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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크 Jan 21. 2022

퇴사 후에도 24시간이 모자라

회사를 다닐 때에는 늘 시간 가는 게 아까웠다. 여기서의 시간은 정확히 '회사를 퇴근한 이후 시간'이다. 첫 회사에 다닐 때에는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하면서도 하루 종일 회사 이외의 시간이 없는 게 아쉬워서 책이라도 한 자 더 읽고 잤고, 이직 후 워라밸을 찾으면서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관심사를 좇느라 바빴다. 30대부터는 운동도 조금씩 시작했는데, 하루 일과 중 운동이 끼면 여유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아무튼 24시간이 모자라 내적 노래를 불러야 할 지경이었다.


그럼 퇴사하면 시간이 남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백수 과로사라는 말이 있듯이 퇴사 이후에도 전혀 심심하지 않은 일과를 보낸다.

첫 퇴사 후 월요일 아침 동네 뒷산에 올랐다.

첫 퇴사의 이유는 대학원 진학이었다. 퇴사 직후 유럽여행을 40여 일 다녀오자 새해가 되었고 나는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공인 영어점수를 얻기 위해 동네 도서관에서 토익 스터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는 스터디, 오후에는 스터디 과제랑 대학원 정보 써칭. 회사 다닐 때 생각했던 것보다 퇴사 후 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늘 나를 짓눌렀는데 스터디를 같이 하던 동생이 한 말이 나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저는 언니들만큼 인생 열심히 사는 사람들 본 적 없어요. 꼭 잘 되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빈말로 건넨 말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원하는 점수를 얻은 뒤에는 내가 일하고 싶은 국제개발협력 업계에서 대기업이라고 불리던 단체에서 주 3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 나는 국제개발협력 관련 유명 단체에서 일하는 각 직무 분야별 직원들이 연사로 참여하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연사들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만약 관심이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경험을 먼저 해봤으면 좋겠다고. 끈기가 없을 뿐이지 시작하는 실행력 하나는 최고인 나는 바로 회사별 채용 공고를 뒤졌고, 내가 하고 싶은 직무를 경험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공고를 발견했고 지원했고 합격했다.


합격 후 첫 출근일에 담당 과장님한테 "왜 저를 뽑으셨어요?"라고 묻자 과장님은 "OO 씨가 이 일에 가장 관심 있어 보였고 잘할 것 같았어요."라고 답했다. 그때는 나보다 영어도 잘하고 경험도 풍부한 젊은 학생들도 많을 텐데 왜 나였을까 의문을 품었는데 몇 년 뒤, 내가 그 과장님의 위치에서 아르바이트를 채용해보니 무슨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비슷한 역량을 가졌다면 결국은 '업에 대한 관심'의 정도가 당락을 결정한다.


 3일은 일하고, 다른 요일에는 대학원 원서를 준비했다. 내가 당시 가고 싶었던 국제대학원은 SOP라고 불리는 영어 자기소개서를 요구했기에 이것도 틈틈이 쓰면서 영어 면접도 대비했다. 여행 다닐  필요한 생존 영어 수준만 구사했기에 대학원 준비가 녹록지 않았다. 같이 면접 스터디를 했던 영어 잘하고 국제개발협력 관련 경험도 많았던 동생은 "언니, 영어 면접 괜찮겠어요?" 하며 걱정 어린 말을 건넬 정도였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솔직히 얄미웠다) 대학원 면접을 보고 합격할 때까지 대략 이런 일상을 유지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지만, 몇 달 동안 지켜본 업계는 석사 졸업자들이 걸맞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매우 적었다.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해서 내가 재취직을 할 수 있을까 불안이 밀려왔고, 이는 곧 대학원 진학을 미루고 재취직을 하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결국 대학원은 입학 포기를 하고 이직을 하게 된다. 이직 과정에서 충분한 일정 확보를 하지 못해 나는 퇴사 후 딱 4일 쉬고 세 번째 회사에 출근하게 되었다. 이틀은 레퍼런스 체크를 해주신 첫 회사 사수와 선배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이틀은 얼레벌레 보내고 나니 순식간에 시간이 흘렀다.




작년 세 번째 퇴사를 하고 제주도에서 보름 살기를 하고 왔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 맛있는 음식도 먹고 좋은 풍경 보며 실컷 놀고 잠도 푹 자다 보니 어느새 다시 서울이었다. 나는 한 달 뒤 전세 만기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정신없이 이사 갈 집과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보다 보니 다시 시간이 훅 흘렀다.


하루하루를 면밀히 들어다 보면 대략 이런 패턴이다. 퇴사 전 끊어놓은 PT가 있는 날은 수업을 받고, 없는 날은 개인 운동을 한다. (지금은 횟수 차감이 다 되어서 개인 운동만 한다.) 주 3~4일은 피아노 학원에 가서 연습을 하고 레슨을 받는다.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읽고 5년 동안 방치했던 브런치에도 장작불을 넣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사 후에는 드디어 집에 책상과 모니터가 생겨서, 개인 포트폴리오 정리도 하고 이력서도 넣는다. (이 이야기는 따로 글을 하나 쓸 예정)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길어져 5년 동안 일했던 회사를 퇴사하면서 어떤 동료들과는 점심 한 번 먹지 못하고 헤어지는 바람에, 또 퇴사 소식을 듣고 궁금해하는 친구들도 있어서 약속이 많았다. (겜친 말에 의하면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바쁜 것 같다며 ㅋㅋ) 퇴사 후 몇 개월이 지나니까 이제 약속이 많은 건 아니지만 이사 간 집 인테리어를 마무리하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려서 매일 가구 조립하고 당근마켓에 필요 없는 물건을 나눔 하거나 파느라 정신없었다. 또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매일 요리도 하고 식재료도 구입하고 청소 빨래도 자주 하고. 돈만 못 벌뿐이지 하루 일과 자체는 나름 꽉 차있다.


시간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모양새가 천차만별인 것 같다. 회사를 다니게 되면 아무래도 중요도가 회사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일들에 시간을 덜 쓰게 되고, 백수인 지금은 그 다른 일들에 시간을 더 쓰게 된다.

구름이 뭉게뭉게 넘실넘실


그래도 시간을 언제 어떻게 쓸지 자유롭게 정할 수 있기에 지금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도 있다. 제주도에서 보름 살기를 할 때 어느 날 오후 솜을 흩뿌려 놓은 듯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보며


 내가 마지막으로 이 시간에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였지?


곱씹어봤다. 기억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는 늘 사무실에서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을 테니.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도보 이동할 때는 경보하듯 빠르게 걷던 내가 천천히 주변 풍경을 즐기며 느리게 걷기도 한다. '여기에 이런 소품샵이 있었네?' '이 집은 거주자들이 살기 편하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직업이 없다는 불안함을 견딜지라도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사는 게 오랜만이라 24시간을 늘어난 고무줄처럼 최대한 만끽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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