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그의 고백을 받아줄 수 없었다. 삼년 반, 짧지 않은 시간을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회사 동료로 만난 두 사람은 취향이 비슷했고,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잘 어울린다는 말도 들었다. 일 년, 이 년 시간이 흐르며 슬슬 사귈 때도 되지 않았냐고 회사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그런 관계는 아니라며 손사래쳤다. 우연치 않게 회사 근처에서 둘이 있는 모습을 본 친구는, 그녀에게 드디어 연애를 시작한 거냐고, 길었던 솔로 인생을 끝내는 거냐고 물었다. 여자는 아니라며, 그런 일 없다고 했지만 친구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정확히는 아닌 걸 알면서도 제발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듯 했다.
여자의 친구가 두 사람을 보았던 그날, 남자는 여자에게 고백했다. 퇴근 후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간단히 차 한 잔을 마신 뒤 헤어지던 길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말하는 거라며, 괜찮다면 정식으로 만나고 싶다고, 남자는 평소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답했다.
죄송합니다.
단호한 여자의 태도에 어찌할 줄 모르는 남자를 두고 여자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먼저 들어가 볼게요, 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그의 성격상 본인이 말했을 것 같진 않았다. 사실 어디서 말이 시작된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소문은 퍼진 뒤였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사람일수록 허무하게 깨진 관계를 믿을 수 없어했다. 잘 사귀던 연인이 원치 않던 계기로 헤어지기라도 한 듯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몇몇은 뭐 그리 잘났냐며 여자를 험담했다. 동기는 이번엔 뭐가 문제냐며, 이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여자에게 물었다.
집에 돌아와 잘 준비를 마친 여자는 침대에 누워 오래도록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일어나 한 쪽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여자는 오늘 들은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정말 무언가 잘못된 건 아닐까.
여자는 다른 일에도 눈치가 빠른 편이었지만 특히 자신을 향한 타인의 감정에 더 민감했다.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다 싶으면 애써 그 사람을 멀리했다. 이번엔 조금 늦었다. 오래 알아온 사람이라 한 번 두 번 사적인 만남이 이어졌고, 신기할 만큼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잘 숨겨왔다. 그동안 주고 받은 대화와 행동을 하나씩 곱씹으며 여자는 자신이 어디서 무얼 놓친 걸까 고민했다.
헤어짐이 무서운 걸까,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진심을 내보이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여자는 스스로도 자신이 왜 사람을 멀리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른다 해서 누군가의 마음을 쉬이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이십 구년이 흘렀다. 지난 이십 구년간 여자 역시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이대로 누구도 만나지 못하면 어쩌지. 이상하게도 그런 걱정 끝엔 그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새벽이 지나고 창문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물들 때쯤 여자는 조용히 되뇌었다.
괜찮아.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이대로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가만히 앉아 자신의 손을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되뇌었다. 그냥, 지금처럼만. 고개를 묻은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새벽 햇볕이 여자를 대신 침대에 길게 누웠다.
nine 구해줘
2012.07.02.2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