.


 결혼 제도 속에서 이상향에 다다르지 못한 이들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갈등의 답안을 찾으려 한다. 에이미는 생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 어떻게든 문제의 틀 안으로 자신과 남편을 욱여넣으려 애쓴다. 그녀에게는 ‘어메이징 에이미 Amazing Amy’같은 완벽한 서사가 필요하다. 사랑받는 아내, 화목한 가정, 완벽한 부부에 도달하기 위한 그녀의 발버둥은 점차 상대를 통제하려는 시도로 변질된다.


 닉은 부부 관계에서 상실된 정체성을 다른 관계에서 찾으려 한다. 젊은 여학생과의 불륜, 현실을 뒤로한 게임 중독 등 문제를 직면하기보다 어떻게든 다른 돌파구를 찾아 회피하고 도망가고 만다. 그런 그가 이번만큼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도록 에이미는 일련의 사건을 기획한 것일 테다. 결국 영화 말미에 이들 부부가 어느 TV 쇼에서 서로의 관계를 ‘공범’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들은 부부 관계가 빚어낸 비극의 공범인 셈이다.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다고 말한다. 낭만으로 포장된 사랑 이야기는 사랑의 시작에 대해서는 자세한 서사를 들려주지만, 사랑이 어떤 노력으로 지속되는지 그 지난함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나를 찾아줘>는 그 지난함이 생략될 때 찾아오는 비극을 신랄하게 그리고 있다. 수미상관의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엔딩 씬에서 닉은 에이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되뇐다. 당신의 생각이, 기분이 궁금하다고. 에이미의 머릿속을 헤아리는 닉의 질문은 어쩌면 수많은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의 이유로 묻지 못했던 물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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