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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ㅅㅇ Feb 09. 2022

손수 빚으시다

창세기 2: 4~7

마주한 말씀


창세기 2: 4~7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마주한 생각들


하나님의 창조 숨결은 온 우주를 넘어 지구로 향했다. 거대한 질서를 넘어 작은 생명으로 향했다. 그리고 창조의 숨결은 모든 창조물 넘어 인간에게로 향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손수 창조하신 것이다. 그 섬세하고, 세심한 하나님의 창조의 숨결이 인간에게로 향한 것이다. 


창세기 1장에 이어 2장 3절까지의 천지창조 말씀은 거시적인 큰 서사였다면 오늘 마주한 본문은 한 시점일 것이다. 4절에서도 창조될 때라는 표현으로 그 시점을 말하고 있다. 그 시점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사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계신다. 2장 3절까지와는 달리 한 가지 사건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빛을 시작으로 땅과 하늘들, 식물과 동물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관해 세세하게 기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부분의 창조는 연대기적 서사라면, 4~7절 말씀은 인간을 창조하는 그 특정한 시점에 대한 세부적인 서사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창조된 지구, 세상의 상태다. 


최초 지구의 상태는 5~6절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천지 창조를 상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빛이 바로 생기고, 땅이 갈라지고, 비가 쏟아지고, 풀이 돋아나고, 동물들이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잘못되거나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우주를 질서 있게 창조하셨고, 그 질서대로 지금까지 움직이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단순히 사물이 아니다. 생명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계속 생명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셨다. 그 환경은 지구, 은하계, 우주라는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혹시 하나님은 완성된 상태로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상태로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아닐까? 


오늘 마주한 창조의 모습에서 하나님은 판타지 영웅도, 신비한 마법사도 아니다. 우리가 상상하기 쉬운 모습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쉽게 비를 내리실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밭에 수목과 채소를 내실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그것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시고, 그 자연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하신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를 관리하고 돌볼 피조물의 자리를 남겨두신 것은 아닐까? 


최초의 인간, 아담. 아담은 인간, 사람이라는 뜻이다. 땅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된 이 단어는 첫 번째 인간의 이름이 되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특별하게도 인간을 땅의 흙으로 창조하셨다. 심지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고 생령으로 창조하셨다. 1장에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고 기록한다. 2장에서는 인간을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으로 창조하셨다고 기록한다. 둘 다 놀라운 창조 방식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격적이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무엇이라면 그것이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생기, 생령이지 않을까? 


생기는 숨, 호흡, 기운, 영혼의 뜻을 가진 니쉬마트(네솨마 연계형)와 살다, 활발하다, 생명의 하임(하이 복수형)이 결합된 단어다. 직역하면 생명력일 것이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창조의 숨결로 인간이 창조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생령이 되었다. 생령은 숨, 호흡의 존재라는 뜻으로 직역할 수 있다. 호흡은 모든 창조물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이 단어의 용례에서는 인간 창조의 특별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히 하나님이 직접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다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이 점이 무엇보다 다른 차이점이다. 다른 창조물들과는 달리 하나님은 인간 창조에 적극 개입하셨다. 직접 빗으셨고, 직접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리고 생명으로 창조하셨다. 


왜 인간 창조의 시점을 따로 기술했을까? 2장 3절까지로 충분했을 창조를 왜 굳이 한 시점을 따로 구분해서 그 자리에 인간 창조를 넣었을까? 하나님은 어떤 의도로 이렇게 기록하게 하셨을까? 다양한 창조 설화 중에 왜 이 두 가지 모습이 이런 배열로 편집되었을까? 묵상하며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던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창조 숨결의 방향은 점점 거시에서 미시로 향했다는 것이다. 큰 우주를 시작으로 작은 지구, 커다란 지구를 시작으로 작은 생명에게로 말이다. 결국 하나님의 창조 숨결이 닿고 싶었던 피조물은 그 작고 작은 인간이 아니었을까? 요한복음 3:16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세상'은 결국 온 우주이기도 하고, 한 개인인 '나'인 것처럼 말이다. 



마주한 결단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으로 마무리되었다. 창조의 숨결이 결국 머문 곳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령이 되었다. 하나님의 관심은 처음부터 '나'다. 이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창조에는 목적과 계획이 있다. 이제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대로 나답게 그 목적과 계획을 발견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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